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 삶을 모색하고 각자 탐색한 바를 교환하는 일. 예술이네 예술이야.
Q.예전 인터뷰에서 본인을 예술가로 부르기는 주저하면서 재능 있고 창의적인 예술가들 주변에 있는 일이 좋았다고 얘기한 기억이 나네요.
Q.특별한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 자체도 대단히 흥미롭긴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만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그들 곁에 있는 일이 왜 신나고 좋았을까요? 결국은 그들로부터 자극과 영향을 받길 욕망했기 때문이겠죠.
- '<시그널>부터 <국가부도의 날>까지, 김혜수를 복기하다' 中/ 인터뷰이: '김혜수'배우 / 인터뷰어 : '김혜리' 기자/ 발행: 씨네 21
김혜수 배우 인터뷰 중간에 담긴 문답이 콕콕 마음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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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람 그 자체'로 인식하지 못하고, 텍스트로서 해석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령 소설가가 내세운 인물을 소설가로 퉁친다거나, 타인의 sns를 읽으며 sns를 타인과 동일시한다. 우리 시대의 축복이자 저주이기도 하다.
텍스트로서 인간을 독해하려는 것은 이해에 도달하려는 노력이겠으나, 오해로 얼룩지기 마련이다.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이해와 오해의 갈림길에서 탁월한 선택을 내리려면, 역시 사람 곁에 있는 게 제일 낫지 않을까? 눈을 마주하고 말을 섞어 교환되는 바를 가장 신뢰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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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서의 인간은 단지 하나의 가설일 따름이다. 원본으로부터 n에서 nn번 정도 모방된 복제품(시뮬라르크)이며 nn개의 모방을 모두 모아 이어 붙인다고 하더라도 원본의 아우라를 뿜어낼 순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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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예술은 nnn번 이상의 시행착오를 거쳐 원본의 아우라를 초월하려 한다. 그래서 예술하는 사람들은 실패를 잘 예감하지만, 그럼에도 예술에 천진난만하게 몰두하는 습관이 있다. 예술이 아름답고 예술을 삶에 빗대고 예술가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예술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 그들의 삶으로부터 자극과 영향을 받는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크게 개선시킨다.
김혜수의 의견에는 그런 통찰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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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나의 궁극적인 욕망은 '예술가-되기'에 있지만, 아직은 예술가의 곁에 서고 싶은 욕망이 더 큰 거 같다. 예술가로서의 자의식 같은 것도 희미한 편이고...
직업으로서의 예술가뿐만이 아니라 일상을 예술처럼 만드려 애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가 일상을 예술로 만드냐고요? 세가지만 체크해봅시다.
1. 일상을 비일상적으로 여기려는 시도를 부지런히 하는 사람.
2.'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하는 것'을 분별하는 사람.
3.'지금-여기'라는 시공간 감각을 잣대로 삼아 세상을 탐색해나가는 사람.
만나보니 그런 사람들이 삶을 예술처럼 살더라고요. 예술을 제대로 해내거나. 곁에 그런 능력을 발휘하거나, 두각을 나타낸다면 찰떡같이 달라붙어봅시다.
저는 그런 사람들 곁에 머무르며 많은 배움을 얻었고, 계속 그런 일에 몰두하려고 한답니다. 더 나은 삶을 모색하고 탐색한 바를 교환하는 일. 이것도 일종의 예술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토크도 예술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