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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퍼센트의 20대

동대문에서 이화장까지

by 정필년

99퍼센트의 2018년.


12월 29일이 생일인 친구가 있어 매해 새삼스럽게 환기 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29일부터 31일까지의 시간은 내가 지난 99%의 시간을 컴플릿하면서 익히 저질러온 짓을 새삼스럽게 복습 해보기도 하는 시간이다.


중요한 건 복기가 아니라 복습에 있다. 좀 더 범위를 넓혀 복습해보자. 20대 내내 부지런 떨며 해온 루틴은 뭐였을까.


서울 도심을 관통하는 지하철 노선을 타고 우연에 기대 연락을 넣어보자. (연락은 그날의 운세와 어쩌면 없을지도 모를 누군가의 진면모를 교환할 수 있게만드는 중요한 변수다.)


어딘가에 내리면 그곳을 A라는 상수로 올려두고 무작위의 장소를 B로 정해둔 채 걷기 시작한다. B는 대부분 언덕이 되기 마련인데 하이-그라운드에 올라서면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도시도 제법 낯설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늘은 우연히 동대문에서 내렸다. 낙산 갈 생각이 1도 없었는데, 어쩌다보니 오르는 성곽길. 길에서 마주하는 풍경


이것은 내게 주어진 길고 지루한 인생을 유쾌하고 되바라지게 받아치는 1024개 방법 중 하나였다.


2018년의 마지막 일요일, 낙산을 오르며 보고 느낀 모든 것은 내가 보낸 99%의 20대를 새삼스럽게 복기한 셈이여서 돌아다니는 내내 괜히 웃음이 났다.


이 세상 모든 것에게 말을 걸고 소리를 듣게 될 독특한 시공간 감각을 얻어낸다. 그렇게 얻은 감각을 부지런히 간직해둔다면, 언젠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애인의 손바닥에 감춰진 점을 별자리라 여기기도 하겠지.


걷다보니 올 겨울에 얻은 감기기운은 말끔히 떨어져나가고, 세찬 바람을 맞아도 뚜벅뚜벅 걸어나갈 선한 기운을 북돋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lotCMV_He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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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따금 내 몸뚱아리가 없어져도 눈알만큼은 남을거라고, 눈알에서 광선이 쫙 뻗어나와 벽을 비추면서 내가 어떤 식으로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를 누군가에게 비춘 뒤에야 소멸할 거란 엉뚱한 상상을 한다.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생각하는데 너무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그것이 아니면 딱히 욕망한 것도 없어서. 늘 시뻘겋게 충혈된 두 눈과 눈 속에 맺힌 상이 어딘가에 재현되고 나서야 육신도 썩어 없어지지 않을까 싶다.(어쩌면 타인도 나를 낱낱이 들여다보고 난뒤에 딱히 가지고 싶었던 게 없어. 내 눈알만 탐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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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 오르다 보면 몸도 내게 정직하게 말을 건내는데, 더 늙기 전에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을 건내더라.


내 마음 속 아기장수 우투리가 그렇게 속삭이니 들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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