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름다운 니니 Dec 28. 2022

35. 살이 가져온 변화

 20대까지 나는 꽤나 마른 체형이었다. 더욱이 그럴 것이 10대에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앓은 적이 있어서  몸무게가 정망 조금 나갔다. 중학교 시절 40킬로 초반의 몸무게였고 고등학교 때까지도 50kg 초반의 몸무게를 유지했다. 먹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밥도 잘 안 먹고 군것질도 하지 않았다. 군대 갈 때 몸무게는 무려 57kg이었다. 

 하지만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 완치가 되고 나이를 먹고 또한 직장생활을 하며 규칙적인 생활과 적은 운동량으로 살이 꾸준하게 쪘고 캐나다로 출발하기 전에는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찍었다 무려 78kg. 군대 갈 때 보다 20kg이 찐 78kg까지 살이 쪘다. 살도 많이 쪘지만 스트레스와 피곤 등이 겹치며 온몸이 붓는 등 몸에 눈이 띄는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옷들이 하나 둘 안 맞기 시작했고, 허리띠는 한 칸, 두 칸이 늘어났다. 자동차에 타서 안전벨트를 매면 벨트 사이로 뱃살이 탈출하듯 삐져나왔다. 배꼽의 골은 어찌나 깊어지는지 손가락이 다 들어갈 것 같았다. 살들은 배와 얼굴에만 집중된 것은 아니었다. 결혼반지가 작아졌고 끼면 빠지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손이 자주 붓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반지를 낀 손에 피가 안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생각이 들었지만 자정쯤 퇴근 후 집에서 먹는 족발, 치킨과 맥주가 어찌나 맛있는지 나의 결심은 태풍 앞에 외로이 서있는 촛불같이 언제나 쉽게 꺼져버렸다. 

 살이 쪘을 때  개인적으로 큰 충격은 배꼽의 깊이었다. 농담으로 손가락 하나가 다 들어간다고 했지만 정말 마디 하나가 다 들어갈 정도의 깊어졌다. 아내고 내 배꼽을 보면서 이렇게 깊은 배꼽은 세상에서 처음 본다며 진단 반, 농담 반으로 말을 했다. '내 배꼽이 이렇게 깊을 리가 없는데...' 

 캐나다로 온 김에 살을 빼기 시작했다. 캐나다에서의 다이어트는 솔직히 어렵지 않았다. 위니펙에서 한국같이 빠른 배달이 되지도 않았다. 배민은 고사하고 우버 이츠도 없는 곳이 위니펙이었다. 또한 우리는 돈이 많이 없어서 외식도 하지 못했다. 캐나다의 식재료는 한국에 비해서 저렴한 편이다.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가격은 대동소이했고, 다른 식재료도 저렴한 편이었다. 물론 내가 있는 위니펙은 캐나다 정 가운데 있어서 해산물이 풍요로운 곳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저렴한 가격으로 고기를 살 수 있어서 집에서 많이 음식을 해 먹었다. (여담이지만 한국은 식재료가 좀 비싼 편인 것 같다. 특히나 한우는...) 하루에 먹는 것이라곤 아점으로 츄랑 같이 카페에서 먹는 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 반쪽씩. 그리고 저녁에 먹는 햇반 반 그릇이 거의 전부였다. 먹는 것을 줄이니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1달 만에 1kg, 보름 만에 또 1kg. 그렇게 나는 벌써 5kg을 뺐다. 나는 다시 티셔츠를 입을 때 배와 옷 사이에 여유공간이 생겼고, 허리띠를 다시 한 칸씩 졸라맸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살 빼기도 이렇게나 힘든데 타지에서 적응하는 것, 처음 접하는 이곳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 하나하나 쉽지 않았다는 것을 돌아보게 되었다. 재미있었지만 힘들었던,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던 이곳 위니펙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서 어떤 변화를 겪었고, 무엇이 변했을까 생각을 해봤다. 변화된 여유로운 마음을 갖기까지 나는 거의 네 달이 걸렸다. 하지만 아직도 불안한 마음이 물이 댐을 넘치듯 울컥울컥 솟아나기도 한다. 어쩌면 세상에서 제일 변화시키기 힘든 건 내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게 바로 내가 뱃살에서 얻은 개똥철학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34. 그 해 캐나다의 첫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