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라이 보존의 법칙'
어떤 단체에가도 정해진 또라이의 비율이 정해져있다는 것.
한 또라이가 단체에서 나가면 또 다른 또아리가 들어오는 법칙.
우리의 인간관계는 원하지 않아도 원하지 않는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될 때가 있다. 학창시절 맞지 않는 친구와 짝이 되는 것, 성향이 다른 선생님을 만나는것. 그 이전에 자신과 맞지 않는 부모와 자식이 서로 맞춰가는 것 같이 인간관계는 쉽지 않은 상황들이 너무 많이 있다. 오늘의 이야기는 내 '친구'이다. 나는 아무에게나 친구라고 말하지 않는다. 친구는 사전적 의미로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는 조금은 엄격하게 지인과 친구를 구분한다. 각자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모두가 친구와 지인의 구별은 할 수있을 것이다.
또라이 보존의 법칙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내 친구는 적어도 나에겐 또라이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친구는 주변에 꼭 있을 것 같기에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친구는 부정적인 친구이다. 모든 선택에 긍정보다는 부정적으로 대답한다. '그거 못해, 그거 안돼.'. 이런 성향은 항상 내 친구가 자신의 삶에서도 실패를 예상하며 쉽게 도전하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를 더욱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건 이런 부정적 선택은 자신의 경험에서 오는 것이 아닌 타인의 경험 이야기를 자신의 실체로 만든다는 것이다. "누가 그러는데 그거 안된데, 누가 그러는데 그거 힘들데.".
우리의 세계여행 계획을 들었을 때도 그 친구는 응원과 동시에 경험이 없는 충고를 먼저 해줬다.
'누가 그러는데 외국 사는게 쉽지 않데, 누가 그러는데 그렇게 살다 한국에 돌아오면 노후도 준비 안되어있고 엄청 힘들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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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마다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든다. 친구의 이런 말은 악의는 없겠지만 나를 공감하는 척하며 공감하지 않는 말이다. 나를 위하지 않는대화이다. 자신의 경험 더 나아가 타인의 경험까지 끌고와서 자신이 원하는 대화의 방향으로 주도권을 가져가며 나에게 자신의 생각을 심으려는 방법이다. 이렇게 공감없는 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꼭 있기마련이다.
난 이 친구의 부정적인 말해 항상 똑같이 대답해준다.
"그래서, 너가 해봤어?"
물론 친구는 지지않고 "나는 안 해봤지만 해본 사람이 그렇데!" 라고 말한다. 우리의 대화는 항상 서로 다른곳을 바라보며 평행선 같은 대화를 하지만 내가 이 친구와 친구로 지낼 수 있는것은 정말 친하게 오래 보았기 때문이다. 서로 멈춰야되는 곳을 알고있고, 부족한곳을 채워준다. 여행 전에는 필요한 것을 물어보고 집으로 선물을 보내주고, 여행중에는 너네는 무슨 돈으로 여행을 준비하냐고 타박과 함께 생일이며 기념일에 외식이라도 하라고 돈을 보내줬다. 내 친구는 나를 걱정하지만 방법이 내가 원하고 지향하는 방법이 아닐뿐이다. 나는 '자신의 경험'에서 나오는 조언이 아닌 타인의 경험의 조언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쩌면 그 친구는 '타인의 경험'을 가져와서라도 나에게 현실을 알려주고 싶은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해본다.
어쩌면 내 친구에게 내가 또라이가 아닐까?
사실 우린 모두 또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