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9월 26일 월요일

by 해구

지금 시간은 12시 57분, 오전 11시 전공수업이 있었다. 어젯밤에는 알바를 끝내고 와서 쉬지 않고 글을 쓰고, 블로그에 업로드했다. 그리고 바로 과제를 했는데, 컴퓨터가 사양이 달리는지 일러스트 파일을 로딩하는 내내 버거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천고 만고 한 시간을 거쳐서 7시에 시작한 작업은 11시 즈음에 끝낼 수 있었고 게임 조금, 친구와 수다 조금 떨다가 2시쯤 잠에 들었다.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10시 30분에는 도착해서 작업물을 프린트해야 했다. 그래서 9시에 알람을 맞췄지만 미적미적 눈을 감았다 떴다가 하는 중에 시간은 10시가 돼버렸다. 학교까지 11시에 가려면 10시에는 나가야 하기 때문에 택시를 탔다. 오늘의 시작은 짜증 나는 택시기사로부터 시작됐다.

정지수.png 노랑 미친 개미

최대한 빠른 길로 가 달라는 나에게 어디가 제일 빠른 길이냐고 물어왔다.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나는 택시기사님과 대화하는 걸 엄청 싫어한다. 특히나 길에 대한 대화는 더더욱. 그래서 나는, 그냥 네비 찍어서 나오는 길로 가달라고 했지만 기사님은 정말 자기 마음대로, 멀리 돌아서 학교에 갔다. 평소에 택시로 20분이면 되는 길을 40분이 걸려 도착했다. 택시비를 안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정말 누구 하나 붙잡고 고소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수업시간까지 20분 남은 시점에서 급하게 프린트를 하러 예대 건물 1층 프린트실로 들어갔으나 프린트기에 종이가 없었다. 나는 급한 마음으로 과실까지 달려서 종이를 가져왔는데, 프린트기 자체가 고장이었다.(고장이라는 문구나 표시는 어디에도 없었다.)

수업까지 10분 남은 상황에서 도서관까지 가서 프린트하고 돌아오는 건 불가능했다. 절대 시간에 못 맞출게 뻔했다. 하지만 과제였는걸.. 나는 가방을 수업교실에 던지듯 내려놓고 유에스비를 들고 달렸다. 우리 학교는 정말 크다. 게다가 예대 건물과 도서관은 캠퍼스의 끝과 끝에 있다. 달려도 15분은 걸린다. 하지만 마음먹고 달리려는 순간 동기들과 마주쳤고, 자기들도 프린트 안 했단다. 나는 그들에게 편승해서 조금 찜찜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교실로 돌아갔다.


교수님이 오셨고, 과제를 검사하는데 내 피드백을 가장 마지막으로 하겠다고 하셨다. 저번 주 수업을 조부상으로 빠진 나에게 뭔가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1번 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기다리는 게 익숙하지 않지만, 어쩔 수 있나. 기다렸다. 그리고 무려 어젯밤에 내가 한 작업물을 검사하지 않으셨다. 정말... 너무.... 너무하다... 해오라고 했으면서 저번 학기에 만들어 놨던 ppt를 넘겨보고 몇 마디 하신 게 다였다. 정말 정말 너무 하다.. 어젯밤의 나는 뭐였나.. 조금 울적했다.


울적함을 곱씹을 새도 없이 다음 수업을 들으러 가야 했다. 1시에는 기초 아랍어 수업이 있는데, 학기초 ot다 뭐다, 태풍에, 빨간 날까지 모조리 겹쳤고, 게다가 조부상까지 겹쳐서 9월 마지막 주지만 처음 가는 수업이었다. 그런데 강의실을 모르겠는 거다. 보통 99304라고 과목 아래에 명시되어있으면 99호관 304호라는 의미인데, 이 수업은 B22204 였다. 나는 수업을 마치고 예대에서 느린 걸음으로 멀어지며 고민했다. B22건물이 있나?

지금 생각해봐도 그렇고 당연하게도 그런데, 22호관 건물의 204호였다. 그때는... 왜 알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왠지 언어교육원 방향일 것 같아서 스리슬쩍 그리로 방향을 틀었는데, 한 20분 걷고 나니까 22호관 건물인걸 깨달았다. 참고로 22호관은 도서관 옆, 그러니까 내가 있는 곳에서 제일 멀었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려서 정말... 정말 어이없었다. 운수 좋은 날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원래는 월화에 일정이 많아서 알바를 안 가는 날이지만 일하는 곳의 원장님이 하도 원하셔서 이번 주만 월화를 출근하기로 했기 때문에, 저녁에는 알바도 가야 했다. 이 운수 좋은 날에 알바까지 가야 하다니 정말 싫다. 하루가 다 끝난 것도 아니고, 분명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나는 정말 끔찍한 기분이다. 오늘 하루가 무언가에 저당 잡혔다.



+수업을 20분 일찍 마치고 나서 친구들과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최근에 면허를 따고 차를 산 친구가 데리러 온다길래 그냥 버스를 타고 간다고 했다. 물론 걸어서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후회했다. 카페까지 가는 버스에 딱 탄 그 순간 친구가 학교 앞에 도착했다는 카톡을 받았다.. 버스는 출발했고, 세정거장이면 가는 거리였다. 오.. 노우.. 나의 불행이 친구에게 전파되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고맙고 미안했다.


하지만 카페에 가자 하루의 결은 조금 달라졌다. 내 친구들은.. 정말 뒤집 에지 게 유쾌하고 웃기다. 분명 얼굴 보면 깔깔 웃을 것 같기는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냥 웃었고 낄낄거렸고 맛있는 돼지갈비 찜을 먹었다. (나는 그 주에 세 번이나 먹은 돼지갈비찜이었다.) 여전히 맛있었고, 웃겼고, 밥 먹은 뒤에는 알바를 가야 했는데 그것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였다. 11시 즈음에 집에 와서 내일 있을 발표 ppt를 만들고 누웠는데, 하루가 생각만큼 끔찍하지 않았다. 물론 과제는 하기 싫었고, 몸도 마음도 피곤하기는 했지만, 끔찍하지는 않았다. 분명 유쾌한 친구들 덕분이겠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안 좋았던 날이 그저 그런 평범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 날이 된 건 분명 친구들과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역시 친구들은 너무 좋다. 그래도 빨리 주말이 왔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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