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꼬르륵 인형
4-1. 식욕이 사라진 A씨와 폭식이 반복되는 B씨 이야기
“거의 매일 나타나는 식욕의 감소 또는 증가, 또는 의미 있는 체중의 감소 또는 증가”
– DSM-5-TR, 주요 우울장애 진단 기준 중
어느 추운 겨울날, 심한 우울증으로 입원했던 A씨는 며칠째 식당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꼬르륵 인형이 식욕을 몽땅 잡아먹은 것처럼, 밥은커녕 물 한 모금조차 삼키기 힘들어하던 A씨는 입원 2주 차가 되던 날 체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죠. 담당의였던 저는 식사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오늘은 A씨가 식당에 나올까’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곤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반면 B씨는 회사를 퇴직한 뒤 우울증이 재발해 외래 치료를 받고 있지만, 넘치는 식욕이 조절되지 않아 걱정입니다. 마음을 추스르며 회복기를 보내고는 있지만, 갑자기 찾아온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스트레스를 풀 창구가 부족한 상황. 취업, 결혼, 독립…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득한 마음이 유일하게 조용해지는 순간은 맛있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을 때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폭식이 반복되자 체중이 빠르게 늘기 시작했고, 그 변화가 또다시 자존감을 건드리며 후회와 죄책감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우울증이라는 같은 이름 아래에서,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요? 갑자기 추워진 한겨울을 맞이한 사람들을 떠올려 봅시다. 몸을 웅크린 채 움직임을 줄이며 체온을 지키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따뜻한 곳을 찾아 나서기도 하죠. 우울증이라는 겨울을 만난 사람들도 이처럼 뇌의 반응, 기질,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식,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마음을 넘어 몸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변화는 아직은 낯설어서, 때로는 자신을 탓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울증은 단순한 기분의 문제가 아닙니다. 배고픔이라는 기본적인 생존 신호까지 흔들어 놓으며,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을 무너뜨릴 수도 있죠. 어느 날 문득 좋아하던 음식에 손이 가지 않거나, 스트레스를 달래기 위해 음식에 매달리고 있나요? 식탁 위의 작은 변화를 한 번 눈여겨봅시다. 마음속 우울이와 함께 날뛰는 꼬르륵 인형을 발견할지도 모르니까요.
참고문헌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Functional Connectivity of the Nucleus Accumbens and Changes in Appetite in Patients With Depression.
Depression-Related Increases and Decreases in Appetite: Dissociable Patterns of Aberrant Activity in Reward and Interoceptive Neurocircuitry.
스탈 4판
신경정신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