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김미경
앞치마를 단단히 맨다. 니트릴 위생장갑의 탄성을 느끼며 왼손 오른손 낀다. 자기 몸 만한 냄비에 육수를 끓이는 이 여성은 김미경이다. 56세, 이혼녀, 식물 오타쿠, 그리고 나의 엄마. 그녀의 수식어들은 아주 간단하고 유쾌하다. 미경은 30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재산 분할로 생긴 아파트 한 채와 현금 3억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우동, 떡볶이, 김밥을 파는 분식집 가게다. 꿈에 그리던 인생을 매일 살고 있는 미경은 깊게 파인 눈가 주름이 무색할 만큼 방긋 웃으며 손님을 맞이한다. 음식 장사하면 몸만 상한다는 자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경은 본인의 고집대로 창업을 했다. 56세의 나이에.
미경은 그녀의 외사촌 ‘희진 언니’와 함께 가게를 열었다. 희진 언니는 미경 인생의 최대 위기이자 인생의 반환점인 1년 전 이혼을 할 때, 매일 전화하던 언니다. 미경은 낙천적인 사람이다. 이혼으로 잠을 못 자고, 밥도 걸러 살이 빠지고, 용돈벌이를 하던 식물가게에서 잘려 돈이 없어도 상황을 비관하지 않았다. 외려 그녀는 본인의 인생이 잘 풀릴 것이라며 희망이라는 풍선에 바람을 끝없이 넣었다. 희진 언니에게 전화해 “언니 우리 장사하자! 나 이혼 정리되면 그 돈으로 가게 얻어서 분식집하자” 라며 본인 머릿속에 있는 온갖 창업 아이디어와 계획을 전화기에 침 튀기며 말했다. 기대와 희망으로 흥분한 미경은 낙천적인 사람이고, 다르게 말해 나쁜 상황은 회피하는 버릇을 한 평생토록 가진 여자였다.
원가, 이익률, 재무제표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미경. 심지어 부동산 경매 경험이라 곤 딱 한 번뿐인 미경의 창업 계획을 듣는 딸아들은 그저 허무맹랑하게 들린다. 같은 배에서 나온 첫째 아들과 둘째 딸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아들은 엄마의 창업 아이디어와 계획에 대한 수정 사항과 조언을 하나부터 열까지 차례대로 말한다. 듣던 미경의 귀가 지쳐서 그만하라고 할수록 아들은 더욱 냉정해지고 이성의 날을 곤두세운다. 딸은 가만히 듣는다. 딸은 아기에게 맞장구치듯이 단어를 반복적으로 뱉는다. ‘응응, 맞아 맞아, 그래그래, 그치그치, 오오, 좋아 좋아’ 요식업 종사자 아들의 말은 듣기가 싫고, 회사 사무직 딸의 말은 듣기가 좋다. 그리고 말할 맛이 난다.
그래서 창업을 어떻게 했냐고? 부동산 거래 경험이 많은 희진 언니가 위치 좋은 가게를 찾았고, 인테리어는 막내 제부가 해줬고, 딸이 마케팅과 회계를 담당했고, 둘째 제부가 재료 유통을 봐줬고, 미경이가 사랑하는 식물은 잠깐 일했던 사장에게 넘치도록 받았고, 그 나머지 머리 아픈 모든 것은 아들이 해줬다. 그렇다. 미경은 인복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녀를 돕기 위해서라면 온갖 사람이 두 팔 걷어 부치고 전국 팔도에서 찾아온다. 그런 미경도 딱 한 사람의 인복이 없다. 바로 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