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앵무새 한 마리를 사려한다.
오지 않는 파랑새를 기다리는 것은 희망인가, 무지인가
반드시 올 죽음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용기인가, 무지인가
파랑새가 헛된 희망일지라도 그 희망으로 버티는 이도 있을 것이다.
반드시 올 죽음이라면 굳이 신경 안 쓰고 사는 것도 긍정적 자세일지도 모른다.
문둥병 시인이 골목에서 마주쳤다는 옛 애인 이야기처럼 저마다 슬픈 사연을 안고 살아간다.
수많은 인연이 마음 같지 않다.
다 나를 연단시키는 도구라고 살아갈 지어다.
어떤 비극 앞에서 세상에 신이 있다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한탄하지만, 분명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다.
그것이 정신건강적으로도 좋을 것이다.
성경은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삶 이후를 보라고 한 것으로 안다. 세상에 발 디디고 사는 우리로써 참 아이러니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삶에 관한 것인데..
그럼에도 범사에 감사하다 보면..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문구처럼, 저 앞에 파랑새가 보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또 희망을 품고 하루를 사는 것이다. 기다리는 건은 지루하지만 삶은 기다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