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를 그리며

by 나인테일드울프

움베르토 에코를 그리며

벌써 10년



에코가 세상을 떠난 지 내년이면 벌써 10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요즘 나는 에코의 문장을 더 자주 떠올린다.

AI가 만들어 내는 수많은 오류와 환각을 볼 때마다,

그의 소설에서 보았던 ‘해석의 미궁’이 다시 되살아난다.

나는 오랫동안 에코를 읽어 왔지만,

요즘처럼 그의 세계가 이렇게 생생하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AI 시대는 에코가 만들어 놓은 사유의 뼈대를 다시 불러 낸다.

그가 말했던 해석의 한계가, 지금 기술의 한계로 눈앞에서 반복된다.



지식의 미궁, 해석의 미궁, 기억의 미궁


『장미의 이름』에서는 지식이 단단하게 닫힌 체계 안에 놓인다.
금서와 허용된 책이 구분되고, 지식은 쌓이지만 해석의 폭은 오히려 좁아진다.

진리는 하나여야 한다는 강박이 세계의 다층성을 지워 버린다.
방대한 데이터를 갖고 있어도 하나의 정답을 만들어내려는 AI처럼, 해석은 단순한 방향으로만 수렴한다.


『푸코의 진자』에서는 해석이 끝없이 팽창하며 자기 과열을 일으킨다.
사소한 단서들이 서로 연결되고, 무의미한 패턴이 의미처럼 보인다.

우연은 필연으로 바뀌고, 없던 계획은 있었던 것처럼 보이며, 해석은 폭주한다.
문장의 연속성 하나로 연관성 없는 정보가 거대한 서사로 포장되는 AI처럼,
패턴 과잉은 허구를 진짜처럼 만든다.


『로아냐 여왕의 신비한 불꽃』에서 얌보는 지식은 남아있지만, 인생의 서사를 잃어버린다.

세상 모든 지식은 다 알려주지만, 스스로를 '나'라고 부른 것이 여전히 어색한 AI처럼

얌보는 시와 소설과 문장을 기억하지만, 그 지식을 느끼고 살았던 ‘나’는 사라진 상태다.


해석의 한계, 그리고 생동하는 세계


해석의 한계는 늘 세계의 생동과 충돌한다.
호르헤의 단일 진리, 알리에 일당의 과잉 해석,
얌보의 비어 있는 자기 서사—
이들은 모두 자신이 가진 조각들로만 세계를 다시 만든다.


AI가 만들어내는 문장도 이들과 다르지 않다.
방대한 정보 위에서 정답을 강요하고,

연관성 없는 패턴을 서사로 묶으며,
경험 없는 문장을 자연스럽게 흉내 낸다.
그러나 그 말은 세계의 움직임을 담지 못한다.


에코를 그리며...


나는 요즘 에코가 더욱 그립다.

AI가 만들어내는 해석의 세계를 볼 때마다
다시 그의 책을 펼치게 된다.

왜 이 기술은 인간과 똑같은 방식으로 흔들릴까?
왜 우리는 이 흔들림을 이렇게 익숙하게 느낄까?


에코가 살아 있었다면 무슨 말을 들려주었을지 생각하며
나는 그 답을 찾기 위해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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