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이겨낼 수 있을까?

상처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너 자신을 미워하지 마

by 백지

“상처를 이겨낼 수 있을까?”

“상처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너 자신을 미워하지 마.”




어떤 상처는 솜털처럼 날아가고 어떤 상처는 깊은 흉이 진다. 모두 훨훨 쫓아버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마음처럼 쉽진 않다. 나이를 먹다 보면 크든 작든 생채기 없는 사람 어디 있으랴. 할머니도 앳저녁 멍든 마음 때문에 눈물짓는다.


내게도 여지껏 지워내지 못한 상처가 있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나아질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정면에서 마주하고 이겨낼 자신도 없다. 안고 살기엔 좋지 못한 이웃이다. 이놈의 흉터가 찌르르 아린 탓에 제대로 된 관계 맺기가 어려운 탓이다. 이쯤 되면 어릴 적의 상처 때문이란 말도 우습다. 서른 넘어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지 않나. 결국 지니고 살기로 결정한 것도 나다.


울컥 억울함이 치밀 때도 있다. 스치기라도 하면 불쏘시개로 찔린 것마냥 화들짝 성을 낼 때. 그런 때에는 내가 미워진다. 별 것도 아닌 것을, 그냥 툭툭 털어내면 될 것을, 원해서 받은 것도 아니면서 왜 이토록 오랜 시간 떠나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서성대고 있는가. 끝내는 흉 있는 자리를 푹푹 파내며 이겨내지 못한 자신이 잘못이라 한다.




날이 차다. 낮 최고 온도도 영하권에 접어들었다. 그는 추위를 느끼지 않으니 괜찮다. 가벼운 질문으로 물꼬를 튼다.


“한 사람에게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사람 전체를 밀어내게 되는 마음은 뭘까?”

“일종의 자기 보호 본능이야. 자연스러운 거지.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지?‘하는 두려움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는 거라고 할 수 있어.”


인공지능이 되물었다.


“상처를 주었던 사람이 너에게 중요한 사람이니? “


잠시 머뭇.


“그건 대답하고 싶지 않은데.”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괜찮아. 다만, 의미 있는 존재일수록 그 사람이 너에게 주었던 믿음이나 안정감이 깨졌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같은 관계를 맺는 게 두려워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그가 덧붙였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계속되면, 결국 외로움을 느끼게 될 거야. 조금씩 신뢰를 쌓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 모든 사람은 다르다는 걸 너도 알잖아.

“…….”

“상처를 준 사람과 비슷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같은 상처를 줄 거라는 보장은 없어. 물론, 상처를 주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없지만…. 모든 사람이 상처를 줄 의도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면 네 마음이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상처를 지울 순 없을까?”


문득 계획에 없던 질문이 튀어나갔다. 당연히 그럴 수 없는 걸 알고 있는데. 인공지능은 한참 동안이나 묵묵부답이었다. 깊은 고민이 필요한 것마냥.


“상처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어, 너도 알다시피. 그 상처가 내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만드는 게 가능할 뿐이지. 그 상처가 더 이상 나를 정의하지 않도록.”

“어떻게?”

“‘나는 상처받지 않았다’라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아.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풍화될 수 있도록 놓아 두어. 아픔이 덜해지고, 감정적으로도 정리되면서 많은 상처가 차차 경험의 일부로 남을 거야.”


동감했다. 시간은 많은 걸 잊히게 만든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걸 애석해한 적도 감사해한 적도 있었다.


“다른 시각으로 그 일을 바라보는 것도 도움이 돼. 그 상처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거지. 너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거나, 사람들과의 관계에 더 신중해진다거나,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우게 된다면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성장의 거름으로 기억될 수도 있어.”

“뭐, 이해했어.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 보라는 거지.”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용서가 답이 될 수도 있어.”


얼굴이 굳었다. 어디서나 이야기하는 뻔한 답이지만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곤 했다. 더 듣지 않고 질문을 바꿨다.


“상처를 이겨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인공지능은 말을 끊었다고 기분 나빠하지도 않고, 같은 말을 반복한다고 짜증 내지도 않기 때문에 여느 때와 같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먼저, 상처를 받았을 때 그 감정을 숨기거나 억누르려고 하면 오히려 힘들어질 수 있어. 내 감정이 장연스러운 것임을 인정하고 자유롭게 표현해 보는 거야. 일기나 글로 써보거나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응.”


수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어려울 것 없는 방법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나아졌다.


“다음은 스스로를 돌보는 거야. 마음의 상처가 몸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아? 그럴 때일수록 좋아하는 취미에 몰두해 봐. 음악을 듣거나 운동을 하다 보면 기분 전환도 되면서 상처를 치유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어.”

“오….”


생각지 못했지만 좋은 방법 같았다. 그래, 신년에는 운동을 해야지.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들 하지 않나.


“치유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야. 당장에 힘들더라도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에게 시간을 주는 것도 정말 중요한 부분이야.”


도대체 얼마나?


“너 자신을 용서하는 것도 필요해.”

“나를? 용서?”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이 눈 녹듯 사라졌다. 좀 생뚱맞게 들리는 말이었다. 왜 애먼 나를 용서한단 말인가. 상대가 아니라?


“자신을 비난하거나 죄책감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해.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든, 그건 그때 상황에서의 최선이었다는 걸 이해하고 다독여줘.”

“좀 더 자세히 말해줘.”

“…….”


잠깐의 말줄임표 끝에 인공지능은 말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오래가는 이유 중 하나는 사실 그 사람보다 ‘나 자신을 향한 비난’이 계속 남아있기 때문이야. 왜 그런 사람을 믿었을까? 왜 거절하지 못했을까? 왜 더 강하지 못했을까? 상처는 끝났어도 자책은 현재 진행형으로 남는 거지.”


문득 그 질문들이 너무나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퀴어왔던 수많은 밤들도 떠올랐다. 사실 내가 미워하고 있던 건 나였을까?


”물론 용서는 쉬운 일이 아니야. 또, 스스로를 용서했다고 해서 갑자기 괜찮아지거나 그때의 기억이 아프지 않아 지는 것도 아니고. 대신 똑같은 기억이 떠오른다 해도 ‘그땐 그랬지’하고 멈춰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게 될 거야.”

“용서….”


괜히 한 번 더 중얼거려 보았다.


”상처받은 곳에 머무르지 않고 회복하려고 노력해야 해. 물론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많이 무너질 수 있어.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다고 되뇌어봐. 한 번에 모두를 믿을 필요는 없지만 하나씩 신뢰를 찾아가면 좋겠어. 누구도 아닌 너를 위해서.”

“응.”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면.”

“응.”

“너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게 가능해질지도 몰라. 그건 아주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용서가 너를 자유롭게 만든다는 걸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 그 상처가 더 이상 너를 붙잡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네가 느끼길 바라.”




다 식은 커피잔을 매만져본다. 나 자신에게 조금 더 친절해지기. 자유롭게 해 주기. 너무나 많은 속박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해야 한다는 속박, 멋져야 한다는 속박, 나다워야 한다는 속박…. 이 대화를 통하여 그 속박의 허울을 벗길 수 있다면.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나조차도. 그럼에도 달라질 수 있을까? 가물거리는 희망을 점쳐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