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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Jun 30. 2019

행복은 순간! 런던에서의 9일 (1)

웸블리 스타디움 BTS 공연 직관 후기

저는 요즘 그런 생각을 부쩍 해요. 행복은 지속되는 상태가 아니라 찰나의 어떤 순간이 아닐까 하는…그런 의미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때 마음껏 해서, 그런 순간들을 많이 만들어 두어야 하겠다고 새삼스레 결심하고는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6월은 정말이지, 이 한 달을 위해 내가 상반기를 버텼구나 싶을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4월부터 고대해 마지않던 여름 휴가를 갔다 왔거든요.


작년 스페인 휴가 때 여러가지 변수로 지출이 상당했기에, 원래대로라면 올해는 휴가를 아예 가지 않거나, 가더라도 가까운 근거리 여행지를 가려고 생각 중이었어요. 하지만 ‘행복하다’는 말을 육성으로 그렇게 많이 내뱉어 본 적이 스무 살 초를 넘기고는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역시나 여행은 갈 수 있을 때 가고 보는 게 마땅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쨌거나, 올해 상반기의 여행지는 런던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썼네요.


테이트 모던 6층 카페가 뷰 맛집


이번 런던 여행은 철저히 ‘나 하고픈 대로’ 떠나는 여행이었습니다. 대학 시절, 알바 급여를 모아서 친구랑 단 둘이 떠난 여행은 거의 랜드마크 찍기 챌린지라도 하듯, 3박 4일에 런던 내 모든 유명 관광 스폿을 (심지어 거의 도보로) 찍는 식이었다면, 이번에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코스를 짰어요.


런던과 근교까지 포함해 총 5곳의 공원을 다녀왔고, 도시의 풍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뷰 포인트와 야경 스폿을 3군데 갔었고, 마지막으로는 대망의 웸블리 스타디움이 있겠네요. 다들 아시죠? BTS 공연이 열렸던 그곳!


시기를 한참 지나 이미 거진 한 달이 넘어버렸지만, 아무래도 더 이상 늦어지기 전에 써야 할 게 바로 BTS 공연인 것 같아요. 음알못이라 가사 전체를 외우고 있는 곡도 별반 없지만,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가득 찬 거대한 스타디움이 인종도, 나이도, 언어도 상관 없이 모두가 노래를 따라 부르는 광경은 정말이지 울컥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많은 게 이번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이었어요. 그래서 그 순간들을 기록하고 또 후기로 공유하려고 합니다.




혼란의 티켓팅


저는 마침 여행 기간과 겹치기도 해서, 3월쯤 지인과 함께 티켓팅에 도전을 했었어요. 국내에서도 콘서트라고 해봤자, 페스티벌이나 내한 가수 공연 몇 개만을 가본 제게, BTS 웸블리 공연 티켓팅은 대학 시절 수강신청을 앞두고 정각 몇 초 전 카운트다운을 세며 새로고침과 광클을 하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피켓팅’이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간신히 5층 좌석을 잡았을 때는 ‘와 내가 진짜로 가는건가’ 하는 느낌에 멍해졌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해외 티켓팅 사이트와의 지난한 싸움을 예견하지 못했어요. 약 두 달에 걸쳐 머리채를 부여잡게 한 그 대환장 파티를 진짜로 짧게 요약하자면, 이래요.


1) 최종 확정 메일을 보내줘야 하는데 보내주지 않아 소비자 센터에 문의했으나 한 달 넘게 회신이 오지 않음.

2) 주소지 변경을 위해 연락했으나 역시나 한 달 넘게 회신이 오지 않다가 간신히 담당자에게 연락이 와서 현장 수령으로 변경.

3) 그러나 출국 일주일을 앞두고, 현장 상황에 의해 모든 티켓을 우편 발송했다는 통보 메일을 받음.

4) 현장 수령을 믿고 주소지 변경을 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배송대행지로 티켓이 발송되어버림.

5) 문의 메일을 했으나 회신 지연 등으로 인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타이밍을 놓겨 결국 배송대행지에 추가 비용을 내고 우편 수령.

6) 그런데 배송대행지에 내 티켓이 아닌 다른 사람 티켓도 같이 발송 되어버림 (???).


그 외에도 온갖 자잘한 것들이 많았는데요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저는 온갖 수단, 그러니까 이메일, 전화, 티켓마스터 CS 트위터 계정 등등을 이용해 갖은 난리를 쳤습니다. 결국 티켓을 받긴 받았지만 그 뿐, 별도의 조치나 사과는 없더라구요.



6월, 런던은 아미 대축제


이번 공연은 6월 1-2일 양일에 걸쳐 열렸어요. 여행 시즌 기준으로 따지만 성수기 전 준성수기쯤 되는 시기이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이른 휴가를 간 셈이라, 그래도 많이 붐비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미 공연장 근처 숙소는 3월부터 풀북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시내 여행이 주 목적이었기 때문에, 공연장 근처 에어비앤비를 잡으려다가 런던 중심부 호텔과 한인민박에 묵었는데도 불구하고, 한인민박은 가는 곳마다 백이면 백, 공연 보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는 후문.


아닌 게 아니라, 저도 인천공항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 옆좌석이 공연을 보러 가는 아미였거든요. 그리고 조금만 과장을 보태자면, 아니….과장을 보태지 않아도 거의 길목마다 마주치는 게 아미였던 것 같아요.


이쯤에서, 런던 한복판에서 BTS를 외치던 아미들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현재 BTS가 글로벌 홍보대사로 있는 현대차가, 피카딜리 서커스 대형 전광판에 미공개 영상을 푼다고 해서 가봤었습니다. 이미 몇 시간 전부터 광장 앞을 가득 메운 아미들이 저마다 떼창을 하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면서 상영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지나가는 관광객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쳐다보며 지나가기도 하고, 축구팀 유니폼을 사기 위해 간 매장에서는 대체 뭘 하길래 사람들이 저렇게 모여있는 거냐며 되레 제게 묻기도 했어요.


하지만 인상 깊었던 건, 그 인파보다도 하나같이 기대감으로 가득 차 행복해 보이는 아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기다림이 자체로도 즐거울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현대차 영상)

전광판 앞의 인파가 어마어마했다



"영원히 소년이고 싶어 나"


이번 공연은 6월 1-2일 양일에 걸쳐 열렸어요. 7시 공연 시영에 맞춰 대기줄에 서있다가, 티켓과 가방 검사를 마친 후 스타디움 실내에 들어서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복도를 따라 걸으면서 중간중간 문 사이로 들여다 보이는 경기장 규모가 압도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입장을 마친 팬들이 좌석에 앉아 함성을 지르고 또 노래를 부르는데 마치 대규모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처럼 그 소리가 어마어마했거든요.  


다시 한 번 놀란 건, 관객의 다양한 연령층과 국적이었어요. 제 옆자리는 60세는 훌쩍 넘겨보이는 노부부였는데 두 분이 사이 좋게 앉아 영상을 찍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공연을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심지어 영어도 아닌, 한국어 노래를 발음도 정확하게 따라 부르시더라고요.


웸블리 파크 역에 내려서 스타디움으로 향하는 길


그 두 분만이 아니라, 공연이 시작하고 나서의 광경은 더 놀라웠어요. 관중석을 가득 메운 팬들이 응원봉을 밝히고 떼창을 하며 하나가 되어 다 같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마침 지기 시작한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면서 뭔가 뭉클한 심정이 되었습니다.


공연장에서 전문 장비를 동원한 촬영과 녹음은 금지되어 있기에, 핸드폰으로만 살짝 찍었어요. 현장 분위기는 곡 사이 대기 시간 중 BTS를 연호하던 팬들의 영상으로 공유합니다.


음악 앞에 모두가 하나됐던 순간, 음악은 언어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물리적인 무게를 가지고 마음으로 느껴졌던 경험이었어요.


특히 이번에는 웸블리 공연 기념 특별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중간에 가수를 위한 이벤트로, 스크린에 Army Sings 라는 메시지가 띄워지면 Young Forever를 따라 불러달라는 안내 멘트가 있었어요. 오히려 제가 선물을 받는 심정으로 두근두근 하면서, 스크린을 바라보다 전주에 맞춰서 곡의 클라이막스를 떼창하는 순간 뭔가 벅차오르더라고요.


워낙에 곡 자체도 제가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지만...영원한 소년처럼 화양연화의 순간에 머물고 싶다는 그 가사가 그때만큼 심장에 꽂히듯 박혀온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 날 위로하네
완벽한 세상은 없다고 자신에게 말해 난
점점 날 비워가네
언제까지 내 것일 순 없어 큰 박수갈채가
이런 내게 말을 해, 뻔뻔히
니 목소릴 높여 더 멀리
영원한 관객은 없대도 난 노래할거야
오늘의 나로 영원하고파
영원히 소년이고 싶어 나



저는 지난 4월 발매 Persona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을 뽑으라면 '소우주'입니. 가사가 주는 위로의 메시지와 감성적인 멜로디가 좋아서기도 하지만, 이번 공연의 엔딩곡으로 쓰여서인지 그 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또 하나의 여행 BGM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해요. 모두가 같이 노래를 부르며 핸드폰 플래쉬를 켜서 흔들 때, 한 사람 한 사람이 빛나는 '소우주'의 별처럼 아름다웠던 순간이었습니다.


BTS의 퍼포먼스, 팬들과의 적극적 소통, 곡과 앨범에 담긴 메시지, 진정성, 등등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지만, 어느 인터뷰에서 성공 요인으로 "특별한 팬들을 만난 게 성공의 이유"라고 했다죠. 가수와 또 관객석의 팬들이 상호작용 하며 뿜어내는 에너지야말로 어쩌면,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스타디움을 가득 채울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여행은 제게 어떤 장면들로 남는 것 같아요. 공연에 가기까지 수많은 고민과 난관이 있었지만, 웸블리에서의 경험은 런던에서의 9일 중 또 하나의 특별한 여행의 풍경으로 기억의 한 갈피를 차지할 예정입니다. 평소같으면 하지 않았을 짓도, 여행에서라면 여행자의 용기가 되고, 나중에 돌이켜 보니 오히려 더 좋은 추억들을 남겨올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여행을 통해 또 한번 결심하게 된 것은, 앞으로도 여행에서만큼은 일단 뭐든 도전하고 보자는 것.


인생은 짧고 행복은 순간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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