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우리' 모순 탐구생활
영화나 문학에서 자전적 모티프를 작품에 써먹는 일은 잘해야 본전, 밑져야 본전인 일이다. 그런데 음악에서는 자전적인 작품이 꽤 열렬히 지지받는 편이다. 오히려 자기 얘기를 쓰지 않으면 리스너에게 아티스트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 유명한 비틀즈도 자전적 모티프를 부지런히 담아내기 시작한 <Help!>부터 엄청난 명곡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비틀즈 신드롬이야 초창기부터 시작됐지만, 비틀즈 불후의 명곡은 대체로 <Help!> 이후 디스코그라피에 포진됐다는 게 팝뮤직 청자들 대부분 무리 없이 고개를 끄덕끄덕이는 보편적인 평.
https://www.youtube.com/watch?v=yxTdz3hw9Xo&feature=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DvFi0wvGrMw&feature=youtu.be
특히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은 비틀즈 해체하고서 더욱더 성숙해졌다. 폴과 존이 자전적 모티프 담은 노래를 경쟁적으로 쏟아내며 아티스트로서의 오리지널리티를 확고히 다져갔음은 너무나 잘 알려진 팩트.
요즘 우리나라 대중음악도 마찬가지. 자전적인 노래가 열렬히 지지받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전적인 모티프에 감응하는 청자가 뚜렷하다고 해야 하나. 특히 얼마 전에 풀린 아이유의 <Palette>나 혁오의 <23>이 딱 그렇다. 공교롭게도 두 앨범이 동시에 출현한 것도 신기하다면 신기한 일.
어떤 작가님 말 마따나 음악계에서 아델ADELE의 영향력을 무시 못하는 건지, 자기 나이 가지고 음악 만드는 게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아이유. 자기 음악을 하고 싶어도 상업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제 뜻을 니러 펴지 못했던 이 젊은 가수는 하기 싫은 음악도 꾸역꾸역 해냈다. 말 그대로 밑바닥부터 기어올라왔다. 그녀에겐 대체로 터프한 시간이었겠지만, 근성 하나만큼은 단단했던 아이유, 고난의 행군을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아왔다.
그저 그런 아이돌 음악을 하던 <Boo> <마쉬멜로우>, 탁월한 보컬력과 (오빠들에게 지지받을) 적당한 상업성을 증명한 <잔소리><좋은 날>, 폭넓은 장르 소화력을 보여준 3집 <Modern Times>, 고전 명작을 자기 스타일로 재해석한 <너의 의미>를 지나 바야흐로 2015년. 아이유는 <CHAT-SHIRE>에 접어들어 자기 자신의 음악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
만약 예전처럼 적당한 상업성을 추구하는 음악을 했다면, 15년에 벌어진 논란은 벌어지지 않았을 터. 논란이란 대체로 진보적인 시도를 하는 사람에게 집요하게 따라붙는 그림자 아니던가.
난 영원히 아이로 남고 싶어요
아니 아니
물기 있는 여자가 될래요
아 정했어요
난 죽은 듯이 살래요
아냐 다 뒤집어 볼래
맞혀봐
어느 쪽이게
얼굴만 보면 몰라
속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는 일
아주 간단하거든
어느 쪽이게
사실은 나도 몰라
애초에 나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
여우인 척하는 곰인 척
하는 여우 아니면
아예 다른 거
2015년에 <CHAT-SHIRE> 앨범 전체에 담긴 노래 가사를 직접 써낸 아이유에게 큰 흥미를 느꼈다. 특히 <스물셋>이란 노래. 앨범에 전반적으로 '모순적인 내면상태 탐구'를 집요하게 구현한 노래를.
스물셋. 정체성에 대한 고민, 무언가를 향한 욕망, 행동과 태도가 어긋나며 튀어나오는 위선, 그로 인한 내적 갈등이 가장 심해지는 시절. 어찌 보면 스물셋 무렵이 젊어서 제일 모순덩어리인 시절이다.
아이유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해석하든, 스물셋 여성의 보편적 이야기로 해석하든 , 스물셋을 통과한 모두의 이야기로 해석하든, 가사에 담긴 통찰은 탁월하고 가사에 부합하는 시각적 이미지로 잔뜩 뒤덮인 <스물셋> 뮤비는 가사를 돋보이게 만든다. 노래보다는 가사가 유독 튀는 노래였다. 말하자면 모든 시/청각적 이미지가 문학적 수사를 돋보이게 하는 느낌이랄까.
긴 머리보다
반듯이 자른 단발이 좋아
하긴 그래도
좋은 날 부를 땐 참 예뻤더라
오 왜 그럴까
조금 촌스러운 걸 좋아해
그림보다 빼곡히 채운
Palette, 일기, 잠들었던 시간들
I like it. I'm twenty five
날 미워하는 거 알아
I got this. I'm truly fine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
2년이 지나 '스물 다섯'. 스물다섯에 체험하는 보편적인 정서란 무엇인가? 스물셋보다 뚜렷해진 취향으로, 좋고 나쁨에 대한 표현이 확실해지면서 심신이 전보다 안정된다. 아이유가 이번 타이틀곡에 녹여낸 본인의 마음 상태.
하지만 여전히 "나를 잘 몰라요." 아주 조금 알 따름이다. 괜히 스무 살 초반이 그립기도 하고, 그때가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지만) 부쩍 늙어버린 듯한 기분이 드니, 뭐든 애매한 기분.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사람은 누구인가요?"
아이유가 뮤지션으로서 디스코그라피에 녹여내는 건 이런 종류의 '나잇값'이다. 나이를 통과하며 자연스레 획득하는 불안 정서다.
<스물셋>엔 일관성 없이 와리가리하는 마음씨를, <Palette>엔 뭘 해도 애매한 마음씨를 형상화한다. 아이유는 이런 식으로 불안을 끌어안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음악으로 형상화하는데 힘쓴다. 실제로 아이유의 콘서트실황 코멘트나 인터뷰를 살펴보면, 자연인 이지은과 연예인 아이유 사이에서 겪는 이런저런 마음고생을 고백하고 있다.
지은아 오빠는 말이야
지금 막 서른인데,
나는 절대로 아니야
근데 막 어른이 돼
아직도 한참 멀었는데
너보다 다섯 살 밖에 안 먹었는데
스물 위, 서른 아래.
'고맘때' Right there
애도 어른도 아닌 나이 때
그저 '나'일 때
가장 찬란하게 빛이 나
어둠이 드리워질 때도 겁내지 마
너무 아름다워서 꽃잎 활짝 펴서
언제나 사랑받는 아이. YOU
특히 애매모호함에 대한 성찰은 지드래곤을 피처링에 끌고 오면서 더욱 짙어진다. 동생이 자기보다 다섯 살 많은 아는 오빠를 카페에서 만나 서로 푸념을 늘어놓는 한풀이,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흔한 풍경, 평범한 인생 타령. 인생아 내 인생아 답답하다 내 인생아~♬.
그래서일까 아이유의 새 앨범에선 묘하게도 '바짝 늙어버린 젊음'을 포착한다. '늙은 젊음'. '작은 거인'이란 말처럼 아이러니한 표현이지만, 이 또한 요즘 2030 세대의 자화상이지 않을까? 뒤에 이어서 후술 하겠지만, 요즘처럼 2030 아티스트가 음울한 음악을 하는 시절이 없었다. IMF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팝 역사를 통틀어, 젊음을 다룬 노래는 대체로 경쾌하며 곡조가 밝다. 60년대 서핑 뮤직이나 로큰롤, 80년대 풍 디스코 팝뮤직. 이를테면 a-ha의 <Take On Me> 같은 느낌의 흥겹고 명랑한 음악을 떠올리게 되는데, 아이유의 앨범에서 점점 그런 정서는 희미해지고 있다. 바꿔 말하자면 아이유는 젊음을 음악의 재료로 쓰더라도, 젊음을 요리하는 방식이 다르다.
아이유는 앞으로도 '모순된 내면세계 탐험'을 계속할까?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서 자전적 모티프를 변주하는 아이유를, 자기가 제일 잘하는 스타일로 빚어내는 이 젊은 아티스트의 행보를 지켜보자.
아이유에 에어 밴드 혁오가 '스물셋'의 회한(?)을 풀어낸다. 이번에는 앨범 통째로 <23>이란 이름이 붙는다.
오혁. 대학교수인 아버지 슬하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중국 생활을 만끽하며 자라나, 한국에서 힙한 건 일등으로 포착 가능한 홍대 예술학과에 진학. 홍대 인근에서 이런저런 사유와 감수성을 자유로이 키워내며 살아가는 20대. 예술하는 깔때기를 음악으로 선택해 뜻이 맞는 파트너를 찾아 밴드를 결성한다. 홍대 인디씬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탁월한 음악 실력을 보여주다. 때 마침 무한도전 출연이라는 방송 출연 행운까지 맞아떨어지며 이제 죽을 때까지 음악만 해도 좋을 기반을 마련한 '밴드 혁오'. 이들이 '나만 알고 싶은 밴드'라는 수식어에서 벗어나게 된 건 참 반가운 일이다. 밴드 혁오는 해온 것 보다 '앞으로 할 것'이 더 많은 뮤지션이다.
헤비 리스너들은 혁오의 음악이 이미 서구권에서 시도된 음악이고, 이미 시도된 음악을 힙하게 꾸며냈을 뿐, 딱히 남다르다 여길 바 없다고 평가절하하는데, 나는 반대다. 오히려 높이 사야 하지 않을까.
외국에서야 어쨌든, 한국말로, 한국 정서를 녹여낸 노래를 한다면, 외국물을 잘 빼내고 재창조하는 것도 능력이고 재능이다. 특히 '밴드 혁오'의 가장 탁월한 재능은 요즘 들어 20대에게 짙게 퍼진 나른함을 적합한 톤&매너의 음악 스타일로 소환해내는 데 있다.
언젠가부터 가요차트에 신나는 노래가 바짝 줄어들었다. 아이돌 음악을 제외하면, 차트에 올라오는 음악은 곡조가 서글프고 보컬도 약간 나른한 노래가 사랑받았다. 가사도 세상비관적이다. ZionT. 김사월이나 이랑의 포크, 신해경과 검정치마의 일렉 사운드를 보라. 혁오도 마찬가지지만 그들이 펼치는 음악 작업에는 現2030세대가 선택하는 음울한 정서가 반영된다. 이것은 상업성을 고려한 선택이라기보다,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음악이 때마침 트렌드에 맞아 떨어지는 것에 가깝다.
난 엄마가 늘 베푼 사랑에 어색해
그래서 그런 건가 늘 어렵다니까
잃기 두려웠던 욕심 속에도
작은 예쁨이 있지
난 지금 행복해 그래서 불안해
폭풍 전 바다는 늘 고요하니까
불이 붙어 빨리 타면 안 되잖아
나는 사랑을 응원해
혁오의 새 앨범 <23>에서 제일 잘빠졌다는 평을 받고 가장 사랑받는 타이틀곡 <Tomboy>를 보자. '사내 같은 여자아이'란 제목 자체에 이미 짙은 이중성을 내포된다. 톰보이가 여성성과 남성성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하는 줏대 없는 자아를 뜻한다면, 사랑받아도 불안하고 행복해도 불안하다는 고백은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일관성 없이 와리가리하는 내면의 모순. 이번 타이틀곡에서 사람들이 열광하는 까닭은 혁오가 이런 종류의 모순을 적절한 문학적 수사로 담아낸 덕분이지 않을까. 내용적인 면에선 아이유의 <스물셋>과 별 다를 바 없으나, 앨범 차트에서 그보다 좀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 큰 논란 없이 버티는 까닭은 문학적 수사로 무장한 가사를 잘 꾸며진 밴드 사운드에 덧입힌 덕이리라.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가는데
아아아 아아
슬픈 어른은 늘 뒷걸음만 치고
미운 스물을 넘긴 넌 지루해 보여
불이 붙어 빨리 타면 안 되니까
우리 사랑을 응원해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가는데
아아아아아
특히 중반부에 나오는 '젊은 우리'라는 표현이야말로 <Tomboy>의 핵심 어휘. 혁오는 분명 자기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예민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리스너를 향한 '계획된 표현'이라는 근거없는 확신까지 들 정도다.
나는 혁오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중산층(이었던) 가정에서 자라, 또래에 비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풍부한 2030 세대라는 심증을 갖고 있다. 물질적으론 풍요롭게 자랐지만, 정신적으론 빈곤에 시달리는 세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일관성 없이 표리 부동하는 자아, 대체로 흐물거리는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
단군이래 가장 풍요로웠다는 90년대 초반에 태어나, 집안에서 프라이머리 서포트는 다 받아다 컸는데, 어른이 돼서 내디딘 사회는 전반적으로 우울하기 짝이 없다. 비빌 데가 없어 불안하고, 비비고 있는 언덕도 금방 무너질 것만 같아 불안하다.
이렇게 세상 불안한 자들에게 '우리'라는 동류의식을 심어주며, 청자들에게 지지받고 안정받는 기분을 전하면서, 노래는 절규하는 외마디로 절정에 다다른다. '아~♬x5' <Tomboy>에 훅이 걸리는 결정적 파트.
Q.마지막으로, '힙스터 음악'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일단 저희는 힙스터가 아니에요. 힙스터는 유행을 수용할 뿐 만들어 내지는 못하죠. 저희 음악을 좋아하는 분 중에 힙스터가 많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힙스터를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인터뷰 中 / 박세회Editor / 2015년 03월 26일
새 앨범의 반응이 너그러우니, 어쨌든 본인들이 힙스터를 움직인다는 스윀은 앞으로도 유효할 듯하다. 꼴리는 대로 작업했는데도 성공한 음악은 상찬 받아 마땅하다.
애초에 인디씬에서 출발했으니, 상업성에 묶여버린 음악세계가 있을 턱이 없다. 혁오 또한 아이유 못지않게 '모순된 내면 탐험'에 열심이다. 그래서 혁오가 음악으로 구현해내는 '자유로움'은 아이유보다 폭이 넓다. 그런 덕에 아이유보다 자전적 모티프를 노래에 더 짙게 드러낸다.
그래서 혁오가 아이유보다 우월하다거나 둘 중 하나를 고르려는 양자택일 식 결론을 내리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지금까지 길게 주절거린 것은 두 사람이 대체로 비슷한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었다는 걸 밝히기 위함이다. 지금까지 혁오와 아이유는 '모순덩어리 내면 탐구생활'에 열중이었다. 치열하게 임하는 자아 획득의 과정.
그렇기 때문에 나타나는 '높은 자기 반영성'이 두 아티스트의 공통점이라면, 아이유와 혁오는 다음 디스코그라피에 분명 '스물여덟' '25' 같은 라벨링을 붙여 노래를 만들 것이다.
일관성 있는 작업이다.
요즘 젊은것들의 내면은 복잡하게 얽혀있고, 한 없이 불안하다는 걸 입을 모아 말하겠지.
그렇다면 다음에 이어질 테마는 분열된 내면을 '화해시키는 방법' 이 나란히 제시되길 바란다. 지금까지 분열된 내면을 노래하는 뮤지션은 많았다. 하지만 그것을 전시하는데 그쳤다. 내가 이렇게 시궁창이고 모순덩어리인지를 대놓고 전시하고 박제하는 사디즘에 가까웠다. 나는 이제 여기서 벗어나는 모습을 기대한다.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도달했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신해철이 보여줬던 것처럼, 수용자로 하여금 어떤 무브먼트에 이르게 하는 음악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바꿔 말하자면 지금과는 다른 방법을 거쳐 분열된 내면을 '화해시키길 바란다. '자전적 모티프를 담아내는 데 있어, 이전의 작업방식을 초월하는 무언가를 보길 희망하고, 자전적 모티프에 대한 수준 높은 해석이 이뤄지길 소망한다. 팬이라서 기대가 좀 세게 들어가는 걸까?
이렇게 까지 기대가 부풀어 오르는 까닭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데도, 그게 잘 팔리는 뮤지션. 상업성과 예술성을 나란히 내세울 수 있는 뮤지션은 지금 우리나라에 몇 안되기 때문이다. 아이유와 혁오는 그게 된다. 이제 두 창작자는 음악을 통해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일정 수준 이상의 예술성을 수용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실력이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분열된 내면을 화해시키는 방법'은 개성 있게 나타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자연스레 생긴다.
결국 아이유와 혁오의 팬.
더 나아가 대중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들이 두 뮤지션에게 기대하는 바는
'증폭된 개성'과 '뚜렷한 방법론적 차이'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