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로 살아남기(2) : 어떤 총알을 가질 것인가.

일단 글을 씁니다.

by 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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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어떤 총알을 가질 것인가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총알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돈을 많이 버는 게 기준 일수도 있겠고, 누군가는 이러저러한 비전이 있어서 공익을 위한 총알이어야 하는 사람도 있겠고,, 나는 다른 건 모르겠고, 재밌는 게 최우선이다. 나한테 재밌는 거! 내가 좋아하는 거! 가치 있는 거! 그런 기준들로 어떤 총알을 가질 것인지 생각해보면, 사실 답은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다. 내 취미,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그 답이 있겠지.(당연한 소리를..)


나는 도서관을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물으면 단번에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한다. 좋아하는 물건은, 책, 노트북, 키보드, 예쁜 전자기기들. 취미는 만화, 영화보기. 전시, 공연, 연극 감상, 책일기, 손으로 하는 공예 작업들. 내가 살면서 가져온 장래희망들을 순서대로 나열해보면, 수의사, 변호사, 작가, 의사, 영화감독, 디자이너..

영화나 책을 좋아하는 건 그 속의 살아있는 인물들의 모든 삶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나는 늘 이야기를 읽으면 주인공이 되었다. 여러 가지 삶을 경험하게 해주는 다양한 매체들에 푹 빠졌었다. 수의사, 변호사, 의사, 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그들이 대하는 사람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매료됐던 것 같고, 디자이너는 그들의 작품 하나하나가 가진 사연, 스토리에 감동해서였다. 좋아하는 것들의 교집합을 모으고 모으다 보니 알 수 있었다.


나는 이야기[the stoey]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사랑하는 오타쿠

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걸 알고 나서 얼마나 신났었냐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말하고 다녔다. 그 시기에 유난히 영어로 자기소개할 일이 많았는데, 늘 짧은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I love the stories!"


몇 달간 머리를 싸맨 결과가 단 한문 장이라도 나온 순간은 정말 유레카였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나, 취미들을 보면 그렇게 어려운 결론도 아니다.

친구들은 "애들아, 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야." 하는 말에 "아는데?"라고만 말했다. 오히려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냐고 어이없어했다. 그러게,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지. 뭐 놀랍진 않다. 원래 나는 가성비나 효율이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라서 이렇게라도 알게 된 것에 만족한다.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떤 계열의 총알을 가져야 하는지도 대강(?) 감이 잡혔다.

이야기를 소비하는 것이 좋은 사람이라면 평론가? 비평가? 이런 글공부를 해야 하나? 싶을 것이고, 이야기를 생산하는 것이 좋은 사람은 창작을 할 것이다. 나는 놀랄 것도 없이 키보드를 잡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원래 글 쓰는 것도 좋아했고... 나름 잘했으니까? 평소에도 간간히 생각나는 재밌는 망상을 글로 옮겨놓기도 했다. 중학생 시절에는 직업 작가를 꿈꾸기도 했었다. 나에게 글 쓰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밥벌이가 될 퀄리티의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데에 있었다.



사랑이 밥 먹여 주나요

이야기를 사랑한다고 모두가 창작을 하지는 않는다. 오랜 시간 소비만 해온 내가 잘 알고 있다. 소비만으로도 달달하거든. 그것 만으로도 아주 달달해서 충분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랑하는 마음을 기반으로 창작을 해서, 그걸로 돈을 벌어서 먹고 산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의 배신감이란.. 왜 아무도 안 알려준 거예요. 이렇게 엄청나게 멋진 걸 만들어서 돈을 벌 수 있다니.. 처음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왠지 모르게 억울해졌다. 이사실을 좀 더 예전에 알았으면 더 많은 멋진 걸 창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억울함이다.

뭐 내 창작을 막는 사람은 그때도, 지금도 아무도 없으니 다 내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면.. 아니 다 내 선택이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창작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글을 쓰는 거다. 내키는 대까지만 쓰는 게 아니라, 안 쓰이는 부분이 나와도 끙끙대면서 앉아있었다. 그렇게 하니까 좋든 나쁘든 어떻게든 결과물이 나오더라. 6시간 끙끙대다가 한 문장 쓰고 밤을 새워도 안 풀리는 부분이 있지만, 매일 그 짓을 하다 보니까 어떻게 완결까지 써낼 수 있었다. 심지어 한 번은 전혀 안 풀릴 것 같던 순간에 물 흐르듯 캐릭터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서 그 기세로 엔딩까지 써 내린 적이 있다. 그건 진짜 엄청난 경험이라서, 이 맛에 창작하는구나 하고 짜릿함을 느꼈다.

(이 이야기는 내 인생에 너무 중요한 경험이라서 나중에 또 써먹기 위해 말을 아끼겠다.)


브런치 또한 내 글쓰기 인생에 굉장히 큰 전환점이다. 늘 창작을 한다고 하면 픽션 소설을 혼자서 써왔다. 남들한테 보여주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것이다. 알고는 있다. 원래 뭐든지 잘하게 되려면 남들에게 보이고 평가받고 수정하고 발전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알고는 있다. 하지만 아직 내 글을 보이고 누군가가 읽는다는 게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내 망상을 세상에 선보인다니 한 명만이 읽는다 해도 모른 퍽 하고 숨어버리고 싶어 진다. 그래서 글들을 써내면서도 이러다 내 이야기들은 내가 죽으면 사라지는 건가.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 내가 죽으면 이야기도 죽는 거 아닌가. show must go on인데... 이야기도 끊임없이 써지고, 읽어져야 하는데.

내 글들은 주인 잘못 만나서 이게 무슨 고생이람. 이런 생각하면서 잠에 들곤 했다.

그래서 올해는 공모전에 출품해서, 되든 안되든 한 사람에게라도 내 글이 읽히도록 하자.라는 목표를 세웠다. 아마 큰 차질이 없으면 순조롭게 공모전 출품이 진행될 텐데, 그 목표에 브런치는 전혀 예정 없던 항목이었다.


따로 승인을 받아야 하고, 블로거가 아니라 '작가님'으로 불리는 이곳은 내가 넘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쓴 글이 작가 승인된 게 나에게 큰 추진력이 되었다. 늘 소설만 쓰다가 수필이랄지, 내 이야기를 쓰니까 술술 써져서 단순히 쓰는 과정도 즐겁다. 올라가면 드문드문 달리는 하트 알람이 그렇게 기분이 좋다. 다른 분들이 읽어준다는 게 어찌나 부끄럽고 짜릿하던지.... 다시 한번 이 맛에 글 쓰는구나 싶다.


제목은 [오타쿠 살아남기]로 쓴 글이지만, 나는 그 과정의 아주 앞부분에 있다. 내가 오타쿠로 살아남은 상태로 내가 살아남은 꿀팁을 전달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나는 아직 그 방법을 모른다. 이제부터 알아가기 위한 스타트라인에 서있다고 느낀다. 앞으로 올라가는 글들도 살아남는 과정이 올라올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올리는데도 부끄럽고 짜릿하고 뭐 그렇다. 꾸준히 뵐 수 만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네요. 아이고 부끄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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