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마지막 날

개인적인 날의 1인칭과 3인칭

by 해구

제주도를 다녀왔고, 그 여행의 마지막 날을 일기로 작성했습니다. 두 개의 일기를 썼는데요, 하나는 그날의 1인칭으로, 하나는 3인칭으로 썼습니다. 쓰면서 즐거웠고, 친구들을 사랑하게 된 날의 글입니다.






(1인칭)

나는 오전 7시 12분에 눈을 떴다. 4일을 같은 침대를 썼지만 옆자리의 인기척에 잠을 깨는 건 어색한 일이었다. 옆자리에서 휴대폰을 하고 있는 나영이 뒤로 맑게 떠 있는 하늘이 끔찍했다. 실내에서 바라보는 제주도의 여름 하늘은 정말 선명한 파란색으로, 사진이 잘 나올 것 같지만 에어컨이 있는 실내를 벗어나 하늘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끔찍한 열기에 녹아버린다. 나는 어제 먹은 더위로 게워낸 속이 다시금 울렁거렸다. 어젯밤 4박 5일 제주여행의 4일째를 마무리하고, 짐 정리를 하려고 했지만 속이 울렁거려서 되는 대로 캐리어에 구겨 넣었다. 오늘은 2시 비행기로 집에 가야 하는 날이다. 더위만큼 싫은 일이지만 11시 체크아웃을 지키기 위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늘 있는 기립성 저혈압 때문에 5초 정도 눈앞이 캄캄했다. 머리를 짚고 비틀거리는 나를 보고 나영이가 물이 든 컵을 내밀었다. 나는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입술을 벌려서 작게 고맙다고 말했다. 짐을 정리하는 중에 잃어버린 줄 알았던 머리핀을 발견했다. 정말 놀랍게도 이번 여행에는 물건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작년에 제주도에서 지갑, 열쇠, 휴대폰을 잃어버렸던걸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다. 나는 나영이와 승효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 아무것도 안 잃어버렸어. 정말 너희 덕분이야.


나영이와 승효는 캐리어 앞에 쪼그려 앉아서 엄지를 번쩍 들었다. 그들은 식당을 나설 때나 화장실 하나를 다녀올 때도 나에게 휴대폰은? 카드는? 안경은? 하고 물어봤다. 나는 그게 귀찮을 때도 있었는데 그렇게 다시 돌아가서 가져온 물건만 한 보따리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내가 작년에 비해 성장했다기보다, 내 친구들이 더 철저해졌다는 것에 가깝다. 그래도 나에게 잃어버린 물건 없는 여행 같은 건 생소한 일이라서 그저 기뻤다.


셋 중에 가장 작지만 가장 무거운 캐리어에 다시 옷을 개어 넣었다. 눅눅한 냄새가 나는 수영복은 지퍼백에 담아서 무릎으로 누른 다음 공기를 쫙 빼서 입을 닫았다. 아무리 줄이고 누르고 해도 내 캐리어는 도착한 날로부터 딱 2배 정도 무거울 것 같았다. 캐리어 입이 닫치지 않아서 한 발로 밟고 겨우 지퍼를 밀어잠궜다. 입을 닫은 캐리어 지퍼는 한껏 양쪽으로 늘어나서 톡치면 주욱 미끄러지듯 지퍼를 찢고 옷가지들이 쏟아질 것 같았다. 역시 키보드를 가지고 오는 게 아니었나. 제주도에 와서 글을 쓴 날은 첫째 날과 셋째 날 각각 2000자, 8000자씩 썼다. 기왕 제주도에서 글을 쓰는 김에 좋아하는 키감의 키보드로 쓰고 싶었고, 키보드를 아끼는 마음에 크고 단단한 하드케이스에 담은 채로 제주도에 가져왔다. 키보드가 없었으면 조금 여유롭였을 캐리어를 상상하며 빵빵한 캐리어를 현관으로 밀었다.


자기주장이 강한 바퀴는 앞으로 밀자 왼쪽으로 기울어졌다. 오래된 캐리어고, 버거운 짐을 아슬아슬하게 담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 입시전쟁을 함께했던 캐리어에게 미안했지만 발로 툭 쳐서 현관에 눕혀 놓았다. 조금만 더 힘내 주라.




돌아가는 비행기가 2시니까 버스를 타고 가려면 12시에는 버스를 타야 했다. 우리는 맛있는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밥을 먹은 다음에 근처 소품샵을 둘러보기로 했다. 제주도의 마지막 날 일정은 오전 10시에 나가서 12시에 끝내는 스케줄이었는데, 평소였으면 큰 문제없을 일정이 무거운 캐리어 때문에 곤란해졌다. 터질 듯 뚱뚱해진 캐리어는 버스의 어떤 자리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 캐리어를 3개나 작은 마을버스에 태우자 아무도 준 적 없는 눈치가 보였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택시를 타고 싶었지만 가진 건 적고 짊어질 건 많은 상태여서 선택지가 없었다. 밥집 근처 정류장에서 끙끙대며 버스에서 내린 나는 이 캐리어를 정류장에 두고 가기로 했다. 나는 양산이 없으면 한여름 길바닥에서는 20분도 걸을 수 없다. 식당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지만 전부 오르막길이다. 한 손에 양산, 한 손에는 캐리어와 기념품 과자박스, 어깨에는 아이패드와 각종 전자기기가 든 크로스백을 짊어지고 갈 수는 없었다. 잃어버리는 한이 있어도 이것들을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는 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친구들에게 말했다. 나는 정류장에 캐리어를 두고 갈 거야. 내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나영이를 향해 단단하게 말했다. 나는 한국인들을 믿어.



나영이와 승효는 서로 어떻게 할래? 하고 질문하더니 그냥 두고 가자로 의견을 모았다. 더운 여름날이 아니었으면, 그런 짓은 하지 않을 애들이지만 여름 햇빛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 사람이 없는 정류장에 덩그러니 놓인 캐리어 3개는 명백하게 불안해 보였지만,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너무 더우니까 어쩔 수 없는 거야.



우리는 언덕을 10분간 걸어서 식당에 도착했다. 절망적 이게도 가게는 에어컨을 틀지 않고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친환경적인 가게였다. 나는 속으로 가게 주인을 저주하면서 전복돌솥밥을 주문했다. 그쯤에 나는 바다에 빠진 사람처럼 보일만큼 땀에 젖어있어서 사장님이 에어컨을 틀어주겠다고 하는 말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 여름은 정말 최악이야.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밥이 참, 곤란한 맛이었다. 더위를 먹어서 미각에 문제가 생겼나? 이렇게 소금 맛일 일인가? 나는 떨어지는 땀방울을 무시하고 친구들을 쳐다봤다. 다들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었다. 내 미각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구나, 하고 안심했고 제주의 마지막 식사가 소금밥이라는 사실에 조금 슬펐다. 웃긴 건 분명 소금밥이었는데 먹다 보니 그냥저냥 먹을 수 있게 됐다. 분명 에어컨 공기가 가게 안을 휘감고, 내 등의 땀이 시원해졌을 때부터 그렇게 느껴졌다. 나는.. 정말 더위에 약하구나, 다시 한번 깨달았다. 가게를 나올 때는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넉살 좋게 인사까지 하고 나왔다. 저주하던 마음은 에어컨 바람 덕에 시원하게 휘발됐다. 물론, 다시금 하늘 아래에 떨어진 우리는 소품샵까지 여름을 저주하며 걸어야 했지만.




우리는 소품샵에서 귀엽다는 말만 연발하고 마스크 목걸이를 샀다. 하얀 비즈 사이에 귤 모양 챰이 달려있는 형태였는데, 귀여워서 잘 샀다고 여러 번 생각했다. 물론 이것도 하늘 아래에 떨어지면서 다 쓸모없다고 생각했지만.




쓸모없는 물건을 사고 돌아온 버스정류장에는 캐리어 세 개가 그대로 있었다.


한국인들, 믿고 있었어! 작게 기뻤는데, 이 기쁨은 버스 안에서 휘발됐다. 버스 안은 사람들로 가득해서 정말 더웠다. 그리고 만원 버스 안에서 눈치를 보며 뚱뚱한 캐리어를 안고 있는 일은 굉장히 피로했다. 앞사람 겨드랑이에 머리를 딱따구리처럼 박으면서 기도했다. 다음 여행에는 반드시 자동차가 있어야겠다. 정말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재차 생각했다.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정말 지쳐있었다. 대화할 힘이 없었는데 어떻게든 소통은 해야 했다. 그래서 말이 줄고, 짧아져서 조금 날카로워졌다. 워낙 무던한 셋이지만 그때만큼은 뾰족한 공기가 감돌았다. 누군가를 찌르려는 공격성은 없지만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한 날카로운 공기였다. 우리는 짐을 맡기고 카페 음료를 사서 남는 의자에 앉았다. 나영이와 승효는 트위터를, 나는 지금 쓰는 이야기의 문제들을 생각했다. 이번 여행 내내 파도가 잠잠할 때, 길을 걷다가 정적이 흐를 때, 밤 산책 중에 소외감이 들 떼면 내 이야기 속 세상으로 도망쳤다. 그 순간순간에도 이 생각을 지금 하는 게 맞나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도망치는 것도 맞았지만 문제점은 늘 곱씹게 되니까. 한 가지 더 큰 문제가 있다면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돌아가는 비행기 좌석에 앉을 때까지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행기가 기류 이상으로 한쪽으로 기울자 문뜩 생각의 흐름이 끊기면서 양쪽의 두 사람이 보였다. 한껏 머리를 흔들며 졸고 있는 그들에게 한쪽 어깨씩 내어주었다. 둘 다 머리를 살짝 내 쪽으로 당기자 자석이라도 붙은 것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잠든 사람의 머리는 생각보다 무겁구나. 잔뜩 지친 두 사람을 보며 죄책감을 느꼈다. 나영이와 승효도 느꼈을 것이다. 나는 여행하는 때때로, 종종, 자주 내 생각에만 빠져서 허우적댔으니까. 그 둘은 늘 내 생각이 끝나길 기다렸다. 참 고맙고 미안한 일이다. 이들이 이렇게 피곤한 게 마치 나 때문인 것 같았다. 나도 지쳐있어서 그렇게 생각했다. 다행히도 그 생각은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면서 뚝 끊어졌다.




["안녕하세요. 이 항공기의 기장입니다. 김해공항은 날씨가 매우 좋습니다. 연착되었지만 기분 좋은 비행이군요. 여러분의 소중한 여행을 저희 항공사와 함께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




주변을 둘러보니 비행기 안의 모두가 지쳐 보였다. 내 친구들이랑 같은 얼굴이었다.


그 얼굴들에 뭔가 모를 위안을 받았다. 내가 다녀온 시간에 '소중한 여행'이라는 네임택을 붙이자 그저 여행은 원래 힘든 건가 싶었다. 나는 눈을 비비는 나영이와 승효에게 물었다.


여행 재밌었어? 친구들은 순서대로 힘들어. 졸려. 하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작게 깔깔 웃었고 나도 힘들다.라고 외쳤다. 너덜너덜해진 우리는 서로 몸에 붙어서 공항 밖으로 나갔다. 또 버스를 타고 환승해서 집에 가야 했지만 뭐 그쯤에는 더워서 아무 생각이 안 났던 것 같기도 하다. 제일 가까운 기억인데 선명하지 않은 걸 보니 기억이라는 건 시간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건 아닌 것 같다. 뭐 모를 일이다. 지금 나는 실내의 에어컨 앞에서 일기를 쓰고 있으니, 그저 소중한 여행이었다. 할 뿐이다. 하하, 즐거운 여행이었어.





(3인칭)


그녀는 낯선 인기척에 눈을 떴다. 눈을 뜨고서 제일 처음 한 일은 휴대폰을 찾는 일이었다. 바닥을 더듬어서 화면을 보니 시간은 오전 7시 12분이었다. 옆자리에 누워있던 나영의 뒤에 있는 파란 하늘을 미간을 찌푸린 채 노려봤다. 한참을 눈썹을 모은채 창밖을 보다가 벌떡 일어나서 비틀거렸다. 나영은 그녀에게 물을 담은 머그컵을 내밀었다. 그녀는 컵을 받으면서 아주 작게 어색한 목소리로 고맙다고 말했다. 그녀는 물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엉망으로 물건이 쑤셔져 있는 캐리어를 내려다봤다. 작게 한숨을 쉬더니 자연스럽게 머리핀 하나를 집어서 머리를 묶었다. 그리고 나영과 승효를 향해 덤덤하게 말했다. 나 아무것도 안 잃어버렸어. 정말 너희 덕분이야.


나영과 승효는 캐리어 앞에 쪼그려 앉아서 엄지들 들어 올렸다. 그녀는 개구쟁이처럼 씩 웃더니 캐리어 안의 옷을 전부 꺼내서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했다. 짐이 많은 작은 캐리어라서 더 신경 써서 옷을 작게 만들기 위해 애썼다. 지퍼백을 쓰기도 하고 발로 누르기도 했다. 제일 무거운 키보드를 정리할 때는 조심스럽게 정리했다. 무거워도 안전한 하드케이스에 담아왔건만 그 케이스를 옷으로 감싸기도 했다. 느긋하게 키보드를 담은 캐리어는 정말 빵빵해서 잘 닫히지 않았다. 어찌어찌 닫힌 캐리어는 곧 터질 것 같았는데 그녀는 개의치 않는 사람처럼 발로 캐리어를 밀었다. 꽤 큰소리가 나면서 캐리어가 현관으로 넘어졌다.


그녀는 나영과 승효에게 10시에는 나가서 버스를 타자고 했다. 새까맣게 탄 얼굴로 말하는 목소리가 이미 지친 사람 같다. 커다란 캐리어를 하나씩 끌고 나온 세 여자는 끙소리를 내면서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멈추거나 방지턱을 밟을 때마다 움직이는 캐리어가 그녀에게 버거워 보인다. 그녀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영과 승효에게 선언했다.


나는 정류장에 캐리어를 두고 갈 거야. 나영은 단번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승효가 그럴까? 하고 말하자 자연스럽게 캐리어를 두고 갔다. 승효와 나영은 지도를 보며 가는 길을 이야기 하지만 그녀는 버스정류장의 캐리어 세 개를 지긋이 바라봤다. 햇볕 때문에 금세 양산을 펼치고 걸어도 식당까지 가는 언덕은 아지랑이가 필 정도로 뜨거웠다. 그녀는 양산 밖으로 삐져나오는 팔을 몸 안쪽으로 넣는 것에 온 신경을 쏟았다. 도착한 식당은 에어컨을 틀지 않은 채 창문을 열어 둬서 그녀는 식당에 앉은 이후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영과 승효는 이런 순간이면 그녀에게 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창 밖을 보는 그녀의 뒤통수를 보면서 승효는 직원을 불러서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부탁하고 그녀의 앞으로 젖은 물수건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솥밥이 나오고 한 숟가락을 입에 욱여넣자 그녀는 당황한 듯 나영과 승효를 쳐다본다. 나영과 승효도 당황한 듯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그제야 눈을 내리깔고 솥밥을 조금씩 입에 넣기 시작했다. 가게 안에 시원한 공기가 돌면서 그녀의 입에 들어가는 밥의 크기가 점점 커졌다. 밥을 먹은 뒤에 세 여자는 조금은 부드러워진 공기로 햇빛 아래로 나갔다. 빠르게 소품샵으로 장소를 옮긴 그들은 귤 모자, 귤 반지, 귤 팔찌 같은 것을 만지작거리면서 귀엽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마스크 줄을 하나씩 사고 나와서 귀엽다며 셋은 사진도 찍었다. 사진 속 그녀는 햇빛 아래에서 한껏 미간을 찌푸린 상태였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서 그녀들은 각자 다른 자리에 앉게 됐다. 몸보다 큰 캐리어를 감당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경우, 버스 안에서 캐리어를 불편한 자세로 끌어안은 내내 정면의 남성 겨드랑이에 머리를 박았다. 조금 흔들리면 눈앞으로 돌진해오는 겨드랑이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는 포기하고 눈을 감고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맡겼다. 겨드랑이의 주인도 그녀를 이해하는 것 같았다. 겨드랑이에 몇 번의 박치기를 했는지 모르게 될 즈음에 버스에서 내린 그들은 조용히 일렬로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걸어갔다. 그들 사이에는 아스팔트와 바퀴가 맞물려 굴러가는 소리만 들렸다. 더 이상 뜨거울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내리쬐는 하늘 아래서 그녀의 미간은 더욱더 구겨졌다. 나영의 발등은 이미 가벼운 화상을 입은 상태라서 걸을 때마다 아팠고 승효는 졸면서 걷고 있었다. 길고 긴 줄을 서서 짐을 맡기고 카페의 키오스크에서 음료를 주문해서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비행기 탑승이 시작됐다는 안내방송이 다섯 번 흘러나올 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나영과 승효가 어깨를 밀면서 겨우 그녀를 비행기에 태웠다. 그녀는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사람처럼 얼이 빠져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도 30분 정도는 계속 그랬다. 기류 이상으로 비행기가 오른쪽으로 기울면서 겨우 정신이 돌아온 듯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쯤 승효와 나영은 머리를 미친 듯이 흔들면서 졸고 있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로 당겼다. 그들의 머리는 완벽한 기댈 곳을 찾은 것처럼 딱 맞았다. 그들의 머리가 주는 묵직함은 그녀의 정신이 다른 곳에 가지 않게 묶어둘 정도는 됐던 것 같다. 그녀는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때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이 항공기의 기장입니다. 김해공항은 날씨가 매우 좋습니다. 연착되었지만 기분 좋은 비행이군요. 여러분의 소중한 여행을 저희 항공사와 함께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




그녀는 기장의 목소리를 듣고 주변을 둘러봤다. 뭔가를 찾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뭘 찾는지, 찾기는 한 건지 모르겠지만 길게 숨을 내뱉으면서 빳빳하게 세운 허리를 편안하게 굽혔다.




그 움직임에 나영과 승효는 눈을 비비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녀는 물었다.


"여행 재밌었어?"


나영은"힘들어."


승효는"졸려."라고 말했다.


그녀는 입을 열지 않은 채 마스크 안에서 작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힘들어."


셋은 너덜너덜한 상태로 서로에게 매달려서 공항 밖까지 이동했다. 시내로 나가는 공항버스가 바로 도착해서 다급하게 달려야 하는 이슈가 있었지만 흘러가는 대로, 되는 대로 했더니 시내에 도착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탔을 때는 다들 입을 모아 집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여전히 덥고 힘들었지만 택시 안에 감도는 냉기와 함께 열기가 휘발되면서 몸은 차차 시원해졌다. 그리고 그녀는 깊게 심호흡을 하면서 집에 닿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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