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도서관에 들린 것은 오래간만이었다. 이곳에 들린 것은 예정에 없던 갑작스러운 변덕 때문이었다. 나는 도서관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장소인 2층으로 올라가 책들로 둘러싸인, 커다란 창문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구석진 자리에 서서 바깥의 풍경들이 바람에 쉬이 흔들리고 변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저 자리에 일몰이 찾아올 때면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잎사귀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가만히 떠올리는 순간들이 좋았다. 그리고 단단하며 견고한 나무 서가와 그 사이에 무수히 꽂힌 책들의 질감들을 손끝으로 느끼는 일들은 언제나 좋았다. 날은 적당히 흐렸으며 약간은 우울한 듯 낮은 습기들이 떠돌고 있었고, 나무 책장에 기대어 오래된 책 냄새들이 저마다 이야기를 건네 왔다. 간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피로들이 노곤하게 조금씩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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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은 저마다 제목을 달고 있었다. 시선, 영혼의 집, 백년의 고독, 작지만 특별한 행복, 11월의 고양이, 코끼리는 보이지 않아 등의 익숙하거나 낯선 제목들을 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앞에 멈춰 섰다. 이 두껍고도 섬세한 책을 여전히 사랑한다. 거리에서건, 카페에서건, 잠들기 전 어둠 속에 천천히 번져나가는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건 나는 몇 달에 걸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나가곤 했다. 그러다 지치면 가벼운 교양서나, 소설, 산문집 등 여러 종류의 책들을 같이 읽곤 했다.
때로는 이런 식으로 몇 달에 걸쳐 길게 읽어 내려갔던 책은 아주 오래전 완역본으로 나온 루소의 <에밀>과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등 몇 권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는 몇 달 동안 오래도록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사랑했던 건, 내가 기억하고 있었던 건, 젊음의 계절 속에서 오랫동안 내가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기억일지 모른다는 것을 이렇듯 흐린 토요일 오후, 쓸쓸하며 흐린 오후에 알게 되는 것이다. 오래전 사랑이 내게 그러했듯이. 내가 누군가를, 여름처럼 빛나던 너를 사랑했던 것을, 그렇게 사랑 그 자체를 사랑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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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가에 서서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은 스페인 내전 이후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돕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소설의 시작은 흔한 클리셰로 다가왔지만, 독특한 문체와 낯선 스페인어, 알 수 없는 비밀과 매혹, 어쩌면 고통에 관해 적어 내려가고 있는 이국적인 문물로 가득한 남미 작가의 장편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장편인 탓에 책장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일은 다음을 기약하며 일어섰다.
그러다 바르셀로나에서 테러가 일어났다는 뉴스를 오후에서야 뒤늦게 접했다. 누군가에게는 기분 좋은 울림이었던 지명이 또 누군가에게는 오래 동안 지워질 수 없는 상처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는 일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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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다시 여행가방을 꾸릴 것이다. 2,3일 동안 익숙해진 이 공간을 떠나 또 다른 도시 속으로 훌쩍 떠났다가 올 것이다. 그때에 내가 마주하는 것들이 무엇일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그 순간에는 낯선 여행지에서의 낯선 바람들과 공기들이 나를 다시 낮고 천천히 부유(浮游)하게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