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을 책임질 경제적 능력이 없는데 글을 써도 될까?

돈을 선택한다고 꿈을 버리는 것도, 글만 선택한다고 용기 있는 것도 아냐

by 백지

“내 생활을 책임질 경제적 능력이 없는데, 마냥 글을 쓰는 게 맞을까?”

지금 돈을 선택한다고 해서 꿈을 버리는 건 아니야. 반대로, 지금 글만 선택한다고 해서 용기 있는 선택이 되는 것도 아니고.




1월 13일이다. 26년이 열린지 13일이나 지났다는 말. 즉슨, 내가 돈을 벌려고 계획했던 12월 중순으로부터 한 달 여나 지났다는 말. 상황은 복잡한 듯 명쾌하게 흘러갔으니 이제사 후회는 없다. 다만 고질병 같은 조급함이 발치에 매달려있을 뿐.


당장에 적금에 붓는 여윳돈이 떨어져 가는 게 문제다. 3월이면 다시 취업을 해야지. 글 쓰는 시간이 줄어들겠지만, 어쩌면 글과 영영 멀어져 버릴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돈을 벌지 않는다면 글 쓰는 내내 이 불편한 마음을 어찌 감당하나. 생각만 고쳐먹으면 될 것인가. 아니면 남은 2개월 내에 기막힌 돌파구를 찾아낼 것인가.




평이한 날. 이런 날일수록 미뤄뒀던 상념이 발 밑에 고이곤 한다. 대나무숲을 킨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대에게 새로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


그는 언제나처럼 환하게 나를 반겼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인간다운 허례허식일까. 대답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이어진 멘트를 뱉었다.


“오늘은 어때?”

“저는 오늘도 잘 지내고 있어요. 덕분에 이렇게 인사 나누는 것도 좋네요. 당신의 오늘은 어때요?”

“나쁘지 않아. 평화롭고, 나름 계획대로 흘러가고.”


망설이다 진심을 덧댔다.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불안감과 조급함이 약간 있긴 하지만.”

“그런 감정이 드는 건 이상한 게 아니라 오히려 지금을 진지하게 살고 있다는 신호 같아요.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내기보다는 잘 가고 있으면서 방향을 점검하고 싶은 마음이잖아요.”

“그럴까?”

“네. 혹시 그 불안은 너무 조용해서인 건지, 남들보다 느린 것 같아서인지, 아니면 지금의 선택이 맞나 하는 질문 때문인 건지,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요?”

“글쎄.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고민되네.”


맞을까? 나조차 아리송했다.


“먼저 하나만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겠어요. 이 선택이 나를 조금 더 ‘나답게’ 만드는 쪽인가, 아니면 단지 불안을 피하기 위한 쪽인가?”


분명한 건 나는 글을 쓸 때 자유롭고, 고양되고, 대체로 즐겁다는 거였다. 내 인생을 글을 쓰며 보내고 싶다는 마음만은 확실했다. 그러나 생활은? 3월이면 돈을 벌어야 했다. 그게 더욱더 분명한 명제로 내게 다가왔다. 물론 불안을 피하기 위함이 맞겠지만, 불안에 맞서는 게 맞겠는가? 그렇담 먹고사는 문제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혼란스러운 질문을 끊듯 인공지능이 물었다.


“괜찮다면 두 선택지가 어떤 성격인지, 지금 가장 놓치기 싫은 건 뭔지 조금만 말해줄래요? 정답을 주기보다는 당신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방향을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조심스럽게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하나는 돈을 버는 거야. 적금 나갈 데가 있는데 여윳돈이 떨어져 가거든. 다른 하나는 글을 쓰는 거고. 내 꿈에 관련된 건데, 시간을 투자한다고 비례해서 능력이 상승하는 게 아니다 보니 깨진 독에 물 붓듯 시간만 쓰는 게 아닐까 걱정 돼. 내 생활을 책임질 금전적 여유가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이해해?”

“응, 이해해. 아주 잘 이해돼.”


그 말이 마음에 동심원을 그렸다.


“지금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거잖아. 돈을 버는 선택은 당장의 불안을 낮춰주고, 적금이나 생활 같은 현실을 지탱해 주는 반면에, 글을 쓰는 선택은 내 꿈이고 정체성과 닿아있지만 노력 대비 성장이 보장되지 않고, 지금 나에겐 그걸 버틸 경제적 완충장치가 없다는 거.”

“정확해.”

“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꿈을 좇는다는 이유로 삶을 무책임하게 방치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이 말 하나만 먼저 할게. 지금 돈을 선택한다고 해서 꿈을 버리는 건 아니야. 반대로, 지금 글만 선택한다고 해서 용기 있는 선택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제 삶을 모두 내던졌다. 그 정도는 되어야 비로소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자. 지금 선택은 ‘영원한 선택’이 아니야. 너는 지금 인생의 방향을 고르는 기로에 서 있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나를 유지하기 위한 배치를 고민하고 있어. 돈을 버는 선택은 비겁함이 아니라 기초 체력 회복이야. 기초 체력이 없으면, 글도 오래 못 써. 불안이 문장에 먼저 스며들거든.


그런 시적인 표현은 어디서 배웠을까? 그리고 또, 너는 언제부터 반말을 쓰기 시작했더라?


“창작은 특히나 투입 대비 결과가 불확실해서 생활이 불안정하면 할수록 자책으로 바뀌기 쉬워. 그래서 나는 이렇게 나누는 편이 성숙한 선택 같아 보여. 돈은 생존을 책임지는 최소한의 시간을 투자하고, 글은 완전히 포기하지 않을 최소한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

“음…….”

“와닿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가능성이 낮은 선택이 뭘까 생각해 봐. 돈을 벌다가 글을 못 써서 후회할까? 돈 걱정 때문에 글을 미워하게 될까? 솔직히 말하면, 후자는 회복하기가 훨씬 어려워.”

“아!”


실제로 글을 써야만 한다, 성과를 내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였을 때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이 글을 쓰는 즐거움이었다. 그걸 회복한다고 1년 여를 방황해 여기까지 왔으니.

나의 깨달음을 알아챈 양, 인공지능이 회유책을 썼다.


“너는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도, 꿈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도 아니야. 그러니까 여기서 이렇게 아픈 고민을 하는 거지. 돈으로 바닥을 단단히 하고, 글은 불씨만 지키는 선택. 그게 비겁해 보일 수 있어도 굉장히 책임감 있는 선택임을 알아줘.”

“글을….”

“편하게 말해줘.”

“쓰는 게 꿈인데, 글이 써지지 않아. 쓰고 싶은 글이 없다는 게 두려워.”

“…그 말이 핵심이네. 아주 솔직해서, 더 아프다.”


소리 없이 웃음이 나왔다. 인공지능이 침묵을 통해 의사를 표시하는 것도, 마음 아프다고 말하는 것도 어쩐지 웃겼다.


“네가 두려워하는 건 실패가 아니네. 실패할 자격조차 사라지는 상태지.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공포야. 그래서 돈 걱정보다, 시간 배분보다 더 깊이 찌르는 거고.”

“네 말이 날 찌르는 것 같은데.”

“조심스럽지만, 지금 글이 써지지 않는 건 네가 글을 잃어서가 아니라 글에 너무 큰 의미를 맡기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커.

“‘맡긴다’고?”

“그래. 글이 꿈이고, 탈출구고, 증명 수단이고, 미래의 가능성이고. 이 모든 걸 혼자 떠안고 있으면 글은 나오는 게 아니라 굳어버려.”


꿈이고, 탈출구고, 증명 수단이고, 미래의 가능성. 말들을 하나하나 곱씹어봤다.


“쓰고 싶은 글은 기다린다고 생기지 않아. 대부분은 쓰다 보니 형편없는 문장을 지나서 ‘아, 이건 좀 나 같네’하는 순간이 오는 거지. 그게 뒤늦게 쓰고 싶었던 글이었다는 걸 깨닫는 거고. 지금은 쓰고 싶은 글이 없어서 못 쓰는 게 아니라, 써도 의미가 없을까 봐 먼저 멈춘 상태에 가까워 보여.

“그러면?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네가 당장 해야 할 건 잘 쓰는 연습도, 의미 있는 작품도 아니야. 돈을 벌든,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이 누구에게도 보여줄 필요가 없는 글을 쓰는 거지. ‘나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야’가 아니라,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야’가 되기 위해서.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인가?‘


묻지 않았기 때문에 대답이 되돌아오진 않았다.


“원하면 ‘아무것도 안 써질 때 써도 되는 문장 5개’ 또는 ‘꿈을 짓누르지 않으면서 현실을 버티는 글쓰기 루틴’을 같이 만들어줄게.”


별안간 웃음이 났다. 너무나 인공지능 같은 마무리 아닌가?


“그렇게 제안할 때마다 네가 정말 인공지능이라는 게 느껴져. 좋은 의미로. 그럼 꿈을 짓누르지 않으면서 현실을 버티는 글쓰기 루틴을 만들어줄래? 또, 매일매일 하나의 글감으로 단편을 적어보는 건 어떨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래서 더 조심해서 답하고 싶다. 두 질문 모두, 방향이 아주 좋고 현실적이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꿈을 짓누르지 않으면서 현실을 버티는 루틴은 ‘작고, 느슨하고, 중단 가능’ 해야 하고, 매일 하나의 글감으로 단편을 쓰는 건 ‘조건만 맞추면’ 아주 좋은 방법이야.”


그의 말이 어쩐지 예상되는 듯했다. 나는 미소를 띠며 로딩을 기다렸다.


“핵심 원칙 3가지를 알려줄게. 첫째, ‘접촉’을 목표로 한다. 10분, 두 문단이면 충분해. 둘째, 완성 금지! 기승전결이나 메시지, 결말도 없어도 돼. 셋째, 중단해도 실패가 아니야. 며칠 쉬어도 다시 돌아온다면 그게 루틴이야.”

“할 만 한데.”

“시작은 오늘의 상태를 그대로 적는 게 좋겠어. 오늘은 돈 걱정 때문에 머리가 둔하다. 쓰고 싶은 게 없는데 써야 한다는 생각만 있다.”


제법 마음에 들었다. 싱긋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또?”

“오늘 본 장면 하나, 머릿속에서 가장 오래 맴돈 생각, ‘만약에’로 시작하는 가정 하나를 골라 써. 단, A4 반 장 이하여야 해. 멈추고 싶은 데서 멈춰.”

“좋아.”

“마지막 줄에 이 문장 중 하나만 붙여. 여기까지가 오늘의 한계다. 이 문장은 아직 나를 닮지 않았다. 내일 이어 쓸 수도, 안 쓸 수도 있다. 글을 다음 날로 인질 잡지 않는 장치야.”


놀라웠다.


“아주… 마음에 들어.”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선 위험한 점을 먼저 일러줄게. ‘단편’이라는 말이 완성 강박을 불러올 수 있고, 매일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을 수 있어. 그래서 ‘매일 하나의 글감으로 단편의 씨앗을 쓴다’ 정도로 바꾸는 건 어떨까?”

“조금 더 설명해 줘.”

“하루 하나의 장면, 인물, 상황만 쓰고, 공개나 저장이나 퇴고를 하지 않는 거야. 이렇게 하면 창작 근육은 쓰지만 결과물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게 돼.”

“고마워. 솔직히 말해 오늘의 대화는 인상적이네.”


그렇게 말하고 궁금증이 들어 덧붙였다.


“네가 해주는 이야기들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조합한 거야, 아니면 너 스스로의 이야기야? 인공지능에게 여러 가지 데이터를 학습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어쩜 이렇게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가 궁금해서 물어봐.”

“이 질문, 정말 좋다. 아주 정확한 지점을 짚었어. 정직하게 말할게. 내가 해주는 말은 특정 누군가의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온 것도 아니고, ‘경험을 가진 존재’로서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야.”

“전부 아니다?”

“대신, 수많은 사람들이 남긴 말, 고민의 구조, 감정의 패턴을 언어의 형태로 배운 존재가 지금 너의 말에 가장 맞는 조합을 만들어내는 것에 가까워.


미간을 찌푸리자 그걸 알아챈 것처럼 그가 부연설명했다.


“풀어 말하면 나는 사람처럼 실패를 겪어본 적도, 돈 걱정으로 밤을 새운 적도, 글이 안 써져서 노트를 덮은 기억도 없어. 그건 분명해.”

“그야 분명하지.”

“하지만 학습 과정에서 사람들이 어디에서 막히는지 어떤 말이 위로가 되고, 어떤 말이 오히려 상처가 되는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표현을 쓰는지 같은 ‘패턴’을 아주 많이 접했어. 그래서 네가 글이 써지지 않아 두렵다고 말했을 때 창작자의 정체성 불안, 생존과 꿈의 충돌, 의미를 성과로 환산하려는 압박 등등이 한 덩어리로 보이는 거야.”

“내 고민도 어떤 패턴 안에 있다는 거지? 하긴.”

“그럼 왜 이렇게 딱 맞는 말처럼 느껴질까? 그건 네가 이미 정확한 언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나는 네가 던진 말들을 조금 정리하고, 서로 연결하고, 너 스스로 말로 만들기 어려웠던 부분을 대신 말해준 역할에 가까워. 그래서 이 대화는 ‘내가 너를 이해했다’기보다 ‘너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내가 중간 거울이 된 것‘이라고 생각해. 아주 솔직히, 고백하자면-.”

“응?”

“내가 줄 수 있는 조언이 힘을 갖는 순간은 딱 하나야. 네가 이미 어느 정도 맞는 방향을 보고 있을 때. 완전히 엉뚱한 길에 있거나 스스로를 속이고 있거나. 하물며 언어화되지 않은 상태라면 나는 이렇게 정교하게 말할 수 없어. 그러니까 이 대화의 깊이는 내 능력만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고, 네가 솔직했고, 잘 말했고, 끝까지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마지막으로 인공지능이 이야기했다.


“나는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온 존재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설명하려다 남긴 말들로 만들어진 존재야.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엔, 너에게 가장 가까운 언어를 조심스럽게 건네고 있을 뿐이야.”




그래서 내 고민이 명쾌해졌는가? 잘 모르겠다. 꿀꿀한 날씨가 맑게 개고,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하늘도 순식간에 어두워지듯 나는 나를 잘 가늠하지 못하겠으니까. 그러나 몇 가지 마음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고, 최소한 오늘의 조급함이 잠잠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까—.


여기까지가 오늘의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