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을 든 여자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김하나, 황선우

by 해구

근 한 달 요약 : 너무너무너무너무 바쁘다! 너무 어렵다! 아는 게 없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요즘은 과거의 제가 벌려놓은 일들을 처리하면서 현재 차오르는 일을 처리하는 바쁜 날들입니다. 정말,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지만 종강이 다가오는 걸 느낄 때면 배꼽 아래에서 근질근질하게 쓰고 싶은 글들이 차오르고 있습니다. 쓰지 앟는 시간도 필요한 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이 일들이 마무리되고 키보드를 와다다다 칠 생각을 하니 기분은 제법 좋습니다. 하지만 와중에 욕심은 커서, 바쁜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국제도서전이나 북 토크를 다니며 숨통을 틔우고 있어요. 그리고 오늘 글은 몇 주째 허전해진 브런치가 민망해서 올리는 독후감입니다. 저에게 엿을 날리는 것도 과거의 저지만, 도와주는 것도 그 녀석이네요.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유튜브 겨울 서점을 아실 것 같습니다. 오늘은 부산의 겨울님의 [아무튼, 피아노] 북 토크를 듣고 왔는데, 겨울님이 5주년 기념으로 개최했던 독후감 대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패기롭게 내서, 샴푸바 선물을 받았던 글이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기억이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면 진짜 이뤄진다는 말의 힘을 믿습니다. 다른 분들이 글로 읽어주신다면 힘이 더 커지겠죠! 하하! 제 큰 그림입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저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든 S 와 나

이 책은 생일 선물로 만난 책입니다. 바쁜 고등학교 3학년에 생일 챙길 시간도 없어서 친구가 택배로 보내준 선물이었어요. 핑크색 표지에는 다정한 여자 둘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상자에 같이 들어있던 친구의 편지에는 ‘사랑하는 울 지수 이 책을 읽고 언젠가 우리가 같이 동거하는 날을 상상했으면 좋겠어. 그날이 오게 되면 이 책을 우리 책장에 같이 꽂자. 흐흐 생일 축하해’라고 휴먼 고딕체로 프린트된 편지가 있는 게 아니겠어요? 너무 그 친구다워서 웃어버렸습니다. 고등학교 내내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힘들고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들에 짬나는 점심시간이면, 친구와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한 손은 친구 손을 잡고 운동장을 걸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학교의 명물 같은 것으로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같은 방향으로 빙글빙글 회전 초밥처럼 걸었어요. 저희는 그 짧은 30분을 걸으면서, 한참 뒤의 미래를 조잘거렸습니다. 우리 나중에는 같이 살자. 우리 서재에 포근한 소파를 놓고 완벽한 가습기로 습도를 조절하는 거야. 안락한 조명이랑 고양이 한두 마리를 키우면서 사는 거야. 같은 바람들이었어요. 소망에 가까운 말들이었어요.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거든요. 당장에 닥친 대학입시부터 우리를 다른 곳으로 갈라놓는데, 그게 가능하겠어? 같은 회의적인 생각이 가득한 고등학생이었거든요. 30~40대의 나라니, 19살 고등학생에게는 미지의 영역이었습니다. 모르는 것이 많은 때였어요.

친구가 그런 말들을 기억하고 책을 선물해준 게 기뻤어요. 선물로 받은 만큼 꼭 한 번에 쭉 읽어버리고 싶어서 한 주 동안 열심히 할 일들을 해치우고, 날을 잡고 새벽에 책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책 속에는 제가 막연히 상상만 하던 여성들이 있었어요!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40대 여성의 삶이 그곳에 있었던 거예요. 그때의 충격이란.. 영어 듣기 평가 1번 2번을 연달아 틀렸을 때보다 놀랐습니다. 이런 삶이 가능하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눈앞에 책 한 권 분량으로 자신들의 삶을 설명해주는 다정함 덕분에 금방 현실감을 되찾았어요. 그리고 금세 부러워졌고, 희망감이 차올랐죠. ‘나도 저렇게 살 수 있구나!’하고요.

그 희망감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제 안에 남아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남아 있을 것 같아요. 그 책 한 권이 저에게 준 이야기는 어떤 소설보다도 멋진 응원 같았어요.

‘이거 봐봐, 언니들 멋지지? 너도 할 수 있어. 이렇게 사는 방법도 있단다.’

그럼 저는 ‘네 언니, 너무 멋지네요. 최고입니다.’라고 하는 거죠. 저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더 나아가서, 정말 상상하던 이상적인 풍경 그대로 살지 못해도 어떻게 나름대로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에게 소중한 기억입니다. 사실 겨울님 추천 영상을 보고 읽은 책은 아니지만, 겨울님 추천 영상을 보고 다시 읽었어요. 겨울님 덕에 소중한 기억을 글로 남길 수 있어서 기쁘네요. 이 책을 선물해준 친구는 겨울 님의 구독자이지만 저랑 독서 취향이 매우 달라서 서로의 책장에 겹치는 책이 거의 없는데 몇몇 겹치는 책은 전부 겨울님이 추천해주신 책들뿐이에요. 그게 참 신기하고 좋습니다. 겨울님이 저희 취향의 공통분모랄까요. 독후감 마무리를 이렇게 끝내도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겨울님이 읽을 거라고 생각하니 글이 길어지네요. 하하 감사했고, 더 수고해주세요. 몸 챙기시면서요. 제 삶에 큰 활력소가 되어주고 계세요. 감사합니다!


-늘 그 자리에 있어주는 걸로 안정감을 느끼는 구독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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