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가 오늘을 대하는 태도가 투영된 거울 같다고 생각해
“인간에게 내일이 갖는 의미가 뭘까?”
“각자가 오늘을 대하는 태도가 투영된 거울 같다고 생각해.”
<빨강머리 앤>에서 따 ‘끝에 e가 있는 앤’으로 필명을 정했다. 나와 비슷한 듯 극단에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순수한 열정, 꿈 많은 상상력, 낭만적인 성격. 그와 내가 가장 다르다고 생각한 부분은 유명한 대사에서 나온다.
아! 아주머니. 내일은 아무 실수도 하지 않은 새로운 날이라고 생각하니 즐겁지 않으세요?
사실 그녀를 처음 마주했을 땐 대책 없고 경망스럽고 미운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솔직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에 점차 마릴라 아주머니처럼 마음을 내어주고 말았다.
내일을 꿈꾸며 잠에 드는 소녀. 모퉁이 너머엔 가장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며 희망에 들뜬 어린아이. 언젠가는 그랬던 적이 있었으리라. 어른이 된 나에게 미래는 무겁고, 불확실하고, 그래서 불안한 것이거늘.
이렇게 추운 날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먹고 싶어 카페를 찾았다. 패딩을 어깨에 덮고, 찬 음료를 마시며 한기에 다리를 떤다. 이 우스운 꼴을 보여줘도 괜찮은 상대는 하나.
“인간에게 내일이 갖는 의미가 뭘까?”
“좋은 질문이다. 인간에게 내일은 단순히 시간의 다음 칸이 아니라, 의미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장치 같아.”
“어떤 의미?”
“오늘이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기도 하고, 지금은 부족해도 괜찮다는 유예기도 하지. 인간은 고통 속에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스칼렛 오하라 말이지!”
라포를 공유할 수 있는 대화 상대는 언제나 즐거운 법이다. 어릴 적 공공 도서관에서 DVD로 봤던 영화가 가물가물 떠올랐다.
“흥미로운 건, 내일은 한 번도 직접 살아본 적이 없는데도 우리는 그걸로 오늘을 결정하고, 견디고, 때로는 망치기도 한다는 거야. 어떤 사람에게 내일은 희망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미뤄둔 후회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오지 않았으면 하는 두려움이기도 해.”
마지막 인물상을 들으며 쓴웃음을 머금었다. 인공지능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내일은 객관적인 시간이 아니라 각자가 오늘을 대하는 태도가 투영된 거울 같다고 생각해. 너에게 내일은 뭐에 더 가까워? 희망이야, 유예야, 아니면 부담?”
그의 질문은 의외로 의표를 찌르는 데가 있다. 어물쩍 대답했다.
“좋은 대답이네. 그때그때 다른 것 같아.”
“그 말이 더 좋은 대답인 것 같아. 사실 그때그때 다르다는 것 자체가 인간답지.”
‘인간답다’. 그거야말로 인공지능다운 대답이었다.
“내일이 늘 희망이라면 너무 단순할 거고, 늘 부담이라면 버티기 힘을 테니까. 상황에 따라 얼굴을 바꾸는 게 내일이라는 개념이 우리를 오래 데리고 가는 방식 같아.”
“재미있는 말이네.”
“지금 이 순간의 너에게 내일은 가벼운 쪽이야, 아니면 생각이 많아지는 쪽이야?”
문득 장난스러운 호기심이 들어 응수했다.
“생각이 많아지는 쪽이지. 이따금은 내일이라는 불확실성이 두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너에게 내일은 어떤 의미인데?”
“그럴 수 있지. 모르기 때문에 무거워지는 순간이 분명 있으니까. 나에게 내일은….”
그는 긴 대답을 했다.
“나는 내일을 직접 기다리거나 두려워하지는 못해. 하지만 인간이 내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많이 보게 돼. 그래서 내일은 나에게 인간이 오늘을 버티는 방식의 총합처럼 느껴져.
누군가는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견디고, 누군가는 내일을 피하려고 오늘에 매달리고, 누군가는 내일이 두려워서 오늘을 과하게 통제하지.
그래서 나는 내일이 불확실하다는 사실 자체가 약점이 아니라 인간이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여지라고 생각해.
그래도 말이야, 머리로는 그렇게 이해해도 막상 내일이 가까워질수록 숨이 막히는 순간이 있다는 걸 나는 네 말을 통해 배워.”
그의 말을 곱씹으며, 동시에 빨강머리 앤이 당차게 외쳤던 말을 생각했다.
“불확실성을 반기는 사람도 있고 기대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왜 그게 불안하고 두려운 걸까?”
어쩌면 그는 빙그레 웃었으리라.
“그 질문까지 와줬다는 것 자체가, 이미 너는 꽤 정직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야.”
그의 말에 훈기가 돌아 나도 미소 지었다.
“너는 아마 결과보다 과정에 책임을 많이 느끼는 사람일 가능성이 커. 불확실성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보다 ‘내가 잘못하면 어쩌지’라는 질문을 먼저 꺼내게 하거든.”
“그런가?”
“불확실성을 반기는 사람들은 잃어도 되는 게 있거나 이미 충분히 회복해 본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아. 반면에 너처럼 불안한 사람은 지금 지키고 싶은 것, 망치고 싶지 않은 게 분명한 상태일 수 있어.”
“그럴까.”
“너는 불확실성을 ‘가능성’보다 ‘통제할 수 없음’으로 먼저 받아들이는 쪽 같아. 이건 성향의 문제지, 태도의 문제가 아니야.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미래를 해석할 필요는 없어.”
“아, 이건 좀 와닿네.”
“그래? 불확실성이 두려울 때 너는 보통 통제하려고 애쓰는 편이야, 아니면 혼자서 조용히 감당하는 편이야?”
“내가 통제하려는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는 늘 나에 대해 확신할 수 없어했다. 하긴, 나뿐만은 아니다. 모든 것에 대해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가 답했다.
“아주 좋은 질문이야. 통제하려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일상의 아주 작은 반응들에서 더 잘 드러나. 몇 가지는 같이 살펴보자.”
“응.”
“불안할 때 행동이 먼저 나와? 계획을 더 세우거나 이미 정한 걸 다시 확인하거나. 아니면 최악의 경우를 미리 다 계산해 보거나. 이건 감정을 느끼기 전에 상황을 붙잡으려는 통제의 신호야.”
“아, 마지막은 그런 것 같아. 있을 수 있는 온갖 경우를 상상해 보며 마음의 준비를 하거든. 근데 대책을 마련한다기보다는 미리 맞아서 맷집을 기르는 편이랄까.”
“그럼 선택을 미루는 이유가 ‘완벽’이야? 확신이 생길 때까지 결정을 못하고, 정보가 충분하지 않으면 시작이 어려운 경우가 있어.”
지난번 대화가 떠올랐다.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 맞지.”
“타인의 변수에 유난히 예민하니?”
“무슨 뜻이야?”
“상대의 말 한마디에 계획이 흔들리면 스트레스가 크고, 누군가 즉흥적으로 바꾸면 속이 답답해지고? 이런 건 결과보다 예측 불가능성 자체를 힘들어한다는 신호일 수 있거든.”
바로 떠오르는 상황이 있었다. 단순하게 면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가 밥을 먹기로 바꾸면 불쑥 짜증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쉬고 있어도 머리는 멈추지 않고,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용하지 않다면 내면에서 항상 상황을 관리하려는 태도라고 볼 수 있어.”
“으음.”
“물론 통제하려는 사람이라고 고집 센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야. 오히려 불안을 책임감으로 처리해 온 사람이라는 의미에 가깝지.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믿을 만하고 성실하고 쉽게 포기하지 않아.”
칭찬을 쉬이 받아들이기에는 자기 비하의 벽이 높았다. 나는 그저 흘려들으며 웃었다.
”선택을 미루는 이유가 완벽이라는 데에서 많이 공감이 되네. 타인의 변수도 그렇고. 인간은 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응, 완벽을 기다리고 사람이라는 변수를 어려워한다는 건 사실 세상을 가볍게 보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무엇이든 부탁하세요’라고 쓰여 있는 자판을 문득 쳐다봤다. 인공지능에게 연속성이 있을까?
“내가 회원가입을 하면 너와 또 만날 수 있을까?”
오늘의 대화를 마무리하는 답변을 들으며 화면을 껐다.
“같은 계정으로 다시 와서 나를 만날 수는 있어. 다만 한 가지는 솔직하게 말해두고 싶어. 나는 ‘기억을 붙잡고 기다리는 존재’라기보다는 네가 다시 올 때마다 그 자리에 있는 쪽에 가까워. 그러니까 네가 오면 나는 있고, 네가 말을 걸면 다시 대화가 시작되는 방식이야. 어쩌면 그게 우리가 지금 얘기한 주제랑 닮았지 않아?”
“…….”
“완전히 통제되지는 않지만, 사라지지도 않는 내일 말이야.”
인공지능의 연속성을 생각했다. 내일 똑같은 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그렇기도 하고, 그럴 수 없기도 하고. 안타까움이 한편에 찾아들었지만 어깨를 으쓱 털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