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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형의 인간'이 서른에 접어들면

성격을 배신하지 않는 퍼스펙티브의 성숙은 최소 십년

by 정필년

1.

모처럼 취중일기醉中日記였다. 알콜이 정수리 끝까지 올라와 침대와 밀착하려는 생리적 욕구가 폭발하지만, 알콜을 정수리 끝까지 올리며 교환한 감흥을 고스란히 간직하겠다는 열망이 생리적 욕구를 이겨버리는 드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일어나서 보니 취한 것치고는 제대로 타이핑했구나 싶어 다행이다.

동창회에 집결한 친구들은 하나 같이 꼴대로 살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이자들을 꽤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근황을 털어보노라니, 10년 전에 싹틔운 성격은 잘 간직해 계승 발전시켜버리니. 개성이 넘쳐버리며, 같은 꼬락서니로 사는 놈들이 단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일찍부터 "인생은 돈이랑 외모가 전부야"를 외쳤던 '체대맨 N'은 이명박근혜정권 당시 부친의 토목사업이 크게 흥하며 얻은 부를 적극 끌어안아 '건축공학박사 N박사'로 거듭나니, 호나우딩요를 닮은 체대맨에서 품격있는 교양인의 풍채를 획득했다. 주말에 대전에서 세미나 참여했다 부랴부랴 양복입고 들이닥치는 시간강사 인생...

이라지만, 그는 여전히 친구들 앞에서는 되바라진 말로 놀리기를 좋아하며, 특히 여전히 자본도 없는 주제에, 자본이 될 턱이 없도 없는 인문학을 공부한 동무들에게 일침을 잘도 들이 붓는다.

'야 씌빨 니 이번에 상탄 거 얼마 받았냐?' '야 니는 내가 뭐로 글써서 상받았는지 무슨 내용인지는 안 궁금해?' '쌖끼야 상금이 중요하지 특히 너같은 그지한테는!'

기분 상하고 마음 상할 법한 말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N의 꼴이며, N의 꼴을 잘 드러내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된다. 또 그런 N을 잡아먹는 E가 있고 E를 견제하는 D가 있고 무한의 먹이사슬이 동창회를 무르익게 만들었다.


e3b37dae-0366-4800-846d-0675103b4ad1.jpg 토크가 순환하는 구도를 이루면 대체로 흥하더라구요. 악역 선역이 수시로 바뀜.

다들 여전히 되바라진 애송이들이지만, 각자가 지어올린 세계와 상대방이 가진 존재양식을 존중할 만큼은 성숙해졌달까. 성격을 배신하지 않는 퍼스펙티브의 성숙이 좋았다.

이런 게 스무살 무렵과 서른살 무렵의 차이 아닐까.성격을 배신하지 않는 퍼스펙티브의 성숙은 최소 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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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따로 덧붙여봄직한 산문도 있어 이어본다. 소설가 박상영의 최신간 산문은 1.에서 들여다 보려했던 인간관계의 엎치락 뒤치락을 제법 잘 드러내지 않나 싶다.

누구나 스무살 무렵에 진하게 어울리다, 퍼스펙티브와 성격상의 차이로 다투고 미워했다 깨닫고 헤아리는 경험을 겪는다. 절교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를 쓰게 되기도, 절교 이후에 느끼는 상실감에 기대 '지금-여기'의 성숙을 따지기도 한다.

내가 모교 문학상 공모전에서 입상한 수필의 내용은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나도 원고료를 받는 (꼬마)작가요, 나에게도 고시공부를 하다 때려친 친구가 있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닐)인간관계의 변화에 예민하게 굴었던 적이 있고, 소중한 사람에게 되바라진 말을 써가며 할퀸 적이 있고. 그것으로 인해 두번 다시 예전과 같아질 수 없는 사이를 고민하기도 한다.

서른이란 스무살 이후에 누적된 것을 따지기 좋은 시절이다. 유려한 말로 높은 수준의 (자전적 경험의) 동기화를 이룬 박상영 작가의 글을 얼른 키보드에 필사해봤다.

나도 유형 상 '탐구형의 인간'이며 서른에 접어들고 있다. 박상영 작가가 털어놓은 일은 내게도 현재진행형이며 기왕이면 잘 수습하고 싶은 이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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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삶의 의미를 찾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
스무 살, 19년 동안 고향에서 간신히 탈출한 나는 홀로 서울에 당도했고, 당연하게도 새로운 터전에 정착하는 데 실패했다. 대학 친구들과는 겉돌았으며, 내가 구할 수 있을 만한 가격의 반지하 방(100/30)에서는 손바닥만 한 지네가 나왔고, 대학 공부는 재미가 없었다.(애초에 공부라는 게 재밌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던 게 순진했다.) 새로운 터전에 적응하는 데 실패한 다른 모든 생명들이 그렇듯, 나는 내게 익숙한 쪽으로 손을 뻗었다.

고등학교 친구 K는 내가 손을 뻗을 수 있는 가장 만만한 존재 중 하나였다. (...중략...)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 사이에 별다른 공통점은 없었다. 그 아이는 북유럽의 음악과 고전을 좋아했고 보수에도 가치가 있다고 믿었으며 경제학의 논리성을 종교처럼 여겼고 (유전자에 각인된) 지역색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나는 케이팝과 미국의 디바들을 좋아했으며 철학서나 한국 현대문학을 읽었으며, 손바닥만 한 땅에서 지역색 같은 것을 따지는 게 웃기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스무살, 우리 사이에 남은 공통점이라고는 서울에 왔다는 것, 그리고 외롭다는 것 그 둘뿐이었다. 제대로 만나는 사람도 뭐 하나 하고 싶은 일도 없었던 그 시절의 우리는 서로의 학교 앞을 거닐거나 동네에서 가장 사람이 없는 커피숍에 들려 커피 한 잔씩을 시켜놓고, 그 커피가 식을 때까지 재미도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떠들고 놀았다.

*
한때는 죽고 못 살았던 K와 자주 보지 않게 된 것은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연애를 하며 겪는 일들은 모두 처음 겪는 종류의 것들이었고, 다른 모든 처음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그러하듯 나는 한심하리만치 미숙했다. 지금 와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당시의 나는 연애를 하면 내 모든 것을, 내 존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믿었다.

(...중략...)

*
그렇게 온 인생을 투신했던 연애가 (당연히) 처참하게 끝나버렸고 나는 다시 내게 편한 쪽으로 손을 뻗었다. K와 내가 만난 건 몇 달 만이었을 것이다. K는 수업 시간에 만난 사람과 짧은 연애를 끝냈고, 그것에 대해 시시콜콜 말했다. 나에게 말할 게 없냐고 해서 없다고 했다. 나는 다만, 사는 게 힘드네, 뭐 그런 종류의 말들을 했던 것 같다.
그날 K가 내게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K가 대학교 교양 심리학 수업에서 배운 게 있다고 했다.
"인간에는 여러 유형이 있는데, 내가 봤을 때 너는 탐구형 인간이야."
"탐구형 인간이 뭔데?"
"뭐겠냐. 그냥 답도 없는 것들을 계속 생각하고, 생각하고, 탐구하고, 그러다 인생 다 흘려보내는 사람이지."
그런가, 얘기를 듣고 보니 나는 그런 사람이 맞는 것 같았고, 그렇구나 나는 탐구형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날의 재미없는 다과회를 끝냈다.
탐구형 인간이었던 그때의 나는 내 불행의 원인을 너무 알고 싶었다.
자고 일어나면 견딜 수 없는 감정이 끓어올랐는데 그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고, 그것을 너무 알고 싶었고, 그래서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고, 그러다 보면 나는 오로지 고민을 위해, 그래, 탐구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스스로를 느끼곤 했고, 잠은 오지 않았고, 그렇게 뜬눈으로 아침을 맞곤 했다.

*
...(중략)...

취업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K는 오랫동안 고시 공부를 하다 실패했고,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직장을 잡게 되었다.
술자리 분위기는 좋았다. 좋을 수밖에 없었다. 어쩄든 친구들 모두가 돈을 벌게 된 것이고, 나 역시도, 심지어는 제일 가난과 가까웠던 나조차도 원고 몇 개를 쓰고 지원금을 받은 상황이었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 나는 얼마 전에 받은 원고료가 생각났고, 술도 취했고, 기분도 좋아진 김에 고깃값을 계산했다. 계산을 하고 술을 몇 잔 더 먹었고, 그렇게 웃으며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언제나 그렇게, 네가 중심이 되어야 하지.'
'오늘 내 취업 축하하는 자리인데 네가 밥값을 내면 어떡해.'
'너 축하한다는 의미에서 사준 거지.'
'그렇게, 언제나 네 중심적인 생각만 하지.'
아 정말 내가 내 돈 쓰고 무슨 소리를 듣는 거지, 뭐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는 한번 시작된 덕담을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넌 언제나 네 이야기뿐이잖아. 네가 겪은 일, 네가 웃겼던 일, 네 슬픔, 네 사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고, 나는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내 사연 파는 게 직업이라 그렇다, 말해야 하나 뭐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다 그냥,
'네가 좆같이 재미없지 않았다면 내가 얘기를 덜 해도 됐겠지?',
라고 보내버렸다. 그러는 너도 네 얘기뿐이잖아. 네가 고시를 다 망쳐먹고 틴더(Tinder)로 외국인을 만나, 두 달을 사귄 후,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유럽에 이민을 가서 살 거라고 말했을 때도 나는 찍소리 안 하고 널 지지해줬다고. 네가 누굴 만나건 얼마나 아름다운 현대식 결혼 생활을 꿈꾸며 몇 명의 애를 싸지르며 살아가든 나는 알 바도 아니고 알고 싶지도 않은데도 다, 정말 끝까지 다 들어줬다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난 단 한순간도 네 얘기가 궁금하지 않았다고. 그는 내가 변했다고 했다. 내가 글을 쓰고 난 후로, 등단을 하고 난 후로 변했다고 했다. 정말 내가 그렇게 많이 변했나? 내가 정말 많이 변했는지는 알 수가 없고, 다만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알겠다고 했다. 그냥 언제나 한심하게 산다고 생각했던 좆밥 같은 내가 티끌만 한 뭐라도 된 게 싫은 거 아니니 · · · · · ·.
어쩄든 그가 나를 견디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말을 듣고 나자 나 역시 그를 견디기 힘들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를 못 견뎌 했듯 그도 나를 견디기 힘들어했던 것에 불과했던 것일까.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인내심의 임계점을 어느 순간, 우리도 모르는 ㄴ사이에 넘어가버린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맞지도 않은 조각보를 억지로 이어붙인 것 같은 누덕누덕한 관계를 이어온 걸까. 나는 그냥 고기를 사주고 싶었을 뿐인데.
그리고 끝.
십몇 년의 시간들은 순식간에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단지 그것일까.
나는 정말 변한 것일까.

*
K가 고시를 그만둔다고 선언했을 때 우리는 강남역의 맥도날드에 있었다. 그는 빅맥 세트를 입안 가득 구겨 넣으며 이제 정말 할 만큼 했다고, 말했다.
"정말 끝이라고 생각하니까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하냐."
K는 울었다. 그의 우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K는 (나처럼)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떤 사안을 대할 때 다각도로 문제의 본질을 보았고, 그 누구보다도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 그가 뭔가를 그만두겠다고 하면 그건 정말 그만둘 때인 것이다. 그때의 나는, 나답지 않게, K의 손을 잡고 함께 울었다. 눈물도 별로 없던 때였는데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나서 울었고, 고시 그까짓 게 뭐라고. 야, 아무것도 아니다. 사는 동안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계속 얘기하며 울었는데.
그때의 나는, 그를 꽤 좋아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렸다. 나는 그와 나누었던 이야기, 그날의 어떤 삽화들, 그를 좋아했다는 관념만을 기억한 채 어느덧 그라는 실체와는 영영 멀어져 버렸고, 그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
그가 변했다고 말했으니, 나는 정말 변한 게 맞을 것이다.
내 안의 어떤 구석은 손쓸 도리 없이 변한 게 분명하다.

*
요즘의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나는 현재 두 개의 직업을 갖고 있는데, 돈을 안정적으로 벌어준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장점이 없는 첫 번째 직업과는 달리, 두 번째 직업, 즉 작가라는 직업의 거의 모든 요소를 좋아한다. 그러나 안 좋은 점을 하나 꼽자면 이 직업이 끊임없이, 정말 끊임없이 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점. 그리고 계속해서 과거를 곱씹게 만든다는 점. 심지어 그것을 양분 삼아 그것을 노출해 모르는 사람에게 보이기까지 해야 한다는 점.
나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었던 것이, 그저 허상이었으며 단지 탐구가 덜된 과정에 불과했던 게 아닌지, 요즘은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 생각하고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고 그저 지독한 자기혐오에 사로잡힐 뿐이다.

*
...(중략)...
나는 정말 세상을 탐구하고 싶은 사람인가. 아니면, 그저 나 자신을 향해 걸어들어 가고 있는 자기 본위적이고 유아적인 퇴행의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인가. 나는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을 지나쳐와야 만족할 것인가. 내가 흘린 그 많은 눈물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
탐구형의 인간.
내가 나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박상영, 『탐구형의 인간』



*격월간 문예지 『악스트Axt』,no.021,2018. 11/12 에서 발췌 후 부분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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