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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Apr 08. 2024

이럴 거면 뭐라도 쓰지

불면의 밤이 깊어진다. 사실 나는 머리만 대면 언제 어디에서든 잠에 들 수 있는 축복받은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도 말이다. 잠들지 못하는 밤의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친구 P는 이런 나의 성향을 매우 질투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있다.


그 밤은 주로 일요일 밤이다. 일요일 밤마다 글을 쓴다는 규칙을 내 일상에 도입한 지는 벌써 일 년이 훨씬 넘었다. 이쯤 되면 습관이 될 만도 할 터인데 아직도 몸도 마음도 준비가 덜 되었는지 매주 일요일 밤이면 항상 밤의 끝자락을 붙잡고 버티다가 겨우 글이 될 수 있는 무언가 씨앗을 발견하고 부랴부랴 글의 형태로 만들어내 올리는 것이다.


그렇게 급하게 만들어 낸 글이 글 같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분명 시작이었던 그 작은 씨앗은 충분한 가능성을 품고 있었을 테고, 그에서 시작된 사유를 조금 더 지켜본다면 좀 더 땅에 뿌리내린, 좀 더 세상을 향해 가지를 뻗어 내는, 좀 더 생기 있는 색을 띠고 있는 글이 될 수 있었을 그것은 겨우 형태만 갖추고 만다. 누가 보아도 이것은 글이란 것이구나 인정할 수 있을 딱 그 정도의 형태만 갖춘 글을 다시 읽을 때면 처음 씨앗이 움틀 때의 생명력을 상기하며 아쉬워한다.


아무리 아둔한 사람이라도 이 정도의 후회를 반복하다 보면 생활의 패턴을 바꾸기라도 할 터인데, 그것도 참으로 쉽지 않다. 월요일과 화요일쯤에는 더할 나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수요일과 목요일쯤에는 업무와 일상에 치여 살짝 잊은 상태로, 금요일과 토요일쯤에는 휴식을 누리면서도 어느 정도 불안한 상태로 일상을 보내다 그렇게 또다시 일요일을 맞이하곤 한다. 그리고 오후 11시쯤 되면 그제야 똥줄이 탄다 ㅠㅠ.


이 정도로 미룬다는 것은 이야기꾼으로서 재주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내 일상이 고갈되어 쓸 만한 소재가 없는 것인지 한탄하며 주로 사진첩을 되돌아보는데, 보다 보면 한 장 한 장의 사진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일주일의 일상을 떠올려보면 분명 나는 눈물도 흘리고 웃고 감동받고 화내고 스스로 반성도 하며 다이내믹한 일상을 보내고 있음에도 일요일 밤이 되면 그 모든 소재들이 깡그리 잊히고 만다.


결국 이번주에도 나는 지각생이 되어서 새벽 한 시가 되고 나서야 겨우 한 자 한 자 무언가를 써내려 가고 있다. 이번주에는 반드시, 기필코, 나의 한줌 겨우 끌어모은 명예를 걸고서라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해 보는데,,,,, 비난보단 따뜻한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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