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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던피 Feb 09. 2023

후회라는 건 결국

죽음을 믿는 일



작년 10월에 발병한 목 디스크(정확히는 목디스크 직전의 심각한 염증으로 인한 통증)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23년도 2월이 된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고 있다. 네 달도 전의 일이 어떻게 나를 괴롭히고 있냐라고 하면, 나는 유기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의학적 지식은 없지만 당시 내 상태를 그저 내가 느낀 감각을 통해 묘사해 보자면, 몸을 뉘일 때, 몸을 일으킬 때, 누군가 나를 불러 갑자기 고개를 돌릴 때, 걸을 때, 손을 들 때, 앉아 있을 때, 숨을 쉴 때 등. 움직임이 수반된 모든 행동에서 목 뼈가 맷돌처럼 갈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픈 목을 가누기 위한 보상작용으로 목과 연결된 등 쪽 어깨 근육이 애초에 자신들이 맡은 역할 보다 몇 곱절로 애를 쓴 탓에 나는 연달아 왼쪽 어깨의 통증까지 얻게 되었다. 평소 통증에 대한 역치가 높았던 탓에 ‘내버려 두면 괜찮아지겠지.’하고 내버려 둔 게 후회가 된다. 


그렇게 몇 달째 이어진 목과 어깨의 통증은 신체증상을 넘어 내 정신세계까지 침범해버린 것이다. 통증이 심할 때는 무의욕의 늪에 빠지고, 내가 왜이렇게 살고있나 비관론자가 되어버린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본인 스스로에게 행해야 하는 반강제적이면서도 마땅히 추구해야 할 ‘건강한 삶’이라는 숙제 앞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도 아니면서 왜 저리 호들갑이냐 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당연한듯 누리던 건강이


'너 인마. 빚 갚을 때 됐어.' 


나도 몰랐던 과거의 빚을 청산하기 위해 신체적 자유를 박탈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칼에 베인 다른 이의 상처에서 눈이 멀게 하고, 내 손에 박힌 쬐깐한 가시가 나를 옹졸한 고통 속에 머무르게 만든다. 숨을 크게 들이마실 때조차 느껴지는 욱신한 통증과 소량의 마취액을 목에 주사한 듯 뻑적지근하고 미묘한 저릿함을 느낄 때마다 무엇부터 바로 잡아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일자목이 심해지다 못해 역 C자형 커브를 갖게 된 이유가 뭘까. 어깨는 왜 아픈 것일까. 오른쪽은 괜찮은데 왜 왼쪽 어깨만 아픈 것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엎드려서 책 읽는 걸 좋아했던 내 모습, 책상에 고개를 푹 숙이고 공부하던 내 모습, 자세를 똑바로 하라던 엄마의 잔소리에 아랑곳 않고 척추뼈가 없는 사람처럼 껄렁한 자세로 바지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길 좋아하던 내 모습,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보기 위해 목을 쭉 내민다던지, 짝다리를 짚는다던지, 왼쪽 어깨에만 숄더백을 멘다던지 하는 내 모습만 떠오른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자신의 죽음을 믿지 못한다’는 모리 교수님의 말이 사실임을 내 과거를 통해 다시금 깨닫는다. 난 괜찮을 거라는 아무 근거 없는 신화적 믿음이 얼마나 오만했던가. 세상은 그것이 무엇이든 모두에게 공평하게 준다. 


뒤를 돌아보며 회환에 잠기는 일은 결국 이런 것이다. 돌아본다는 행위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것. 돌아간 곳에서 실수와 잘못을 주워 담으면 그것은 후회가 될 것이요. 아쉬움을 줍는다면 미련이겠지. 단편적인 기억들을 끄집어내다가 그 조각들을 짜깁기한다면 현재의 결괏값에 대한 퍼즐 하나를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원인을 알았다면 그걸로 되었다. 이제는 행동으로 그 관성을 깨야지.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남가지 않기 위해, 내 삶에 고통을 없애기 위해, 지난 시간의 실수를 바로잡는 것.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하는 것. 결국 ‘행동’ 뿐이다. 


계속 아프고만 있기는 싫어서 오늘은 어깨 재활훈련을 하고 왔다. 오히려 훈련을 받고 난 직후에는 통증이 더 심하다. 어깨가 뜨겁고 목 뒤쪽에 구술 하나 심겨있는 기분이다. 잠을 잘 때는 베개 대신 수건을 납작하게 말아 목과 침대 사이 빈 공간을 메꿔두고 잔다. 한 시간 혹은 두 시간에 한 번씩 C커브를 만드는 데 좋다는 스트레칭을 하는 시간을 짧게라도 가진다. 앞으로 계속 좋아질 것이라 믿는다. 내 과거를 바라보고 마땅히 책임을 지고 있다. 10년 후의 내가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의 내가 행동하는 수밖에. 후회라는 건 결국 오늘을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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