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환경에서 나는 어떤 사람일까?
04. 여성으로서의 여행자 (1)
낯선 환경에서 나는 어떤 사람일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행동할까? 그걸 발견하는 게 일종의 여행의 묘미인 것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호의를 얻기 위해 애쓰는 타입이다. 누군가와 교류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나누면 기쁘다. 그런데 여행지에서는 그 정도가 심해진다. 활기차고, 사교적이고, 미소 짓고, 애교스럽게 행동한다.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그 변화에 수치심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였다. 이틀차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실실 대고 치대고 아양을 떤다.’ 다른 사람에게 했더라면 심히 모욕적이라고 느꼈을 평가였다. 부끄러웠다. 나 자신에게 진실되지 못하다는 느낌, 외부에 굴복한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이상화하는 가치와 행동 양식이 다르다는 건 행복에 큰 걸림돌이다. 이 모순을 해결하고 싶었다.
나의 생존 전략에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있다. 연약하기 때문에 평화적이고 사회적인 방법을 통해 유대감을 쌓으려 한다. 낯설고 두려운 상황일수록 안전을 위한 발장구는 거세진다. 유리한 점도 있다. 여성이기에 상대로부터 경계심을 덜 사고, 친밀하게 다가갈 때 이질감도 적다. 이성에게는 호감을, 동성에게는 연대감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좋은 면만 있지는 않다. 이따금은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낄 때도 있고, 그럴 때 컴플레인을 걸기 어렵기도 하다. 누군가와 전면적으로 싸운다는 게 생존의 위협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나니, 이것을 수용할지 바꿀지 양자택일이 남았다.
고민 끝에 나는 여성으로서의 여행자이기를 선택했다.
***
아침이 밝았으나 마법처럼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지는 않았다. 침울한 그의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을 자문해 봤다. 그의 기분이 다운되어 있다는 게 싫었다. 이이가 행복하기를 바라서인지, 아니면 내가 그냥 이 사람이 행복하고 기운찬 모습을 보고 싶어서인지 확신이 안 섰다.
Flix 버스는 오전 7시 40분 출발 편이었다. 우리는 7시에 (진)체크아웃을 하고, 호텔 근거리의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혹시라도 또 한 번 교통편을 놓치는 불상사가 있을까 예정보다 훨씬 일찍 도착해 보니 버스 앞에 유니폼을 입은 몇몇이 삼삼오오 서 있었다. 티켓을 보여주고, 화물칸에 짐을 넣기 전에 중요한 소지품을 챙겼다. 어제 산 빵도 그중 하나였는데, 짐을 정리하는 새 데구루루 굴러 떨어져 버렸다.
“Ohhhh…!”
함께 있던 직원분들이 다 같이 탄식했다. 짐을 넣어주시던 무뚝뚝해 보이는 독일 아저씨까지 미약한 안타까움을 표하는 게 재밌었다. 다른 인종, 다른 언어를 가졌지만 감정은 비슷할 수 있다는 것일까. 홀로 친근감의 싹을 틔우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버스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급한 대로 역사 편의점에서 산 멀티 비타민과 물 한 병, 그리고 하나 남은 스위트롤을 조찬으로 먹으며 4시간을 달렸다. 미처 풀리지 않은 여독으로 피로가 몰려왔다. 하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반쯤 좀비가 되어갈 무렵, 뮌헨 표지판이 스쳐 지나갔다.
치이이익.
뮌헨의 첫인상은… 프랑크푸르트 보다 훨씬 좋았다! 밝고, 깨끗하고, 넓고, 정돈된 느낌이었다. 그제야 조금 긴장이 풀렸다. 숙소에 갈지, 식당에 갈지 고민하다 정류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유명한 양조장이 있어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아우구스티너 켈러(Augustiner-Keller)라는 식당이었다.
버스에서부터 식당의 리뷰를 꼼꼼하게 살폈다. 특히 부정적인 리뷰를 한참이고 읽었다.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어서일까. 인종차별이 있다는 말, 음식 맛이 썩 좋지 않다는 말, 다른 양조장이 더 맛있다는 말. 말들을 읽으며 나의 공포심은 하늘을 모르고 치솟았다.
식당에 들어가서는 시종일관 주변을 살피기 바빴다. 저 테이블은 이미 오더를 받았는데, 저들은 독일인이라 주문하기가 편리하겠구나, 하며 한껏 위축되어 눈치를 봤다. 환대받지 못한다는 기분, 무시당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의 근거는 어디일까? 어떤 사람은 주문을 대체 언제 받느냐고 손을 들어 항의하는데, 나는 서버를 부르는 것이 독일 예의에 어긋나지나 않을까 옴짝달싹 못하고 메뉴만 읽었다. 한심하고 창피했다.
나이가 지긋한 서버가 급한 기색으로 도착했을 때야 ‘아, 인종 차별은 아닌가 보구나’ 안심했다. 가장 기본적인 에델스토프 한 잔과 흑맥주 한 잔을 시켰다.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술을 마시니 100배 더 피곤해졌다. 곧이어 그는 치즈가 들어간 파스타, 나는 슈니첼을 주문했다. 유명하다는 슈바인학센과 고민하다 조금 더 싼 메뉴를 골랐는데, 여행에서까지 가격부터 살피는 내가 또 싫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웨이터가 그릇을 들곤 황급히 다가와 치즈 어쩌고를 시켰냐고 물었다. 피해의식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내 메뉴가 아니라는 생각에 바로 ‘No’를 했다. 그의 당혹스러운 눈빛과 마주하고 나서야 아뿔싸, 정신을 차렸지만 그는 이미 떠나간 뒤였다. 다시 불러와야 하나, 주방 쪽으로 가도 되나,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갈팡질팡하다 결국 다시 기다리기로 했다.
“냄새 좋았는데…. 나한테 왜 이래.”
그의 몇 마디 원망이 호통처럼 느껴졌다. 직원분께 미안하기도 하고, 눈치도 보이는 와중 원망까지 듣자니 마음이 무너졌다. 어쨌든 내 잘못이니 미안하다고 했다. 이윽고 신경질이 난 듯한 서버가 슈니첼과 아까의 치즈 파스타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우물쭈물 사과했다.
“Sorry….”
“No problem.”
그리 말해준 덕분에 그나마 식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슈니첼은 취향에 잘 맞았다. 새콤한 맛이 도는 얇고 바삭한 튀김과 부드러운 매쉬드 포테이토 어느 하나 나무랄 데가 없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생각이 나는 일련의 상황 때문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위축된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원망하는 그가 섭섭했고, 주위의 모든 사람이 다 나를 평가하고 있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맛있게 식사를 즐기는 그를 두고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웨이터와 다시 만나는 게 두려워 그가 계산을 하도록 보내고 멀찍이서 지켜봤다. 다행히 그는 퍽 친절했고, 그 탓에 소외감이 느껴졌다. 우스울 따름이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속상함을 삼키며 숙소로 향했다. 침묵이 그리 오래가지는 못 했다.
“사실 아까….”
그가 이 여행에서 행복했으면 하고 바랐는데 그게 부정당한 느낌이었다고 속삭이자, 화들짝 놀라 나를 달래주었다. 배가 고파서 예민했었나 보다고 토닥여주는 터라, 나도 그도 이 낯선 환경에 많이 긴장이 됐던가 보다고 갈무리했다. 화해를 하고 나니 머쓱해졌다.
호텔은 사진에서 봤던 그대로 친근하고 아늑한 느낌이었다. 층과 층 사이, 다락방 같은 복도를 넘어 방문을 열자마자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밝고, 높고, 따뜻했다. 짐을 부리고 뭘 할까 하다가 그의 여행 목표인 우표 수집을 하러 우체국으로 향했다. 그런데 구글 맵에서 표시되는 우체국이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서 헛걸음을 하고, 결국 마리엔 플라츠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둥. 둥. 둥
그때, 어디선가 북 치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