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raiano Mar 08. 2019

램지 맥밀런 - 로마제국의 위기

위기라 했다고 진짜 위기인줄 아냐

로마제국의 위기, 그리고 역사를 해석해야 하는 관점


흔히 사람들은 로마제국과 다른 고대, 중세 국가들의 몰락의 원인을 기술의 부족과 과학에 대한 무지함, 체계적이지 못한 대처라고 치부합니다. 교통과 통신의 발전, 진일보한 과학 기술로 인해 현대의 국가와 인간들은 이러한 문제에서 벗어났으며,사회가 진보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양 문명의 승리와 함께 보급된 직선적 역사관은 이 흐름에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역사상으로 이전에 존재했던 사건들은 그 시대만의 문제로 인하여 현재 인류와는 관련이 없는 문제로 간주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로마제국의 문제도 이러한 관점에서 해석 되었습니다. 게르만족의 침입, 국가체계의 붕괴,하이퍼 인플레이션, 군인황제 시대 등 로마제국이 가지고 있던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은 전문적 지식이 부족하였던 고대인들의 무지함에서 비롯되었으며,충분한 지식과 이를 활용할 수 있는 현대인들은 이를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책의 저자 램지 맥멀렌은 이러한 흐름에 의문을 던진 학자입니다. 로마사의 흐름은 유럽 역사가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로마의 위기’는 위기라고 100여년간의 연구 끝에 고착화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역사가들을 중심으로 이 흐름에 반기가 들어집니다. ‘로마의 위기’는 과연 위기인가?고대인들은 이를 어떻게 해석하였는가? 현대인들은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라는 큰 질문에서 미국의 역사가들과 램지 맥멀렌은 시작했습니다. 고착화된 흐름을 깨고 새로운 시각을 가져온 그의 연구는 우리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어떠한 지식과 의견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요구되는 태도는 무엇인지 알려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로마제국의 위기’라고 규정되는 시기는 알렉산더 세베루스가 암살되는 235년부터 콘스탄티누스가 죽는 337년까지입니다. 이 기간 동안 25명의 군인 황제가 있었고, 재위기간이 길었던 디오클레티아누스와 콘스탄티누스를 제외하면 나머지 황제들의 평균 재위기간은 2년을 넘지 않습니다. 본격적으로 게르만족과 훈족, 고트족 등 이민족들이 남하하고 현물 가격은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치솟았으며, 황제들이 수없이 죽었습니다. 사회는 기독교와 이교로 나뉘어 반목하였고, 반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위기는 자명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왜 정론과 다른 결론을 도출했는지는, 로마제국의 특성에서 기인합니다.  


로마제국의 지도를보면 지중해를 감싸고 있는 구조입니다. 지중해를 내해로 가지고 있음은 로마제국에게 있어 천혜의 이점이자 약점이었습니다. 거대한 바다로 인해 효율적인 해로 수송이 가능했고 물자의 교환이 활발했습니다. 무역이 활성화되어 로마제국의 은이 인도, 중국까지 수출되었고, 반대로 막대한 현물들이 제국에서 유통되었습니다. 거기다가 로마제국 특유의 도로 기술과 촘촘한 연결망으로 인하여 제국은 안전했고, 유례가 없는 팽창경제를 누렸습니다. 로마제국은 적보다 한 발 앞서 공격, 수비를 취할 수 있었고 정치적으로도 한 명의 황제와 이를 보좌하는 원로원을 중심으로 막대한 인재풀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인구 추정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전성기 트라야누스 시절의 로마는 최소 5천만명 ~ 최대 1억 명의 인구를 가져 중국 한나라의 5천만명을 뛰어넘습니다. (후한 광무제가 승리한 A.D.57년 기준 후한 인구 2,800만 명)


그러나 지중해를 감싸고 있음은 로마에게 큰 약점이기도 하였습니다. 국토가 너무 넓어진다는 점입니다. 해로 수송이 육로 수송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하나, 로마의 국토는 아프리카의 모로코부터 현재 유럽의 폴란드, 루마니아, 아시아의 아르메니아에 이르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는 외세의 침입을 막을 군대의 수송에도 걸림돌이었을 뿐만 아니라, 통신의 문제도 야기하였습니다. 제국 내의 통신에 문제가 있는 점은 일례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자신의 칙령이 영국에서 포고될 때까지 수개월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격분하였다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이는 앞으로 진행될 역사에 가장 중요한 점인데, 왜냐하면 여기에서 하나의 제국이 통일성을 잃게 되고 점차 중세로 이행하기 때문입니다. 황제의 칙령이 포고되기까지 오래걸린다는 점은 각 지방 속주의 총독이 자율적으로 권한을 행사함을 의미합니다. 이집트의 경우 황제 직속 속주로 할당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총독의 권한에 따라 인구조사가 실시”되었으며, 조세와 군납도 “총독의 권한에 따라 알맞은 비율”로 이루어졌습니다.


저자는 국토의 통일성이 떨어짐에 주목합니다. 각 지방 속주들의 권한이 커져갔다면 역사도 각 지방들에 집중하여 서술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로마 역사는 ‘로마제국의 위기’를 로마 단일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로마의 굵직한 사건들, 예를 들어 베네룩스에서의 철군과 로마에서의 천도 등 제국 전체적으로 바라볼 경우 ‘로마의 위기’는 합당합니다. 그러나 저자와 함께 로마의 속주들을 바라볼 경우 새로운 상황이 드러납니다. ‘로마의 위기’의 한복판이었던 270년경, 로마에서가장 중요한 속주였던 이집트와 북부 아프리카에선 “황제의 권위를 칭송하고 태평성대를 기원”하였습니다. 반면 황제와 반란자들의 주요 전투장소였던 일리리쿰(발칸반도)의 경우 “로마의 국력은 쇠하였다”라는 기록이 발견됩니다. 고대인들의 기록 뿐만아니라 실제 생산력을 비교해 볼 경우 이집트는 서로마제국이 본격적으로 공격받던 4세기 후반까지도 전성기의 농업생산량을 유지하고 있었던 반면 갈리아(프랑스)에선 제국의 통치 시스템이 4세기 중반에 이미 완전히 붕괴하였습니다. 이렇듯 속주에 따라 변화한 경제력과 정치 상황은 제국의 상황을 점차 바꾸어 나갔습니다. 불안정한 정치 상황으로인하여 상비군이 점차 증가하였고, 제국은 여러 요지에 상비군을 대거 주둔시켜야 했습니다. 상비군이 주둔한 지역은 막대한 현물과 곡식을 요구 받았고, 이를견디지 못하여 중산 소농민층이 붕괴하였습니다. 이들은 직접세를 피하기 위하여 대토지를 가지고 있는 귀족에게소작농으로 들어갔으며, 따라서 지방에서 점차 대토지 귀족층이 득세하고 이들이 중세시대의 기사와 영주로 발전하게 됩니다. 한편 상비군이 주둔하지 않은 지역들은 곡식과 현물 대신 은의 현금을 납부하게 되었는데, 이 또한 화폐 주조소들간의 경쟁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제국에 직접세를 바치는 소작농층이 붕괴하고 지역을 벗어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황제들은 대규모 공사와 정책들을 유지하기 위해 소작농의 거주 이전과 이동의 자유를 박탈하고, 직업의 할당제를 점차 엄격하게 유지합니다. 이는 중세의 길드 제도로 이어지게 되며, 제국의 전문적 직업 종사자들과화폐 주조, 건축 등 핵심 기술들이 황제 직속으로 재편되는 결과를 야기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현상들을 과연 ‘로마의 위기’라고 해석해야 하는지의 여부입니다. 황제가 교체되던 시기에도 제국은 국력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제국의 명백한 위기라고 정의하기엔 제국의 핵심 속주들은 경제력이 유지되거나 오히려 상승하였습니다. 그리고 갈리아, 일리리쿰, 다키아등 혼란을 겪은 속주들의 경우에도 제국은 적절한 대처를 통해 국토적 통일성을 유지하려 하였습니다. 4두황제등 로마는 권한을 분리해서라도 거대한 로마를 하나의 국가로 유지시키려 하였고, 실제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집권 이후로 로마의 정치는 안정되었습니다. 결국 ‘로마의 위기’는 로마를 통합적으로, 표상적으로 바라볼 때 쉽게 판단할수 있는 오류일 수 있으며, 해석자의 시각에 따라 로마는 위기가 아니며, 어쩌면 정치체계가 이행하고 있는 과도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따라서 ‘로마의 위기’는 결국 해석자가 어떠한 기록에 집중하고 해석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며, 현재의 주도적인 서술과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로마가 부침을 겪었던 이유는 기술의 한계에서 기반함은 확실합니다. 교통과 통신이 발전하지 않은 로마가 큰 영토를 유지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분열의 여지를 가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를 기반으로 고대와 중세인들이 지식의 부족과 미개함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사회의 문제상황에서 발생하는 혼란과 대응의 미흡함은 시대가 바뀌어도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2008의 경제위기와 여타 전쟁의 상황을 보면우리는 기술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된 시대에도 사회의 혼란과 갈등은 유지되고, 더 큰 규모로 발생함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역사의 양상은 다시 돌아오며, 로마와 비슷한 정치체계와 경제체계를 차용한 미국도 이미 로마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과거의 문제를 역사의 이면이라고 치부하지 않고, 다시 상세하게 들여다보아 문제를 분석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Final fantasy VII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