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김미경
“우동 한 그릇 주문이요”
미경은 탱글탱글한 우동면 위에 진득한 국물을 붓는다. 그리곤 튀김기로 가서 반죽을 튀겨낸다. 눈꽃모양으로 튀겨진 튀김가루를 우동위에 올려 고명으로 장식한다. 이것이 미경의 분식집만의 차별점이다. 다른 음식점들과 다르게 건조된 튀김 건더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미경의 우동은 그녀의 고향 진해에서 배워온 레시피다.
미경은 1969년 경상남도 진해시에서 태어났다. 딸 셋 중 장녀 미경은 착한 딸이자 듬직한 큰 언니였다. 미경의 아버지는 점잖고 조용하고 조금은 내성적인, 그 시대에 흔치 않은 가정적인 아버지다. 친모는 아버지보다 일곱 살 어렸는데 조용한 아버지에 비해 여장부였다.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절에 가는 날에는 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을 정도로 종교에 헌신적이었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미경 또한 자연스럽게 불교를 받아들였고 훗날 본인의 어머니보다 더 독실한 신자가 되어 기도에 열중한다. 집안에서 큰 소리 한 번 나지 않는 화목하고 아주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미경에게는 책이 곧 친구요 선생이요 그녀의 전부였다.
미경이 책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계기가 있다. 미경이 16살이 되던 해, 고등학교 진학 결정이 코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한 살 아래의 둘째 여동생과 세 살 아래의 막내 여동생을 보고 있으니 미경은 머리가 아파온다. 가난하지는 않았으나 풍요로운 집안은 아니었던 자신의 가정 상황을 보아하니 내가 대학에 진학하면 아버지는 돈을 모을 틈도 없이 세 자매의 대학 등록금을 대야 하는 고됨이 눈에 뻔히 보였던 것이다. 여자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정한다. 인문 고등학교 학생에 비해 시간이 많았던 미경은 시간이 생길 때마다 손에 책을 들었다.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은 물론이요 한국소설 외국소설 가리지 않고 많은 책을 읽었다. 어떤 내용인지 이해조차 되지 않는 쇼펜하우어와 소크라테스 철학책을 읽으며 독서하는 자신에게 심취했다.
중3이던 미경은 ‘내가 장녀니까 아버지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철이 일찍 든 미경이었다. 상고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하여 돈을 버는 것이 자신이 이 가정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린 미경은 자신의 결정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도 당연할 것이 미경은 고작 16살이었고 그 당시에는 여자는 시집 잘 가는 것이 아무렴, 최고였던 시절이기도 했다. 상고에서 회계를 공부하던 미경은 졸업하자마자 작은 양조장 회사에서 경리로 일한다. 거기서 조금 일하고 새마을금고 정규직 직원으로 채용되어 스무 살이지만 이른 직장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그녀의 남편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