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으로 쓴 글

누구의 시점인지, 아시겠나요?

by 해구


여긴 어디인가. 나는 차가운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피부에 닿는 바닥은 내 몸이 닿았던 영역만 미지근했고, 조금씩 움직이며 느껴지는 낯선 바닥은 깜짝 놀랄 정도로 차가웠다. 내가 어떤 이유로 이곳에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늘 그렇듯,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물이 흐르는 곳으로, 털 달린 동물의 몸에 매달려서 온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언제나 집으로 잘 돌아갔으니까. 물이 있고 흙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나의 집이다.


혹시, 여기가 내 집일지도 모르지. 나는 머리를 바닥에 문지르면서 부드러운 흙바닥을 찾으려 했다. 단단한 돌은 꿈쩍도 안 했고, 그 어떤 물기도 발견하지 못했다. 또한 돌의 바다는 눈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었으므로 여기는 아니었다. 나는 작게 몸을 웅크렸다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 몸을 펼쳤다. 내 주름 사이사이에 남은 수분감이 촉촉하게 느껴졌다. 일단 이 물기가 말라버리기 전에 그늘로 가기로 했다. 눈앞에 펼쳐진 돌의 바다 저 멀리에 균일하게 서 있는 나무들이 보였다. 낯선 무늬가 새겨진 나무들은 충분한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응, 가보자. 길게 늘어지는 햇빛은 언제나 나에게 너무 아프다. 주름 사이에 얼마 남지 않은 물이 조금씩 사라지는 게 느껴진다. 내심 초조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전진하는 것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몸을 웅크리고 숨을 내뱉으면서 한껏 폈다. 나를 내던지듯 몸을 펼치면 차가운 돌 바다가 내 몸을 식혀준다. 그렇게 되면 주름 사이의 수분도 덜 마르는 기분이 든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늘을, 물을, 집을 찾아가는 건 내 오랜 특기 중 하나였다. 같이 태어나고 자란 동료들 중에는 그렇지 못해서 말라 죽고 눌려 죽고, 자진해서 죽어버리는 녀석들을 봤다. 그때 같이 자란 녀석들 중에 살아남은 건 나 하나뿐이다. 여전히 그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아, 오랜만에 깊은 생각을 하는 건가, 이러다가 말라죽으면 어쩜 좋지. 하지만 생각의 흐름을 끊기 어려웠다. 많은 친구들을 떠나보냈지만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친구가 떠올랐다.




아, 그 애는 이름이 있었다. 미엘. 어디서 주워들은 건지, 기원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는 그 이름은 아마 스스로 붙인 것 같았다. 나에게는 땅 두더지가 알려줬다고 했었는데, 그게 허풍이라는 걸 모르는 놈은 없을 것이다. 땅 두더지는 언제나 우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니까. 미엘은 언제나 바쁘게 많은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일은 생존을 고려하지 않아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쓸 떼 없이 건조한 나무를 오르거나, 물 없이 일주일을 살아본다거나, 고양이의 등에 매달려서 최대한 살아보겠다고 할 때는 다들 온몸으로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미엘은 우리 중에서 가장 빠르고, 건조했으므로 그 모든 걸 해냈다. 물론 고양이 등에 매달리다가 돌아온 날은 몸의 절반 정도가 으스러지긴 했지만, 우리들이 수분을 나눠주면서 열심히 간호하자 금세 통통하고 촉촉해졌다.




나는 나무도 축축하고 어두운 집을 찾기 위해 거닐고, 언제나 물을 찾아다니며, 고양이 같은 두 눈 털 짐승을 피하는 데는 도가 텄다. 그 덕에 친구들 중에서 나만큼 상처 없는 녀석이 드물정도였다. 나는 안전주의였기 때문에 미엘의 하는 짓 하나하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빨리 죽고 싶어 하는 놈 같았다. 그래도 미엘은 언제나 집으로 돌아왔으니까, 언제 죽으려나 싶다가도 다 같이 잘 보살펴줘야겠다는 생각만 했었다. 생각이 바뀐 건, 그래. 미엘이 돌아오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을 때였다. 백은 넘었던 동료들이 각기 다른 이유로 짓눌리고 말라붙어서 여섯이 됐을 때 미엘은 여행을 떠나겠다고 했다.


아직도 그 목소리를, 몸짓을 기억한다. 나는 살고 싶은 땅을 찾을 거야. 지금 이곳이 싫은 게 아니야, 그저 분명 더 사랑할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 어디서 물을 뒤집어쓰고 온 건지, 건조한 부분 없이 촉촉한 몸을 빛내며 말했었다. 우리는 역시 미엘은 미쳤다고 말하며 미엘을 말렸다. 너는 너를 너무 모르는구나. 그 동그랗고 길기만 한 몸으로 어디를 가겠다고 그래. 어디를 갈 수 있는데? 뭘 할 수 있는데? 그 땅에 도착한다고 해서 거기가 집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해? 네가 어떻게 아는데? 분명 죽을 거야. 말라죽을 거라고. 다른 녀석들은 저번에 고양이 등에 살겠다는 녀석을 말리듯 온 몸을 뭉쳐서 말렸다. 미엘은 다른 녀석들 사이에 엉킨 채로 나를 지긋이 바라봤다. 그리고 나에게 같이 가겠냐고 물었다. 정말, 나에게만 물어봤다. 이 중에서 가장 느리고, 촉촉하며, 길고 몸이 무거운 나에게 물어본 거였다. 나는 당연히 싫다고 했다. 생각을 거치지 않고 튀어나온 본능이었다. 이 녀석을 따라가면 죽을 게 분명했으니까.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미엘이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대체 왜, 어디를 가려는 걸까. 하고 축축한 웅덩이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 생각이 너무 길었다. 어느새 머리맡에 그늘의 경계가 보였다. 음 다행이다. 나는 오늘도 살았어. 그늘의 경계를 넘어서 어두운 곳을 향해 움직였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분명 몸을 웅크렸다가 폈다가, 숨 쉬듯 익숙한 움직임을 반복하고 있는데 그늘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늘어서 있는 나무가 만들어내고 있는 그늘이 동시에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해가 기울고 있구나. 나는 눈앞에서 놓쳐버린 그늘에 좌절했다. 주름 사이의 수분은 이미 말라버렸다. 머리부터 등으로 이어지는 건조한 감각에 피부가 갑갑하게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건 처음인데, 여기서 말라버리는 건가. 어릴 적 엄마가 하던 당부들이 떠올랐다. 얘야 우리는 말라버릴 장소를 고를 수 없어. 어디서 말라버리든 그건 우리 다운 죽음이다. 그걸 꼭 기억하렴. 엄마는 그 말들을 몇 번 씩이나 하더니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흔한 방식으로 짓눌려서 죽었다. 가장 흔한, 보통의 죽음이었다. 그 모습을 볼 때도 그랬지만 그게 보통이라면 나는 절대 마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너무 비참하고 무서웠다.


나는 마르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낯선 돌의 바다에서 말라버리는구나. 나는 정신을 놓기 위해,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리석의 차가움을 최대한 곱씹으면서 죽음을 기다렸다.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때 돌의 바다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쿵쿵거리며 돌바닥을 울리고, 알 수 없는 노랫소리를 내며 바스락거리던 네 개의 다리가 나를 감쌌다. 이건 정말 큰일인데. 상황이 안 좋았다. 눈을 뜰 수 없어서, 움직일 수 없어서, 정확하진 않았지만 이 노랫소리와 바닥을 울리는 움직임은 분명 인간이었다.


"야 만지지 마, 애들은 만지면 화상 입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건조해 보이니까 물 뿌려주자."


시끄러운 노랫소리는 바닥도, 나무도 울렸다. 동료들 중 절반쯤은 인간에게 짓눌렸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거대함과 오만함으로 우리를 유린하기도 했다. 나는 미엘이 죽는다면 인간의 손으로 찢겨 죽을 거라고 확신하던 때가 있었다. 그 벌을 받는 걸까. 인간의 신체가 내 위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엄청난 그늘이 빠른 속도로 나를 덮었다. 그들은 거대한 만큼 엄청 난 그늘을 몰고 다니지만 절대 그 그늘에 들어가서는 안된다. 그 그늘에 현혹되는 순간 밟힐 테니까. 머리 위로 갑자기 비가 내렸다. 물은 흘러서 내 등에, 머리에 스며들었고 바싹 마른 내 주름은 통통해지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물을 빨아들이던 몸 아래로 물이 고이자 대리석 바닥에 끈적하게 붙었던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본능에 몸을 맡기자 나도 모르게 온몸으로 춤을 출 수밖에 없었다. 아 나는 물이 너무 좋아. 하늘을 올려다보니 인간들은 그 징그러운 손으로 비를 내리고 있었다. 철저하게 나만을 둘러싼 비가 내리는 것 같아서 나는 미엘을 떠올렸다. 분명 더 사랑하는 곳을 찾겠다던 그 애는 지금쯤 어디에 말라붙어있을까. 운 좋게도 나는 지금에야 알게 됐다. 나는 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사랑할 수 있구나. 물줄기가 약해지는 비가 아쉬웠지만 괜찮았다. 이미 충분히 고여버린 물 덕분에 행복했다. 지금 찢긴다면 최고의 죽음이 되겠지. 자 인간들아 나를 찢어. 무력하지만 행복하게 물웅덩이에 몸을 맡겼다.


"으 징그러워. 얘 어떡해."


"텃밭에 놓아주자."


얼마간 노랫소리가 들리더니 인간들은 나무로 나를 집었다. 응, 그래. 나를 찢어.


의지할 곳 없이 불안한 몸은 본능적으로 나무를 휘감았고 이런 내가 참 싫었다. 남들과 다른 죽음을 기다리는 나는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인간들은 나를 만지지 않았다. 짜증이 날 정도라서 나도 모르게 눈을 뜨고 인간을 향해 온몸으로 소리쳤다.


날 찢으라니까!


눈을 떠보니 나는 허공에 떠있지 않았다. 바로 아래에 부드럽고 촉촉한 흙이 있었다. 개미부터 진딧물, 무당벌레 같은 낯설지만 익숙한 이웃들이 득실득실한 비옥한 땅이었다. 나는 내가 이미 찢겼나? 여기는 말로만 듣던 유토피아 같았다. 작게 술렁이는 바닥이 느껴져서 인간들을 올려다봤다. 머리를 만지는 물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인간의 상태를 가늠할 수 없지만, 그들이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게 분명했다. 나에게 비를 내리고, 집으로 데려다준 그들은 다시금 비를 내리고 있었다. 오, 어머니, 저는 제가 마를 곳을 정한 것 같아요. 미엘, 네가 말한 걸 지금은 알 것 같아. 그때 너를 따라가지 않은 건 옳았어. 나는 눈을 감고 부드러운 흙을 온몸으로 느꼈다. 아 물이 스며든다. 흙이 부드럽게 나를 감싼다. 나 집으로 돌아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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