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이 사라졌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by 해구

오늘은 2023년 4월 7일 금요일이다. 오전 도자기 수업을 째고 12시에 일어나서 밥을 먹었다. 주변을 가볍게 정리하고 야무지게 간식까지 먹은 지금 시간은 1시 28분. 모니터 화면 아래로 빛나는 숫자에 현실감이 없다. 내 3개월이 어디로 간 건지 모르겠다.


브런치 글 기록을 보니 작년 12월이 마지막 글이었다. 이 글이 올해의 첫 글인 셈이다.(정말 어이가 없다!)


변명 아닌 변명, 성찰 아닌 성찰을 해보자면 작년 9월부터 글과 멀어진 채로 살았다. 프로작가들이 몇 년간의 공백기 뒤에 출간한 책을 보면 각자 나름의 힘든 일에 글을 손에도 잡지 못해 괴로워해도 결국 이렇게 글의 세계로 돌아왔다.라는 작가들을 종종 봤다. 하지만 나는 웃기게도 그런 이유는 아니었고..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미대생이 감당해야 할 과제와 전시였고, 그것 외에는 좋은 이유들이다. 작년 9월 즈음에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고, 정말 자주 만났다. 학과도 학교도 다른 네 명이 그렇게 모인다는 게 신기해서 더 애착이 가는 모임이다.


글 쓰는 사람은 자고로 자아가 뚜렷하고 바라는 바가 명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쪽으로는 영 연이 없는 듯하다. 새로 생긴 사람들과 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예쁜 카페에 갔다.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한두 달간은 재미있어서 정신을 못 차렸고, 그 이후에는 이렇게 의미 없이 즐겁기만 한 시간을 잔뜩 보내도 괜찮나? 하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그래도 나란 사람, 즐거움에 약해서 그렇게 즐겁기만 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이 [즐겁기만 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알 수 없는 불안과 죄책감을 느꼈다. 삶이 고통이라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고통을 감내하는 시간이 나를 나답게 만든다는 확신이 있었다. 삶(life)은 아름답지만 하루하루는 노력과 인내가 버터반죽처럼 겹쳐져서 삶이라는 바삭한 페스츄리가 된다. 내 버터반죽은 [힘들지만 즐겁다]가 기본이라서 [즐겁다]는 좀 어색하다.


약 7개월 즐겁기만 한 일들을 잔뜩 해왔다. 그 기간 동안 알게 된 건 내가 안 해본 일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처음 먹어보는 것도 많고, 남들 다 해봤다는 것도 나에겐 처음이 많더라.(이게 정말 놀라웠다.) 책, 영화, 만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를 잔뜩 읽는 만큼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삼국지, 군주론, 토지는 내 일기처럼 줄줄 잃어도 내가 무슨 카페를 제일 좋아하는지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지난 7개월은 그것들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흘려보낸 시간들이 눈에 밟히지 않냐고 묻는다면 조금 아쉽긴 하다. 지난 시간 동안 확실히 독서량이 줄었고, 영화도 만화도 덜 봤다. 당연히 소설은 거의 쓰지 못했다.


내가 쓴 소설을 읽으면서 만난 사람들 덕에 글 쓰는 시간이 줄어든 게 웃긴 점이다. 내가 정말 글에 미친 사람이었다면 아 읽어줘서 고마워, 그럼 나는 다음 글을 쓰러 갈게. 이만. 이렇게 말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즐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안심시킨 건 내 상황이다.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은 예쁜 카페에 가서 사진을 찍고, 그저 즐겁기만 한 시간을 보내도 괜찮지 않나? 하는 것. 글은 언제나, 평생에 걸쳐서 쓸 수 있지만 이 생기 넘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건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당연히 그 즐거운 시간들 속에는 조각 같은 배움과 영감이 있었고, 그건 내 페스츄리를 바삭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변명 아닌 말을 늘어놓는 이유는 이제는 글을 쓰겠다는 그런 각오다. 덜컥 3월 중반에 휴학을 해버렸고, 지금 그 충동적인 선택을 후회하면서 즐기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일을 적게 하고, 매일매일을 계획 없이 살고 있는 중이다. 후회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할 게 없는데, 바쁘고 싶기 때문이고. 즐기는 이유는 그저 평소에 하고 싶었던 것들을 느긋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쓰려고 한다. 글은 '쓴다!'하고 써지는 게 아닌 걸 알지만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쓴다고 외쳐본다.


7개월 동안 뭘 했나. 많은 걸 했다. 뭉뚱그리기 아쉽지만 정말 많은 걸 했다. 남 은 휴학기간도 많은 걸 했고 즐거웠다.로 끝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러난 정신 사나운 사람이라서 일기도 여기 썼다가 저기 썼다가 하지만 브런치에도 종종 일상을 올리자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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