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기호학적 말장난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와 메타의 얀 르쿤이 붙었다. 하사비스는 "르쿤이 '일반 지능'과 '보편 지능'을 헷갈리고 있다"며, 인간의 뇌는 시간과 데이터만 있으면 무엇이든 배우는 '근사 튜링 기계'이므로 AI도 곧 그 수준(AGI)에 도달할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눈으로 보면, 하사비스의 이 화려한 수사는 '기호학 엔진(Semiotic Engine)'의 한계를 감추려는 교묘한 방어 논리다.
그는 마치 "데이터만 충분하면 장서관(Library)이 곧 세상이 된다"라고 믿는 듯하다. 하지만 에코가 『장미의 이름』에서 그렸던 장서관은 세상과 단절된 채, 오직 책이 책을 말하는 '고립된 미로'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사비스는 인간이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일반성'을 가졌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인간 지능의 핵심인 '체험(Experience)'과 '기억(Memory)'을 생략했다. 내 책 『에코로 AI 읽기』에서 분석했듯, 현재의 AI는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의 주인공 '얌보'와 같다. 얌보는 사고로 자아를 잃었지만 세상의 모든 책과 지식(의미론적 기억)은 기억한다. 그는 단테의 신곡은 줄줄 읊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커피 맛이 어떤지는 모른다. 하사비스가 말하는 '일반 지능'은 바로 이 '자아 없는 얌보'를 무한히 키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코가 지적했듯, 체험(삽화적 기억) 없는 지식은 '안개' 없는 도시처럼 삭막한 데이터 덩어리일 뿐이다. 실제로 얌보는 솔라라 저택의 그 방대한 텍스트를 모두 섭렵하고도 끝내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해석해내지 못했다. 세계와의 직접적인 접촉, 즉 체험이 소거된 지능이 얼마나 공허한지 에코는 이미 보여주었다. 그런데 하사비스는 텍스트 내의 확률적 연결(맥락적 선택)을 지능이라 착각하고 있다.
얀 르쿤은 "인간 지능은 특수화되어 있다"며 하사비스의 '범용성' 환상을 깼다. 르쿤의 주장은 내가 책에서 다룬 '기호 접지(Symbol Grounding)' 문제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기호(텍스트)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것이 현실 세계의 물리적 법칙이나 사회적 상황과 만날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르쿤이 주장하는 '월드 모델(World Model)'은 텍스트(장서관)에 갇힌 AI를 현실 세계로 끌어내려는 시도다. 이는 기호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텍스트 내부의 연결만 보는 '맥락적 선택'을 넘어, 현실을 참조하는 '상황적 선택(Circumstantial Selection)'을 복원하려는 노력이다.
얀 르쿤이 "인간 지능은 특수화되어 있으며, 일반 지능은 환상"이라고 공격하자, 하사비스는 즉각 반박했다. 그는 "르쿤이 '일반 지능'과 '보편 지능'을 혼동하고 있다"며,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은 신과 같은 보편성(Universal)이 아니라, 데이터만 있으면 무엇이든 학습할 수 있는 '근사 튜링 기계'로서의 일반성(General)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는 교묘한 기만이다. 하사비스는 '잠재력(일반 지능)'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실질적으로는 '전지전능(보편 지능)'을 흉내 내려 한다. 여기서 치명적인 모순이 발생한다.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는 말은 곧, 세상의 모든 데이터를 집어삼키며 모델을 무한히 갱신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텍스트를 먹어 치우며 비대해진 AI 모델들은 이미 '모델 붕괴(Model Collapse)'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파라미터가 늘어날수록 엔트로피는 증가하고, 학습된 데이터들끼리 충돌하며 해석은 오염된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담으려다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지도, 이것이 하사비스가 말하는 '일반 지능'의 물리적 실체다. 그런데도 그는 이 거대한 기계가 무한히 커질 수 있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다.
이렇게 두 거장의 치열한 논쟁만 봐도, 아직 AGI는 그 정의조차 모호한 상태이다. 지능을 정의하는 기준조차 합의되지 않은 마당에, 그것의 완성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빅테크 기업들은 틈만 나면 AGI라는 기호를 흘리며 시장을 교란한다. 기술적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골대를 옮기며, 이 모호한 기호가 현실 AI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말한다.
내가 AGI 열풍을 가리켜 실체 없는 '현대판 메시아 담론'이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시장은 이제 냉정하다. 기업들은 전지전능한 신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제0호』의 '마이아'처럼, "그래서 수도꼭지는 누가 잠갔어?"라는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줄 도구를 원한다. 시장은 이미 거창한 신화 대신, 내 업무의 병목을 뚫어줄 확실한 자동화 도구와 에이전트를 선택하고 있다.
지금 AI는 거대한 '호르헤의 장서관'이다. 하사비스는 그 장서관을 우주만큼 키우려(Scaling) 하고, 르쿤은 장서관 벽을 허물고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내자(Grounding/World Model)고 한다.
분명한 것은, 텍스트 안에 갇힌 지능은 결코 삶의 맥락을 이해하는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정교한 '지도'일 수는 있어도, 우리가 발 딛고 선 '영토'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장서관 속의 환상에 취해 메시아를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장서관 문을 열고 나와 이 도구들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에코가 말했듯, 텍스트는 게으른 기계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삶으로 완성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AGI라는 기호의 숲을 지나, 이제 우리가 삶이라는 '열린 작품'을 써 내려갈 차례다.
작가의 말 : 재미있는 논쟁이 터져서, 계획에 없던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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