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곡사 2박 3일 템플스테이
한글날 구례의 연곡사에 머문 사람들은 아홉 명이었다. 나의 일행을 포함하여 총 5팀. 고등학교 친구, 대학교 동창, 회사 동료, 엄마와 딸, 그리고 혼자 왔다는 분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템플스테이를 하러 절에 들어와 있었다. 도착한 첫날, 단풍이 아름다워 붙었다는 피아골의 전경이 그대로 보이는 누각에서 스님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스님이 직접 원두를 갈아 내려주신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생소한 절에서의 예법을 배웠다. 한 명씩 대화를 나누며 스님은 템플스테이에 온 목적에 대해서 물어봤다. 구체적인 사유는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적인 부분은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는 것’. 안타깝게도 신도가 많지 않아 조용히 거닐기 좋다는 지리산 골짜기에서 위치한 연곡사에서 템플스테이는 시간을 갖기에는 최고였다.
이곳에서 지켜야 할 규칙은 단 하나였다. 공양 시간 지키기. 새벽 7시, 오후 12시, 오후 5시 30분으로 정해진 아침, 점심, 저녁 시간만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밥을 먹지 않는다면 최소 한 시간 전에는 전화를 줘야 했다. 불가피한 식재료를 낭비하지 않고 인원수에 맞춰 음식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 외의 새벽 예불, 저녁 예불, 108배 배우기, 스님과의 사담 등은 각자 원하는 바에 따라 참석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나머지 시간은 자유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친구 S와 나는 단 2박의 템플스테이에 나름의 기대와 환상을 품고 왔다. 겨우 2박일지라도, 우리가 이 과정을 통해 엄청난! 깨달음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는. 언제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우리네 인생에 세게 브레이크 한번 밟아줄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와 S는 새벽 예불과 108배를 시도했다. 별이 빼곡하게 보이는 새벽 네시 반에 일어나 숙소를 나왔다. 예불은 5시부터라고 했건만, 어둠 속에서는 목탁 소리가 들려왔다. 대적광전에는 기도 스님과 서안 스님이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전날 함께 도착한 템플스테이객들도. 사방에 빼곡한 불상과 그림들은 여전히 생소하고, 살생을 금하는 공간에 나와 함께 머무르는 벌레들은 시시때때로 근처로 날아들었다. 짧게 예불을 드리고, 108배를 하기 위해 관음전으로 이동했다. 각자 절하면서 숫자를 세야 하는 것인가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나만 옳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참회하며 절합니다’ 등 각 절은 그 나름의 의미가 부여되어 있었다. 조금 힘들어서 멈추고 싶다가도 뼈를 때리는 구절에 고개를 주억이다 보면 절로 무릎이 접혔다. 약 20여분의 짧은 시간이었는데, 시작할 때와 달리 끝나고 나니 해가 떠 다른 시공간에 도착한 느낌이었다.
한 번의 예불로도 무언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새벽 예불이 준 것은 잠깐의 성스러운 기분과 함께 쏟아지는 잠이었다. 예상치 못한 고통이 너무 많다고 토로하는 우리에게 스님은 윤회 자체가 성불하지 못했음이며, 태어남 자체가 고통이라고 답하셨다… 열아홉 살에 출가를 했다는 비구니 스님은 본인 자신도 살면서 많은 기대가 접히는 과정 속에 본인 또한 연곡사에 자리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애초에 스님이 되면 구름 타고 백두산도 가고, 무술도 배우고 할 줄 알았는데, 막상 스님이 되고 나서는 무술 언제 가르쳐 주냐고 물어봤는데 안 가르쳐 준다 해서 정말 실망했다는 이야기부터 말이다. 스님이 되면 시험도 안 볼 줄 알고 좋아했는데, 이게 웬걸. 공무원처럼 단계마다 계속 시험을 쳐서 일종의 승진을 계속해야 된다고도 말해 주셨다.
조용히 각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템플스테이에 왔는데, 지내고 보니 나에게 남은 것은 사람과의 대화였다. 버스카드가 인식되지 않아 쩔쩔매는 우리의 버스비를 대신 내주신 템플스테이객들은 보답하겠다며 커피를 사 온 우리에게 ‘지나치다 스친 거도 인연이라는 데, 이 정도면 전생에 우리가 인연이었지 않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가끔은 너무도 당연한 것을 알기 위해, 멀리 돌아오기도 한다. 나에게는 연곡사에서의 템플스테이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