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쓰려니 손이 잘 안 움직이는 것 같기도, 머리가 멍한 것 같기도 하다. 너무나도 지난하게 분주했던 약 두 달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해서 지난한 재수 생활과 밋밋한 학교생활을 병행하면서도 나름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를 겪어보니, 이제야 대학생이라는 게 와닿기 시작했다.
디자인과 특성상 매주 이어지는 과제와 피드백은 한 주 한 주가 새로운 시도와 실패를 맛봐야 하는 것이었고, 그 와중에 나는 창의적인 방식으로 실수하고 실패했다. 이어지는 실패와 실수에 참 많이도 힘들었다. 물론 실패한 만큼 배우고, 이겨내서 결과물을 성실하게 쌓아온 결과 이번 주 화요일에 전시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몇 줄로 요약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날들은 아니었을 테지만, 지금 내가 잘 버텨서 종강과 연말을 맞이할 수 있었던 건 올해 만난 문학의 밤 친구들 덕분이다. (aka문학 너구리단)
호두,만두,나,박스타
내가 일하는 미술학원의 학생으로 만난 만두라는 학생은 나와 동갑이었는데, 알고 보니 내 고등학교 동창과 찐한 친구사이였다. 그걸 알게 됐을 때는 그저 세상 참 좁다 싶었는데 함께 귀가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만두에게 내가 소설을 쓰고 있다는 말을 하게 된 게 시작이었다. 나는 혼자서 글을 쓰고, 수정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던 찰나였고, 읽어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만두는 굉장히 흔쾌히 읽어주겠다고 했으며 자기 친구 중에 읽어줄 사람이 있다며 카톡방을 만들었다. 그 카톡방의 이름이 [문학의 밤]이다.
지금이야 손끝이 떨어질 것처럼 춥지만 우리가 4인조 체제로 처음 만난 건 언덕을 오르면 땀이 삐질거리는 여름이었다. 지나다니면서 눈으로만 보게 되던 중화요리 가게에서 호두와 만두를 만났고, 우리는 식사 후에 카페로 이동해서 내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자리에 앉자마자 둘은 나란히 아이패드를 꺼내더니 한줄한줄 정성스럽게 첨삭한 필기 파일을 꺼내어 설명했다. 나는 민망하게도 아이패드 없이 내가 쓴 글의 인쇄본과 볼펜 하나 덜렁 꺼낸 채로 그들의 말을 곱씹었다. 정중하고 정성스러운 둘의 피드백 사이에서 나는 그녀들에게 완전히 감겼다. 만두,호두, 박스타와 나 이루어진 네사람은 너무 잘맞았다. 안젛은거 없이 너무 좋은 날이 이어졌고 우리 굉장히 많은 날들을 함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학의 밤이 이름값을 한건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문학의 밤 친구들이 내 글을 읽어준 것 역시 내 글 세계관에 굉장히 커다란 도전이고, 멋진 시작이었다. 실제로 도움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들이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부분은 [음식에 대한 태도] 일 것이다.
사람마다 음식이나 끼니를 대하는 태도는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먹는 것 자체는 좋아하지만 학기가 시작되면 나의 끼니는 한없이 귀찮은 일이 된다. 한번 거르기 시작한 끼니는 계속 이어져서 학기가 끝나는 시점에는 언제나 4kg 정도가 빠진다. 그런데 이번 학기에는, 놀랍게도 거의 빠지지 않았다.
문학의 밤 친구들과는 언제나 밥을 먹는다. 그것도 아주 맛있는 메뉴로! 단 한 명이라도 굉장히 맛있어하지 않으면 그날은 실패라면서 우리 지역의 맛집 지도를 가지고 있는 만두는 언제나 음식에 진심이다. 빈도수로 보자면 점심보다는 저녁이 많은 것 같다. 카페에서 맛있는 디저트와 차를 마시면서 즐겁게 이야기하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면 정말 경건한 자세로 메뉴를 선정한다. 이미 이 일대의 맛집을 파악하고 있는 만두는 언제나 나를 진정한 맛집으로 안내한다. 나는 감탄하고 만두는 뿌듯해하며 호두는 열심히 먹는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점은 그 가게의 사장님들이 만두를 기억한다는 점이다! 뭐랄지, 사장님들과의 유대감? 연대감? 같은 게 느껴진다. 문학의 밤에서 소식좌를 맡고 있는 P는 우리가 자주 가는 식당의 남자 사장님을 털보 사장님, 혹은 아빠라고 칭한다. 소리 내어 아버지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그런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우리는 먹고 먹고 웃는 모임인데, 특이 사항이 있다면 우리가 다 같이 음식을 먹을 때.. 꽤 많이 먹는다. 각자가 평소보다 반이상은 더 먹는 것 같다. 정말 이상하게도 말이다.
나는 음식에 쓰는 돈은 아깝다고 생각했고, 가능하면 집에서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올 한 해 동안 문학의 밤은 예외였다.
월말에 텅텅 비어 있는 통장잔고를 보면서도 기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돈이 많이 드는데, 왜 아깝지가 않을까. 그저 음식이 맛있고 친구들이 웃기고 재밌어서였을까? 좀 낯선 내가 신기하다고만 생각했다. 이게 문학의 밤과 식사하면서 느낀 첫 번째 변화다.
두 번째 변화는 이야기를 소비하는 속도가 느려졌다는 점이다.
나는 나를 소개할 때, 재미 사냥꾼이라고 말한다. 언제나 어디서나 의식주보다 중요한 것은 즐거운 이야기를 흡수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만화, 드라마, 영화, 책, 사람들의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빨가벗고 얼어 죽을 것 같아도 나는 좋은 이야기를 찾아 헤맬 것 같다. 이건 나에게 필수적인 요소라서 생명과 직결된다고 느낀다. 이게 없으면 한없이 공허하고, 텅 빈 느낌이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중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방대한 양의 이야기를 먹어왔다. 그런 나의 일상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결제한 책이나 만화들, 하다못해 시청한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양이 현저하게 줄었다.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싶으면서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덜 먹은 것에 비해 공허하거나 텅 빈 느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게 참. 이상하고 이상했다.
이런 이상함도 바쁜 일상이 겹쳐지면 자연스럽게 무시할 수 있는지, 그저 바쁜 나날에 위안을 받으면 하루하루를 채워갔다. 그런데 문득, 밤 10시에 만두와 P가 감자탕집에서 싸우는 걸 보면서, 다른 날의 만두가 돼지국밥을 음미하는 모습을 보면서 실이 끊어지듯 밥과 내 이야기의 상관관계를 깨달아버렸다.
문학의 밤과 함께하는 식사는 그저 밥을 씹어 삼키고, 소화하는 행위가 아니다.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누면서 일상을 공유하고 깔깔대는 시간이다. 그 즐겁고 충만한 시간에 곁들여지는 밥은 맛있는 조미료 같다. 나는 그 식사시간에 평소의 내가 먹는 밥과는 전혀다를 무언가를 함께 먹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참 오랜 시간을 혼자서 밥을 먹어왔다. 아마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급식을 제외한 밥들은 내가 차려서 먹었다. 동생이 있었지만, 글쎄다. 어느 순간부터 식탁에는 나 혼자였다. 그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하고 납득했던 것 같다. 그런데도 문득문득 허기가 지고,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느낌이 들었던 건 중학교를 들어가고 나서부터였다. 가족과 저녁을 먹으러 들어가는 친구들을 보면 허기가 졌었던가. 그 시기부터 미친 듯이 만화를 봤다. 그리고 말이 안 되는 속도로 도서관의 책들을 읽어나갔고, 그걸로 배가 부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까, 많은 친구들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과 밥을 먹으며 함께 섭취해왔던 좋은 이야기들, 시시껄렁한 다정함들이 나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그 결핍을 메울 도구로 이야기를 찾아서 무식하게 씹어먹었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에는 내 삶의 수많은 조각들이 정갈하게 맞춰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가족과 식사하러가는 친구를 보면 그렇게도 허기가 졌구나. 그때는 그래서 였구나. 하고 이제서야 내가 서러웠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자각없는 외로움은 어디까지 이어져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걸 깨달은 당시에는 서글플 새도 없이 만두와 P의 투닥거림을 보고 웃기 바빴다. 대놓고 슬퍼하기에는 내 결핍이 메워지는 과정에서 내 안의 검고 슬픈 구멍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슬퍼하기에는 좋은 상황이었다. 그저 내가 놀란 부분은 내가 이렇게까지 나를 몰랐다고? 하는 충격이었다. 아마도 이 자각없는 외로움은 그 당시 나에게는 딱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는 일은 귀찮고, 번거롭다고 생각해야 덜 외롭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시절의 나는 시간선에서는 가장 멀지만 정서적으로 가장 가까운 것 같다. 그런 식으로 혼자 외로움을 삼킨 어린 날의 나를 생각하면 속이 조금 쓰리기도 하다. 하지만 눈앞에는 밥한술에 웃음, 물한컵에 즐거움을 더해주는 문학의 밤이 있다.
이제야 왜 한국 사람들이 "밥은?", "밥 먹었어?" 하는지 알게 됐다. 그 인사가 얼마다 깊은 뜻을 가지고 있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돼버렸다. 아아. 그걸 지금 깨닫다니. 물론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점심'은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한자로 점 점에 마음 심을 쓴다.) 문학의 밤과 함께한 식사는 언제나 내 마음에 점을 찍어줬다. 그 점은 나도 모르게 내가 늘 원하던 것이었다. 문학의 밤과 밥을 먹는 동안은 평소보다 이야기를 덜 읽게 되고 혼자 먹는 밥은 맛이 없겠지만 내 안의 구멍은 마음의 점이 되고, 맛집을 하나라도 더 알게 될 것이며 잔뜩 웃게 될 것이다. 내일은 피스타치오 딸기푸딩을 먹고 감자탕을 먹으러 갈 텐데, 내일도 점을 찍을 생각에 신난다. 다들 밥은 잘 챙겨먹는 걸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