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니펙에서 퀘벡까지 2500km... 꽤 멀었네
기다리던 퀘벡 여행날이 왔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캐나다 위니펙에 자리 잡은 지 3달 만에 우리는 처음으로 위니펙에서 새로운 도시로 여행을 가보게 됐다. 모르는 언어, 모르는 문화, 모르는 도시에서 새롭게 태어난 것 같던 삶의 연속이었는데 또 한 번 꿈꿔왔던 일이 이루어지게 됐다. 감개무량하다. 살면서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 퀘벡을 가는 것도 신났고 수진이를 무려(!!!) 캐나다에서 만나는 것도 신이 났다. 여행 날짜를 맞춘 우리는 각자 비행기를 예약했다. 우리는 위니펙에서 토론토를 경유 후 퀘벡으로 가는 일정이었고, 수진이는 보스턴에서 출발해서 토론토를 경유해서 퀘벡으로 오는 일정이었다.
빨리 여행하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오전 5시 25분 출발하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문제는 위니펙의 교통 시스템이었다. 새벽의 캐나다 위니펙 밤거리를 누빌 버스가 있을 리 만무했다. 주말에는 4시면 막차가 떠나는 마을에서 새벽 5시에 공항까지 가는 버스는 없었다. 또한 위니펙에는 우버 서비스가 없어서 실시간으로 택시를 예약하고 탈 수 없었다. 택시를 타기 위해선 택시 어플이나 회사에 전화를 해서 예약을 한 뒤 택시를 집으로 불러야 됐다.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택시비 용도 저렴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마침 매니저가 다음날 휴무라서 우리를 데려다줄 수 있다고 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우리를 공항에 데려다 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 염치없는 부탁인 것 같아서 우리는 뽀송하게 씻고 새벽 1시에 공항으로 출발했다.
가을 위니펙의 새벽 공기는 생각보다 차가웠다. 9월의 공기는 선선했고, 신선했다. 대부분 맑은 공기를 자랑했던 위니펙은 숨 쉬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될 때가 있었다. 불 켜진 가로등 뒤로 불 꺼진 건물들이 내 시아에서 뒤로 지나갔다. 아무도 없는 거리를 막힘 없이 달려 공항에 도착했다. 위니펙에 도착한 뒤 두 번째로 방문한 '위니펙 제임스 암스트롱 리처드슨 국제공항'(이하 위니펙 공항). 위니펙 공항은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미국, 멕시코 등 20개의 해외 도시와 연결이 되어있는 공항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꽤 많이 사는 도시지만 우리나라와 연결된 노선은 없다. 위니펙 공항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국제공항이지만 새벽 2시의 모습은 달랐다. 내가 알고 있는 국제공항과는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동안 내가 경험한 국제공항은 주로 우리나라에 있는 인천 국제공항이나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 같은 24시간 오픈되어있는 공항들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라오스의 루앙프라방 같은 시골 버스정류장 같은 공항고 경험했지만 위니펙은 루앙프라방 같은 작은 도시가 아니라서 놀라움이 더 컸던 것 같다.
공항의 문은 열려있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탑승객은 물론이고 안내데스크에도 직원이 없었다. 청소하는 사람도, 항공사 사람도 없었다. 텅텅 빈 국제공항에 우리 둘이 덩그러니 들어왔다. 빼곡하게 서있는 무인 발권기조차 전원이 들어오지 않은 이 공항을 우리 둘이 2-3시간을 지켜야 됐다.
새벽의 공항은 조용하고 지루 했다. 여행을 이제 막 시작한 우리는 늦은 시간과 알 수 없는 경계심으로 피곤함만이 쌓여가고 있었다. 이 넓은 공항에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가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곳도 없다는 것이다. 안 갈 것 같은 길고 긴 시간에 쪽잠과 뜬눈으로 버티며 드디어 오전 5시 25분이 되었다. 탑승을 위해서 짐의 무게를 재는데 우리는 캐리어가 두 개가 있었다. 각 캐리어마다 무게 제한이 25kg이었는데 맞춘다고 맞춘 가방의 무게가 한쪽 가방은 20kg 정도였고 다른 가방은 27kg 정도였다. 내가 그동안 경험했을 때 이러면 그냥 도합으로 보내줬는데 우리 캐나다 아저씨는 그렇지 않았다. 자기 뒤로 와서 가방의 무게를 맞추라고 하였다. 롸? 여기서? 어쩔 수 없이 나는 공항에서 캐리어 두 개를 열어 짐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가방의 무게를 맞췄다. 겨우 맞췄을 때 아저씨는 나에게 "congratulation!"이라고 말해주며 자기 때문에 돈을 아끼게 되었으나 오늘 저녁은 스테이크를 먹으라고 하였다. 후.... 고맙습니다.... 별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캐나다 사람들의 국민성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런 것은 아니다. 좋게 보면 원리원칙에 투철한 사람. 다르게 보면 융통성이 없는 사람 일 수도 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볼 때 어떤 모습으로 볼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란 걸 배웠다. 그래... 스테이크 사 먹어야지.
이런 소소한 일들을 지나고 우리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약 2시간 정도 날아서 도착한 토론토는 위니펙과 한 시간의 시차가 났다. 국내인데 한 시간의 시차를 경험하는 것 또한 이색 경험이었다. 우리는 오전 9시 45분 한 번의 환승을 통해서 퀘벡으로 이륙했다. 우리나라에서 탔던 비행기 중 가장 긴 국내선은 심포-제주 노선이었다. 이 노선은 한 시간도 비행하지 않는 노선이었는데 우리는 캐나다에서만 3시간을 날아다니며 시차를 경험하고 있다. 심지어 위니펙이 캐나다의 중앙에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국토면적 세계 2위 캐나다의 땅 덩어리의 크기가 실감이 났다. 캐나다는 진짜 넓은 나라이다. 서쪽 끝인 밴쿠버에서 동쪽 끝인 핼리팩스까지는 무려 4시간의 시차가 난다. 우리나라고 치면 몰디브 말레와 우리나라 서울의 차이이다. 서울부터 말리까지 모두가 우리나라 땅이라고 친다면 우리는 해외여행을 다니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국내선에서 4시간의 시차라니 어마어마하다.
퀘벡으로 떠나면서 재미있는건 무려 미국에서 캐나다로 국경을 넘어오는 수진이가 우리보다 이동 시간과 거리가 더 짧았다는 것이다. 보스턴에서 토론토를 경유해서 퀘벡으로 이동하면 육로 기준으로 약 1,700km가 된다. 심지어 퀘벡으로 바로 출발하면 620km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위니펙에서 퀘벡으로 육로로 이동하면 약 2500km정도이다. 정말 어마어마한 땅덩어리를 갖고 있는 나라들이다. 국내선도 어메이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