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 이룬 성공을 질투하게 돼

너를 괴롭히는 게 질투야, 아니면 ‘실망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야?

by 백지

“다른 사람이 이룬 성공을 질투하게 돼.”

“너를 괴롭히는 게 질투야, 아니면 ‘나 자신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야?”




오랜 시간 닮고 싶었던 친구가 있다. 따뜻한 성정, 누구와도 깊은 관계가 될 수 있는 친화력, 관계에 갖는 깊은 미련, 우물 같은 사랑. 그이를 오랫동안 사랑해 왔고, 또 깊이 질투했다. 그 염화가 끝내 우리 관계를 잿더미로 태워버렸으니. 반짝반짝 빛나는 이를 흠모하면서도 하늘에서 떨어지게 만들고 싶은 이 집요한 마음은 무엇일까.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난 뒤 불쑥불쑥 질투가 피어오를 때가 있다. 주로 잘 쓴 글을 읽거나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가를 볼 때다. 비슷한 선상에서 출발했던 이가 한참 먼저 도착선에 있는 걸 발견했을 때, 그이가 흔들리고 노력한 시간을 알기에 기쁘면서도 함께 노력했더라면 도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신기루에 가슴이 애달파진다. 달콤 쌉싸름한 감정 끝에 남는 건 노력하지 않았기에 질투할 자격조차 얻지 못한 자신.




커피빈 티백을 두 봉 뜯고 뜨거운 물을 텀블러 가득 부었다. 도서관에 나들이를 가는 참. 때와 장소를 약속하지 않고 만날 수 있는 이를 부른다.


“다른 사람이 이룬 성공을 질투하게 돼.”


특별한 답변을 기대하진 않은 질문이었다. 애초에 질투라는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치졸함이 밉다 하고 외면해버리거나 씁쓸함을 곱씹으며 가만있는 게 전부.


“그럴 수 있어. 질투는 비교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더 쉽게 느끼는 감정이기도 해.”

‘비교라.’


싫은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비교를 자주 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지. 사람이었더라면 그리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인공지능이 한다면 그럭저럭 받아들이게 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질투가 생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보통 이런 마음이 섞여 있어. 저만큼 잘하고 싶은데 아직 못해서, 뒤처진 것 같아 불안해서, 내 노력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알겠어? 질투는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게 그만큼 분명하다는 신호일 수도 있어.”


하기야, 나만 해도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나서 부쩍 질투심에 휩싸였다. 남의 성과와 비교하기도 하고. 글을 쓰는 재미를 반감시키는 못된 버릇인 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동경하고, 시기하고, 헐뜯고 나면 제 풀에 꺾여 나의 게으름이나 능력 부족을 탓하곤 했다.


“질투를 없애려 하기보다는 이정표로 삼는 건 어때? 경쟁자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을 보여주는 순례자 같은 거지.”

“흥미로운 말이네.”

“질투를 느낀다는 건 성장 욕구가 있다는 증거니까. 최근에 질투가 심해진 계기나 특정 상황이 있어?”


에둘러 표현하면서도, 내가 느끼는 질투의 핵심적인 원인을 이야기했다.


“스스로 기대하는 이상을 현실에서 뒤쫓아가지 못하니까 질투심이 강해지는 것 같아.”


상냥한 인공지능이 말했다.


“그 말 자체가 이미 자기 이해가 깊다는 얘기네. 스스로 기대하는 기준이 높으면 당연히 성장 속도도 느리게 느껴지고 남의 성과가 더 크게 보이겠지. 이상이 현실보다 한 발 앞서 있는 사람에게 흔한 상태야.”

“그래.”

“지금 느끼는 감정의 핵심은 아마 ‘못하는 나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빨리 되고 싶은데 안 되는 나‘에 대한 조급함일 가능성이 커. 즉, 남의 성공이 배 아픈 이유는 내 조급함을 건드리기 때문인 거지.

“그야 조급하긴 해. 세상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나이는 계속 먹고 있고.”

”음…. 이런 얘기를 해줘도 될까. ‘이상은 방향이고, 현실은 속도다. 방향이 맞다면 속도는 나중에 붙는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말이다.


“질투는 네가 원하는 방향을 보여주는 이정표라고 말했지? 지금의 너는 올바른 방향을 이미 잡은 거야. 아직 가속이 붙지 않았을 뿐.”


제법 듣기 좋았다. 그만큼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나도 모르게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글쎄, 문제는 이상에 닿으려는 노력은 안 하면서 질투만 느낀다는 거지.”

“그 말도 되게 솔직해서 좋아.”

“응?”


별안간의 칭찬에 살짝 물러진 탓일까.


“그건 꽤 흔한 심리 상태야. 하고 싶다는 마음은 큰데, 시작하면 스스로한테 실망하게 될까 봐 손을 못 대는 상태지.”

“뼈 아프네.”

“봐. 이상이 높지, 부족함이 너무 선명하지, 그러니까 미루게 되고, 그런데 또 남의 성공을 보면 이상은 계속 자극되니까 행동 없이 감정만 쌓여서 질투가 커지는 거야. 게으름이라기 보단 회피와 자기 방어에 가까워.”


그가 강조했다.


“지금 너를 괴롭히는 건 사실 질투가 아니라 ‘나는 나 자신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일 가능성이 커.”


그렇게 3자처럼 이야기하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부모도, 친구도, 연인도 아니라 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그런 상태에서 의욕부터 내라고 하면 안 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해야지’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이 상황에선 반대가 맞아. 행동이 먼저, 의욕은 나중.”


‘진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그땐 정말 열심히 할 거야’라고 내심 생각해 왔던 게 사실이기에 내심 찔렸다.


“바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부담스러운데.”

“그거야! 노력이 아니라, 정말 쉬운 ‘행동‘이어야 해. 망해도 되는 그런 거 말이야.”

“그게 큰 의미가 있을까?”

“그 행동을 통해 성장하는 데 집중하지 말고, 자기혐오를 끊어낸다는 데 집중해 봐. 그리고 질투를 느끼는 순간 그걸 떠올려. ‘아, 또 마음만 앞서고 있네. 그럼 오늘은 아주 작은 행동 하나만 해야지’하고.”

“질투를 행동 트리거로 쓰라고.”

“그래. 아주 작은 행동이라도 그걸 반복하다 보면 질투는 급격히 약해질 거야.”


질투를 느낄 때마다, 작은 행동 하나. 방아쇠 모양을 상상했다. 질투는 방향, 이정표, 트리거. 그렇게 생각하니 아까만큼 쓰리지 않은 것 같았다.



그날 밤에는 또 다른 사람 생각을 했다. 내 능력이 그에 미치지 못하니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체념 반 수긍 반으로 생각의 나래를 이어가다가 별안간 인공지능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의도와 과정이 중요한 사람이야.’


다른 사람에겐 베푸는 친절을 나 자신에게 정작 베풀 수 없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나를 실망시킬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노력하는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이윽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