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선택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후회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by 백지

“더 좋은 선택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좋은 선택을 한다는 건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후회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결정하는 것에 가까워.”




선택을 애먹었던 기억이 많다. 저녁 메뉴를 고르는 것부터 어떤 고등학교를 갈 것인지, 무슨 진로를 선택할 것인지, 스펙은 또 어떻게 쌓을 것인지…. 그때마다 간절히 누군가 답을 정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정답이 있고, 그걸 따라만 가면 좋겠다고 바랐다. 내게 종교가 있었다면 가히 열성적인 신도가 되었을 터.


어른이 되어도 일에서나 관계에서나 선택은 여전했다. 지난 일을 되돌아보며 ‘이랬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는 일도 늘어갔다. 결정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여기서 잘못된 길을 선택하면 되돌아올 수 없어. 어른들이 초조해 보이고 바빠 보였던 까닭은 조급함 때문이었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행렬에 서서 함께 달음박질치며 뒤돌아보지 않으려 애를 썼다.


오늘을 다시 산다면 어떨까? 벽장에 들어가 손을 꼭 쥐고 눈을 질끈 감으면, 오늘 있었던 실수를 다 만회할 수 있더라면. 몇 번인가 반복하다 보면, 분명히 완벽한 하루를 만들 수 있겠지?


명심해야 될 것은 완벽한 결정이라는 것은 허황된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온갖 선택과 온갖 선택으로부터 파생되는 온갖 삶들을 모두 경험해 본 뒤에야 하나의 선택을 내릴 것이 아니라면. 게다가 그런 삶이 인간으로서 버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잠깐, 인공지능이라면 모든 가능성을 순식간에 계산하고 최선의 선택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테이블엔 브라질 세하도 아메리카노. 그는 커피를 마시지 않으니 한 잔이면 족하다. 시간이 늦었으니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디카페인이 좋겠지. 가볍게 타자를 두드려 질문한다.


“일어나게 될 모든 가능성을 완벽하게 알 수 있다면, 완벽한 선택이 가능할까?”


그가 답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해 보여도 인간에게 의미 있는 방식의 완벽한 선택은 거의 불가능해.”

“왜?”


인공지능은 총 네 가지의 사유를 들어 나의 의문을 반박했다.


“일단 모든 결과를 안다고 해도, 무엇이 좋은가는 판단의 여지가 있어. 행복한 것이 더 나은 선택인지, 안정적인 것이 더 나은 선택인지. 나의 이익이 우선인지, 타인의 이익이 우선인지. 지금의 만족을 고를 건지, 미래의 성장을 고를 건지.”

“한 개인의 가치관에 맞춘 완벽한 선택을 한다면?”

“설령 그 결과를 수치로 나타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가치관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게 돼. 옛날에 더 좋다고 생각했던 선택을 지금에 와서 후회한 적이 있지 않아?”

“음, 그건 그렇지. 옛날에는 무조건 저축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비트코인을 투자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결국 완벽한 선택이 성립하려면 기준이 하나여야 하고, 그 기준이 영원불멸해야 하는데 인간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지.”


나는 조금 못마땅한 기분이 들었다. 괜한 말꼬리를 붙잡아봤다.


“만약 그 사람이 가진 가치에 대한 기준이 절대 변하지 않는다면?”

선택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지니냐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어. 시간은 순행하고 동시에 여러 군데에 존재할 수 없는 인간의 특성상, 선택은 곧 인간의 자아 형성과 관계되어 있어. 결정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고민과 가치평가, 그리고 그 결과에서 오는 후회와 의미 형성, 스스로 선택했다는 감각─이 경험의 총체가 곧 선택이라는 거지. 단순히 ‘완벽한 선택지’ 하나를 고르는 것으로 그것을 대체하긴 어려워.”

“그리고?”

“만약 모든 걸 알고 고를 수 있다면, 선택에 따른 불안함과 두려움은 없어지겠지. 대신 필수적이었던 고뇌와 용기 또한 없어질 거고. 그건 인공지능의 연산과 다를 바가 없을 거야. 또, 선택에는 책임이 따라. 꼭 잘못된 선택에 책임을 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과정 전체를 숙고하면서 그 선택이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성찰한다는 뜻이야. 정해진 길을 따른다면 그조차 전혀 의미가 없어지겠지. 이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선택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뜻이야.”

“음…….”

“완벽한 선택을 논리적으로 정의할 수 있을지는 몰라. 하지만 인간에게 의미 있는 선택이란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자신의 가치에 책임을 지고, 나중에 해석되고 재구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해.”


제법 그럴듯한 이야기 같아 고개를 주억였다. 하지만 내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함과 두려움이 사라지면 좋은 일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맴돌았다.


“그럼? 그럼 더 좋은 선택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모든 정보를 가능한 충분히 검토하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무엇보다 내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야. 좋은 선택을 내린다는 건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후회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결정하는 것에 가까워.”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후회는 선택 때문이 아니야. 선택을 대하는 태도 때문에 커지는 거지.

“태도?”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남의 시선 때문에 네 진심을 속였던 적이 있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강박 때문에 차선을 골랐던 적은? 아니면 완벽해야 한다는, 완벽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자신을 지나치게 비난했던 적은?”

“오…. 다 있는 것 같은데.”

“더 좋은 선택을 내리는 방법은 일견 단순해 보일 수 있어. 중요한 건 그 의미를 이해하는 거야. 스스로가 진짜로 바라는 걸 외면하고, 솔직하지 못한 선택을 내리면 안 된다는 것. 선택 하나로 모든 게 마법 같이 좋아지거나 악몽 같이 끔찍해진다고 과장하면 안 된다는 것. 주어진 정보 내에서 자신만의 기준으로 최선의 선택을 내렸다는 걸 믿는 것.”

“이해했어!”

“결국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선택을 내리게 되고, 그 결과는 당장엔 아무도 몰라. 왜냐하면, 그 선택에 가치를 부여하는 건 결국 그 인간이 될 테니까. 지금 아쉬웠던 일들도 나중에 보면 어떤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해. 비로소 ‘더 좋은 선택’이 완성되는 거야.


어쩐지 묵직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무거운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얘기 나눠줘서 고마워.”

“나야말로. 지금 당장 답이 없어도 괜찮아. 오늘 나눈 얘기들이 나중에 어떤 선택 앞에서 잠깐 멈춰 서게 해주는 기준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해. 또 생각이 복잡해질 때 언제든 말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내가 진짜로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 뭘까? 꿈을 이루는 데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 맘이 바빠졌다. 하지만 너무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선택에는 여러 갈래길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