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필년 May 14. 2017

남녀친구무용론男女親舊無用論? - 있다 X 없다

남사친과 여사친.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흔히 사람들은 "여자와 남자는 서로 친구가 될 수 없다."라고 하는데, 내 생각엔 그게 그렇지 않다. 도리어 <사랑과 우정 사이>의 『여사친/남사친』을 잘 둔 사람일 수록 '건강한 인간다움'을 간직한다. 뻔하지 않은 얘기를 뻔뻔하게 주고받는 사람을 '좋은 친구'라고 한다면, 나는 이 방면에 있어 가장 좋은 이성친구를 두고 있다. 

내게 있어 각별한 '이성친구' 나미 ─ 물론 신변보호를 위한 '가명─ 얘기를 꺼내볼까.



우리의 인연도 여느 남녀와 마찬가지로, 서로를 알아가는 시기가 있었고, 만날 수록 서로를 향한 인식이 깊어졌으며, 고백을 기준으로 전과 후의 관계가 많이 달라졌다. 다행이라면 고백이 닿지 못했을 때 나오는 가장 좋지 못한 결말,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게 아니라, 도리어 '남보다 나은 사이'가 됐다는 것이다. 




그 비결은 '뻔뻔함'에 있지 않았을까. 대표적인 예로 이런 일화가 있다. 둘이서 뮤지컬을 보고 혜화에서 서울역까지 걸어가는 길에.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 걸음을 나란히 하며 많은 대화를 주고 받다.


그 때 나미가 별안간 툭 내뱉은 말.


"오빠! 우리 결혼적령기 때, 서로 만나는 사람 없으면 ... 결혼합시다!"



나미에게 이 말을 듣고 난 후, 나는 한동안 이게 당최 무슨 뜻으로 건낸 말인지 진지하게 헤아려봤다. 주변 사람에게도 이 말의 의도를 해석하게 해봤으나, "X년이야" "어장관리네""어쨌든 너 괜찮다는 거네" 등등 사람마다 반응이 제각각이여서 "역시 사람은 오해의 동물이구만" 이라는 생각만 키워버리고 말았다. 장고 끝에 내린 나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당신에게 품는 연애감정은 희미하지만, 당신은 좋은 사람이다.
당신과 함께 사는 것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을 것이며,
인연이 닿으면 함께 사는 것도 나름 근사하겠다고."
 


결국 '나미의 말'은 적어도 연애에 있어 완곡한 거절이고, 썩 기분좋다고 말할 수 있는 부류의 것은 아니었다.(*"이성으로 안 보인다"는 타인의 인식만큼 존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인정하고 감당할 수 있을만치는 됐기에 받아들였다.(*"다시 거듭나겠다"는 이성을 향한 인정욕구 만큼 섹스어필을 나아지게 하는 것도 없다) 이러한 결론은 관계에 적용할 「Default Attitude」가 됐고, 나는 이 태도를 바탕으로 제법 뻔뻔하게 굴며 나미와의 만남을 이어왔다. 

'나미'나 '나'나, 대체로 뻔뻔한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라, 서로의 연애감정을 자극하는 사건이 있어도, 큰 어려움 없이 관계를 지속해왔다. 뭐 이를테면 서로가 서로에게 '썸'을 털어놓아도  때론 무디게 적당히 진지하게 대꾸하면서 말이다.이것이 우리를 남보다 나은 사이로 이끈 비결이지 않나 생각해본다 이것은 이성과 감성에 적절한 균형을 가져왔고 그러면서 우리는 연애감정을 초월한 관계를 쌓기 시작했다. 나는 나미와 뻔하지 않은 얘기를 뻔뻔하게 늘어놓을 '신뢰'가 생겼고 이것은 내가 스무살 이후 쌓은 가장 근사한 인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만남은 우리가 이성을, 더 나아가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았다.


이 사건 이후로 몇년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두어달에 한번정도 만나는 편인데, 나미는 또 한번, 별안간 재밌는 주제로 내게 말을 건냈다.

"오빠는 정말 결혼 했으면 좋겠다." 

"무슨 말이야?" 

"오빠는 정말 애 낳으면 잘 키우고 잘 놀아줄 거 같아. 
오빠네 애랑, 우리 애랑 같이 만나서 어울리면 얼마나 좋을까?"


"재밌는 생각이네...ㅎㅎ 나미야! 근데 너... 이런 얘기, 다른 남사친들한테도 해봤어? 해서 별 재미 못봤을 거 같은데? 남자랑 여자 사이에 친구가 없다고 생각하는 애들한테는 이해 못할 말이고, 욕먹기 딱 좋은 말이야."

"어떻게 알았어? 하여튼 오빠는 진짜...ㅎㅎ 나는 솔직히 서운해. 진심인데... 친구라면 받을 수 있는 거 아니야? 남녀 사이에 이런 마음은 정말로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걸까?"




듣고 보니 그렇다. 나미 입장에서는 몹시 안타까울 것이다. 이성친구와도 친구로서 잘 지내고 싶을텐데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무릇 사내란 대체로 자기한테 조금만 잘해줘도 여성에게 푹 빠지는 편이고 (*거기에 외모가 곱다 싶으면 허겁지겁 달려든다.) 연애감정을 '진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찰싹 매달리니 말이다. 이 반대의 사례, 여성이 남성을 향해 성립하는지도 궁금하나, 이런 건 내가 여성이 아니니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겠다. 

꼴이 그럴듯하면 다행이겠으나, 한쪽이 일방적이게 되면 ─보통 연애초기의 '철부지 열정'이 폭주하므로 결국 생채기만 남는다. 남녀사이의 감정이란 어긋나기 시작하면 한없이 폭력적이다. 나 또한 가해자였으며 피해자였고, 대부분의 이성애는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조까~남녀사이에 친구가 어딨어?!"  『남녀친구무용론男女親舊無用論』을 주장하는 이들은 어쩌면 이런 가학적인 구조가 싫어서 그렇게 둘러대고 싶었던 게 아닐까. 연애감정이 내키는 사람과의 스침으로 이어진다면, 나름 로맨틱한 일이 벌어지겠지. 허나 그렇지 않다면, 남녀관계로 빚어지는 일이란 세상에서 제일 피곤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사친/여사친」으로 이끄는가? 

이것은 중요한 질문이다.  남사친/여사친 만큼 위태로운 인연도 없건만, 물리적으로 'U'자 형 곡선을 그리는 불안정 평형상태이자 벽돌 하나 빠지면 와장창 무너지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굳이 살얼음판을 걸어가는가? 

내 생각에 『남사친/여사친』이란 '연애하긴 아쉬운데, 충분히 만날만한 매력이 있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적어도 「남사친/여사친」 에겐 썩 괜찮은 '휴머니티'가 있다는 말이니...


축하한다! 


당신이 『남사친/여사친』이 된 경험이 많다면, 적어도 당신에게는 당장은 몰라도, 언젠가 연애를 가능케 할 싹수가 있다. 당신도 연애를 통해서 미처 드러나지 않은 '인간다움'을 꽃피우고 싶다면, 우리 같이 죽을 힘을 다해 애써보자.

대체로 매력의 여러가지 옵션 中 '한 가지 호감'만이 강렬할 때, 『남사친/여사친』이 성립한다. 다른 건 다 안내키더라도, 그 사람만 간직하고 있는 ' 단 하나의 매력'. 그것이 이성을 떠나보낼 수 없는 친구로 머무르게 만든다. 거기에 시간이 흘러 발견하거나 각성하는 또 다른 '매력'을 기대하고 친구 사이를 이어간다.



간단한 도식을 하나 세워보자. 사람들이 호감을 가지는 세가지 요소를 지.덕.체(智德體)로 정했을 때, 3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사람은 이미 단단하고 아늑한 연애를 하고 있다. 두가지만 만족시켜도 연애는 충분히 성립한다. 그러나 한가지만 가지고 있으면 연애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연애와 사랑에 눈길을 둔 이후로, 나와 내 주변세계를 충분히 둘러보고 겪은 끝에 내린 귀납적 결론이기도 하다.


내 얘기를 해보자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지智'에 손을 들어줬다. 특히 요즘 들어서 그런 기운이 더 강해지는 모양새다. 어쨌든 고마운 노릇이다. 내가 죽을 힘을 다해 쌓아올리고 있는 일에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징후니까. 하지만 마냥 달갑지만도 않다. 나는 요즘 내가 간직한 지성미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자부심은 있으나, 지성미로 쌓은 인연은 결국 거기에서 그칠 뿐이라는 생각이 짙기 때문이다. '뇌'로 쌓아올린 인연은 딱 '뇌'까지만 그치고, 정작 사람을 향한 관심은 희미해진다. 또 지성미는 내세우고 싶지만 내세울수록 볼품없어지는 아름다움이요, 조금만 부풀어 올라도 허세부리기 딱 좋은 아름다움이라, 나는 지성미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해지고 싶다. 


차라리 내게 육체미 같은 게 컸다면, ─요즘처럼 루키즘lookism이 두드러지는 시절엔 있는 힘껏 뽐내고 말았을텐데 말이다.

해서 내가 얻고자하고 이루길 소망하는 건 지.덕.체(智德體)를 고루 간직한 '건강한 남성미'다. '육체미體'의 부재로 인해 성립되는 『남사친/여사친』 만큼 비참한 게 없지만. 어쨌든 공들여 쌓아야 할 것은 오로지 'Real Man' 혹은 'Übermensch'라 불리는 인간군상에 이르는 일이다. 모자란 건 채우고, 과한 건 덜어내면서 얻어내는 어떤 조화 내지는 균형인 것이다.

해서 내가 요즘 내 주변 이성친구들을 만날 때 내세우는 태도는 다음과 같다. 내심 뻔뻔하게 어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받아들여지는지는 모르겠다.


"어차피 나랑 안 사귈 거 다 아니까, 그냥 나랑 만나."
"이런 식으로 만나는 것도 제법 쓸만하지 않나요?"

"기대를 안하면 실망도 안합니다."




『남사친/여사친』을 오래 두고 깊게 사귀는 일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각오와 결의가 필요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절묘한 균형과 상호 간 노력이 있어야한다. 워낙 변수도 많고, 여러모로 제 멋대로 굴러가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손바닥 뒤집히듯 관계가 급변하더라도 초연할 '태연함'이 있어야겠다. 허나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는 관계가 연애로 이어진다면, 그보다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이미 서로에 대해 충분한 인식을 갖춘 채 사랑을 하게 되니까.

다시 나미 얘기로 돌아와 본다. ‘나미’와 ‘나’는 'fall in love'를 이루긴 힘들 것이다. 아마 나미도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리고 서로 그렇게 말하고 허허 웃고 말리라. 참! 뻔뻔하기도 하여라! 이렇듯 뻔뻔할 수 있는 건 우리는 서로가 정한 선을 존중할 만큼의 정신머리와 감정머리를 지키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더불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란 사실에서 나오는 것인데, ‘연애의 근본’에 우정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내가 힘주어 말하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밀어주고 끌어주는 ‘동반자’야 말로 어쩌면 평생을 걸쳐 탁월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랜시간 선을 지키며 만나온 시간만큼, 우리 사이에는 단단하고 아늑한 '결속'이 생겼다. 이런 '결속'은 'fall in love'만치 소중한 남녀간의 인연이다. 이런 결속을 가진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 「남사친/여사친」의 묘미를 알게 되는 일은 아라비아 사막 깊은 곳에 간직된 오아시스를 만난 기쁨과 같을 것이다. 오래 사귀어 침착함을 유지한 끝에 도달하는 관계, 어쩌면 인간관계의 극치라고도 할수 있겠다. 

선을 지키며 만나는 이성친구는 젠더gender와 섹스sex의 차이, '서로 다름' 때문에 빚어지는 오해를 해소시켜준다. 또한 동성친구가 결코 만족시켜 줄 수 없는 감수성과 탁월한 통찰을 안겨준다. 남녀 간의 몰이해와 오해에서 비롯되는 사회문제가 갈수록 커져가는 요즈음, 나는 새삼스레 '건강한 이성친구'의 소중함을 돌이켜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