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왜 다시 인문학인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로 풀어낸 AI, 그 기호학적 탐구의 기록

by 나인테일드울프

공정한 심판 AI


1987년 FIFA 월드컵. 디에고 마라도나는 8강전에서 손으로 골을 넣는다. 축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오심 사건이다.

과거 제구력이 좋은 투수들은 교활한 면이 있었다. 그들은 경기 내내 스트라이크와 볼의 경계에 걸치는 공을 뿌려대며 심판의 존을 조금씩 넓히려는 심리전을 펼쳤다. 타자 입장에선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겠지만, 그것도 투수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 도입 이후 이런 영리한 운영은 볼 수 없게 됐다. 축구의 오프사이드도 마찬가지다. 수비수보다 반 발짝 먼저 들어갔음에도 순간적인 동작으로 심판의 눈을 속이는 일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스포츠 세계의 오심은 불공정해 보였지만, 역설적으로 풍성한 서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일례로 마라도나의 '신의 손' 사건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반복 재생산되는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판정에 대한 수용과 불복, 대회의 흥행을 둘러싼 뒷말들... 점차 완벽한 공정성(틀려도 모두에게 틀릴 것이라는 기대)이 자리 잡아가는 스포츠의 세계에선 인간적인 오류가 빚어내던 드라마는 이제 자취를 감출 것이다.

기술 도입을 반대하던 팬들의 심정은 이런 '서사의 박탈'이라는 관점에서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나는 스포츠의 서사가 불공정 위에서 피어나는 것이 옳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기계가 가져다준 투명한 공정성, 그 위에서 펼쳐지는 정정당당한 승부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스포츠 영역에서의 AI 도입에 반대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하지만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프로퍼블리카는 COMPAS의 한계를 집요하게 파헤쳤다. 그들은 개발사가 말하지 않은 것에 집중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규칙이 명확한 스포츠 경기장에서 쌓인 '기계적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정답이 없는 우리의 일상과 문화, 그리고 사회 영역으로 무비판적으로 전이될 때 말이다.

실제로 미국 뉴욕주에서 사용을 의무화했던 가석방 심사 프로그램 COMPAS는 개발사가 주장하는 예측의 정확성에도 불구하고, 그 오류의 양상에 인종차별적 불평등이 있음이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 '전체 정확도'와 '집단 간 오류율의 균형'이라는 두 가지 공정성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다는 수학적 결론까지 내려졌고, 결국 COMPAS는 폐기되었다. 여기서 폐기의 근거가 된 '인종'이라는 구분, 이것은 유발 하라리의 말대로 사회적으로 구성된 자의적 허구에 근원을 둔 것이다.

이 사례에서 우리는 AI가 내리는 어떤 판단에 대해서도 두 가지 측면에서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그 판단이 편견이나 차별 같은 '잘못된 허구'를 토대로 한 것은 아닌지. 둘째, 반대로 그 판단이 정의나 인권처럼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합의로서의 허구(상상의 질서)'를 훼손하지는 않는지.

이것이 스포츠 세계와는 다르게 적용되어야 할 사회적 공정성이고, 불편부당성이다. 그리고 이것은 대단히 사변적인 일이며 상당한 통찰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사변적인 문제에 사변적으로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일, 그리고 그 '담론적 역량'에 필요한 사유의 힘을 키우는 일. 그것이 지금까지 인문학이 존속했던 이유이고, AI 판사를 기다리는 이 시대에 특히 더 필요한 이유이다.


하필 기호학이어야 했던 이유


페르디낭 드 소쉬르. 현대 기호학의 창시자이다.

수많은 인문학의 갈래 중 왜 하필 '기호학(Semiotics)'인가? 그것은 인공지능(AI)과 인간이 '언어'를 다루는 방식이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내가 AI를 분석하기 위해 기호학을 펼쳐 든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소쉬르가 갈파했듯, 기호는 '기표(Signifiant, 형식)'와 '기의(Signifié, 내용)'의 결합이다. 그리고 이 둘의 만남에는 필연적인 이유가 없다. '개(Dog)'라는 소리와 '멍멍 짖는 동물'이라는 개념은 자의적으로 연결된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약속을 통해 이 자의적인 연결을 학습한다.

AI의 학습 과정 역시 이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AI는 수많은 텍스트 데이터를 통해 단어(Token)와 그 단어가 가진 함의(Vector) 사이의 관계를 학습한다. 인간이 경험과 사회화를 통해 기표에 기의를 달라붙게 만들듯, AI는 파라미터(매개변수)의 조정을 통해 기표와 기의의 연결 고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즉, 구조적인 측면에서 AI는 인간의 기호 작용(Semiosis)을 완벽하게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구조적 동질성' 때문에 기호학은 AI를 이해하는 가장 유효한 도구가 된다. 만약 AI가 인간과 전혀 다른 외계의 통신 방식을 쓴다면 기호학은 무용지물일 것이다. 하지만 AI는 철저하게 인간의 기호 체계를 모방하고, 학습하고, 재생산한다

따라서 우리는 기호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AI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그들이 기표와 기의를 어떻게 연결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맥락이 소거되거나 과잉 해석되는지,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기호의 세계'가 우리의 '현실 세계'와 어떻게 겹치고 또 어긋나는지를 분석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책에서 AI를 낯선 기계가 아니라, 우리와 동일한 '기호의 문법'을 공유하는, 그러나 기호를 처리하는 방식에서는 묘하게 다른 일종의 '기호학적 거울'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움베르토 에코...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의 대가, 위대한 이야기꾼, 독보적 중세 전문가, 이름 뒤에 늘 따라다니는 박학다식.... 늘어놓자면 끝이 없다.

움베르토 에코는 위대한 기호학자인 동시에, 자신의 소설을 그 이론의 실험장으로 활용한 소설가였다. 내가 에코를 책의 중심축으로 삼은 것은 처음엔 그저 그의 작품에 대한 강렬한 애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집필을 거듭할수록 나를 사로잡은 것은, 자신의 이론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증명하려 했던 그의 치열한 지적 투쟁 그 자체였다.

내 책의 골격은 에코의 여섯 장편 소설을 토대로 세워졌다. 빠뜨릴 작품도, 굳이 선별해야 할 작품도 없이 그의 모든 소설이 필수적인 텍스트였다. 반면 기호학 이론서를 선정하는 과정은 치열했다. 방대한 저작 중에서도 AI 분석에 가장 유효한 도구가 될 『일반 기호학 이론』, 『기호학과 언어철학』, 『해석의 한계』를 주춧돌로 삼았고, 집필 과정에서 『기호: 개념과 역사』, 『구조의 부재』, 『가짜 전쟁』 등을 더해 논리의 빈틈을 메웠다.

책의 구성은 에코의 방식, 즉 '이론 수립 후 검증'의 프로세스를 따른다. 제1부는 기호학적 관점에서 지능의 모형을 그리고, 이를 통해 AI의 작동 원리와 본질적 한계를 규명하는 이론적 토대다. (여기에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자 나를 에코의 세계로 이끈 『푸코의 진자』에 대한 오마주로, '호날두와 성전 기사단'을 엮은 엉뚱한 음모론적 실험도 숨겨두었다.)

이어지는 제2부는 문예 비평의 형식을 띤 '검증의 장'이다. 에코가 소설로 이론을 실험했듯, 나 또한 그의 소설 속 알레고리를 오늘날의 AI 현상에 대입하여 내 분석이 유효한지 확인했다. 요컨대 1부가 기호학과 AI를 연결하는 새로운 체계(System)를 구축하는 과정이라면, 2부는 소설이라는 거울을 통해 그 체계를 증명(Verification)하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움베르토 에코는 기호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특히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따라서 그의 연구는 오늘날 AI가 생산하는 기호를, 인간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더불어 그가 생전에 '비언어학적 기호의 대가'로 불렸던 만큼, 텍스트를 넘어 이미지와 영상으로 확장되는 '멀티 모달(Multi-modal)' AI 시대에 있어 그는 가장 유효하고 시의적절한 이론가일 수밖에 없다.


해석이라는 고단한 노동


움베르토 에코의 기호학 이론서와 소설들, AI 서적과 논문들, 언론 기사 등을 참조해 가며 써 내려갔다. 서른 번 어려울걸, 한 번만 어려우면 되는 책이 목표였다.

이 모든 논의 끝에 우리는 결국 하나의 실천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기호와 기호 사이를 무한히 미끄러지는 이 기계 지능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움베르토 에코는 일찍이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결되는 '헤르메스적 표류(Hermetic Drift)'를 경계했다. 그가 『푸코의 진자』에서 그려냈듯,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실들을 억지로 연결하여 거대한 음모론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은 지성이 아니라 편집증이다.

오늘날의 AI가 보여주는 환각(Hallucination)과 편향이 바로 이 '헤르메스적 표류'다. AI는 현실의 검증 없이 통계적 확률만으로 기호들을 끝없이 연결한다. 그 결과,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재하지 않는 정보, 혹은 COMPAS의 사례처럼 우리 사회의 가장 추악한 편견을 재생산하는 위험한 결과를 낳는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AI가 우리보다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AI가 쏟아내는 그 무한한 기호의 향연 속에 진실과 거짓, 편견과 공정이 뒤섞여 '해석의 한계'가 무너지는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는 불편하더라도 직시해야 한다. AI가 가져다주는 매끄러운 답변 뒤에 숨겨진 거친 편견들을, 그리고 그 기계적 알고리즘이 외면하고 있는 사회적 맥락들을 말이다. 이것은 결코 유쾌한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텍스트의 표면을 뚫고 들어가 그 이면의 구조를 파헤쳐야 하는, 에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해석의 노동'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게으른 사용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AI가 던져주는 결과를 맹신하거나, 복잡하고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 채 '좋아요'를 누르는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노동자의 자세로 텍스트 앞에 서야 한다. 기계가 매끄럽게 포장해 놓은 문장들 사이에서 기어이 불편한 진실을 찾아내고, 무한히 표류하려는 기호들을 현실의 땅에 단단히 붙들어 매는 일.

내 책은 바로 그 멈춤의 기술, 즉 AI라는 거대한 기계가 쏟아내는 표류 속에서 인간이 중심을 잡고 '해석의 한계'를 긋는 방법에 대한 안내서다. 우리가 노동자의 땀방울처럼 정직한 사유의 힘을 포기하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AI 시대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브라이언 크리스천, 이한음 옮김, 『인간적 AI를 위하여』, 시공사, 2025년.

유발 하라리, 조현욱 옮김, 『사피엔스』, 김영사, 2023년.

강형모, 『에코로 AI 읽기』, 나인테일드울프, 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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