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raiano Mar 08. 2019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 슬픈 열대, 3주차

제 1부 여행의 마감

4. 힘의 탐구


브라질 내륙에서 장기간에 걸친 현지조사를 해보기 위해 상파울루 대학과의 계약갱신을 거절한 나는, 동료들보다 몇 주일 앞질러 브라질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승객이 많은 일도 처음이었는데, 외국의 사업가들도 있었으나 정원의 거의 대부분이 군사파견단으로 파라과이에 가는 자들이었다. (중략) 장교들과 그들 부인들은 이 대서양 횡단 항해를 식민지 획득을 위한 원정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으며, 겨우 규모가 작은 한 군대의 교관으로 부임하러 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정복된 나라를 점령하러 가는 듯 생각하고 있었다. 


- 레비 스트로스가 탑승한 브라질행 배에서도 서구 중심주의가 뿌리박힌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알 수 있습니다.


여행이여, 이제 그대가 우리에게 맨 먼저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인류의 면전에 내던져진 우리 자신의 오물이다. (중략) 여행담이란, 지금은 없어져 존재하지는 않지만 마땅히 계속 존재해주기를 우리가 바라는 그런 것의 환영을 우리에게 갖다주는 것이니까.


- 여행도 서구중심주의로 인해 자본화 되어, 구조와 의미의 발굴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보고 싶은 환영만 가져다주는 여행으로 변질되었습니다.


후추를 앙리 4세 시대에는 궁정 사람들이 한없이 아껴서 무척 예쁜 사탕과자 그릇에다가 넣어둘 정도였다. 시각과 후각에 미치는 자극, 혀를 녹이는 듯한 맛 등은 그 자신 무미건조하다고 여겨본 적이 없던 한 문명의 감각중추의 건반에다가 새로운 음역을 하나 넓혀주었다.그렇다면 상황을 바꾸어 현대의 마르코 폴로 들도 동일한 땅에 가서 정신적 양념을 갖고 올 수 있다고 하겠는가? (중략) 현대의 조미료는 사람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모조리 모조품들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현대 조미료의 성격이 순수하게 심리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정직하다 할지라도 그것을 본래의 상태 그대로 갖고 돌아올 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중략) 실제로 체험한 것을 평범한 이야기로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레비 스트로스는 여행의 변질과 서구중심주의의 확대를 후추의 예시로 설명했습니다. 후추는 원래 새로운 다양성을 넓혀주는 조미료였지만, 현대에 들어선 획일화된 하나의 맛에 한정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서구중심주의의 확대라고 연결할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어떠한 조미료, 문명의 전달은 전달자와 그 언어를 통하여 필연적으로 왜곡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레비 스트로스는 전달 과정에서의 왜곡이 필연적이나 이 왜곡이 학문에 받아들여질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고 경고합니다.


따라서 원주민 사회의 몇몇 제도에 관한 연구가 원주민의 심리적 동기를 해명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중략) 많은 북아메리카의 부족들 사이에서는, 각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사춘기에 달했을 때 겪어야 하는 시련의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어떤 사람들은 먹을 것도 안 가진 채 홀로 뗏목을 타고 흘러가고, 또 어떤 이들은 맹수와 추위, 그리고 빗속에 몸을 드러낸 채 고립되어 산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며칠, 몇 주일, 경우에 따라서는 몇 달씩을 그들은 음식물을 끊는다. 단지 야생의 것들이나 약간 삼키거나, 아니면 아예 장기간에 걸쳐 단식을 하면서 구토제를 사용하여 그들의 생리적 쇠진을 가중시키기까지 한다. 그 모두가 현실을 뛰어넘은 세계를 환기시키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중략) 이러한 시련이 젊은이들을 마비와 쇠약, 착란상태로까지 빠지게 해놓으면, 그 속에서 그들은 초자연 세계와의 대화 속으로 들어가길 원하는 것이다. 그들의 고통과 기도가 절정에 달해서 마음이 사로잡히면 어떤 마법의 동물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 환각 속에서 앞으로의 그들의 수호신이 나타나고, 동시에 이름과 특수한 힘이 부여되는데, 수호신을 닮은 그 힘이 사회집단 내에서의 그들의 특권과 서열을 결정지어준다.


- 서구중심주의에 입각한 해석은 원주민의 사회와 제도를 열등하다고 밖에 결론내지 못합니다. 왜곡된 연구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원주민 사회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필요한데, 여기서 레비 스트로스는 북아메리카의 청년들에게서 발견되는 예시로 설명합니다. 청년들이 사회적 위치를 정하려 할 때 이들은 서구사회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흔히 보기에 고어하거나 그로테스크한 일들을 합니다. 이들이 스스로를 학대하여 착란상태에 깊게 빠질수록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는 것인데, 이 환각에서 드러나는 동물이 차지하는 생태계에서의 위치가 그대로 사회적 위치가 됩니다.


이 원주민들에게는 사회로부터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 제도와 관습이라는 것이 이들에게서는, 단조로운 기능 때문에 우연이라든가 행운 또는 재능 같은 것이 움직일 여지가 허용되지 않는 기계장치와 다를 바 없다. 이러한 운명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사회규범이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며 동시에 그가 속한 집단의 보증과 요구가 소멸되는 위험한 변경으로 뛰어들어보는 방법일 것이다. 즉 좋은 풍속의 지배를 받는 영역의 끝까지, 생리적 저항 또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극한까지 가보는 방법뿐이다. (중략) 정돈이 잘 된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미개척 사애인 거대한 힘의 대양에서 개인적으로 비축할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을 수도 있고, 그 힘 덕분에 달리 변할 수 없는 어떤 사회질서가, 이 대담한 자를 위하여 폐지될 수 있을 곳이 또한 바로 그 변경이기 때문이다.


- 원주민이 기상천외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제도와 관습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레비 스트로스는 말합니다. 여기서 레비 스트로스가 뒤르켐과 달리 집단의 구조와 개인을 분리하여 생각함을 알 수 있습니다. 집단과 분리된 개인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통하여 표면화, 시각화된 상태에서 벗어나 거대한 힘의 대양, 자연, 힘에의 의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개인이 스스로 획득한 힘에 의해 사회적 지위가 규정됨은, 개인의 역량이 해석에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를 사회적 구조로 해석하려 하는 뒤르켐의 적용과 대비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피상적인 해석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완전한 변증법은 관습과 집단의 철학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또 개인이 가르침을 받는 것도 바로 집단으로부터이다. 수호신에 대한 믿음도 집단에서 만들어놓은 일이고, 또 사회질서에 둘러싸여 있을 때 거기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는 터무니없고 절망적인 시도를 대가로 치러야만 얻어진다고 그 구성원들에게 가르치는 것도 바로 사회 전체이다.


- 레비 스트로스는 다시 집단의 구조와 개인을 완전히 분리하여 생각하는 태도도 경계합니다. 사회와 개인을 같이 생각하되 뒤르켐은 사회를 그 대립관계에서 우선시하지만, 레비 스트로스는 개인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포이어바흐와 마르크스로 대표되는 유물론의 입장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에서 본 원주민들의 예에서와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기 위해 몇 주 또는 몇 달 간 집단으로부터 격리되었던 젊은이는 어떤 힘을 마련해가지고 돌아온다. 그러면 그 힘이 우리 사회에서는 신문 기사, 베스트 셀러 그리고 만원이 된 강연회 등을 통해 표현된다. 그러나 그 힘의 마법적 특성은, 모든 경우에 현상을 설명하는 집단, 그 스스로의 자기 기만의 과정을 통해 증명된다. 미개인들, 얼어붙은 산봉우리, 고귀한 사원들, 이런 것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보아 문명사회의 적인 까닭이다. 문명사회는 그러한 것들을 제압하게 된 순간에 가서는 작위를 주다시피 추켜올리는 우스꽝스러운 짓을 자아내지만, 그것들이 진정한 적대자로서 존재할 때는 공포와 혐오감만을 느낀다.


- 이러한 기상천외한 행동들은 원주민에게서만 발견되는 현상이 아닙니다. 당시 서구 사회에서도 이렇게 기상천외한 여행과 모험을 떠나온 젊은이들이 강연 등을 통해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었습니다. 다만 여기선 '힘'이 자본화를 거쳤을 뿐, 그 '힘' 자체는 보편적으로 인간에 적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구는 원주민 사회와 달리 이 힘의 존재를 무시하였는데, 레비 스트로스는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경향을 무시하는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합니다. 서구사회는 원주민 사회를 제압한 '힘'의 경우에 환호를 보냈지만, 이를 제압하지 못하였을 땐 크나 큰 공포와 혐오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여기서 서구사회는 공포와 혐오의 극복을 위해 이들을 단어화시키게 되었는데, 이의 예시로 UFO와 마녀사냥을 들 수 있습니다. 서구의 이성중심주의로 판단이 불가할 경우 혐오와 공포가 일게 되고, 이를 제압하거나(마녀사냥의 살육) 단어화시켜(UFO) 신비로운 프레임을 씌우고 이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기계문명이라는 덫에 걸려든 불쌍한 노획물인 아마존 삼림 속의 야만인들이여, 부드러우면서 무력한 희생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사라지게 한 운명을 이해하는 것까지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탐욕스런 대중 앞에서 사라진 그대들의 모습을 대신하는 총천연색 사진첩을 자랑스레 흔들어대는 요술, 당신들에 비해 보잘것없는 요술을 부리는 자들의 속임수에 넘어간다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다.


- 레비 스트로스는 원주민이 억압당하는 시대적 흐름은 어찌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도 서구문명의 기술적 우위와 이로 인한 서구의 패권은 불가항적인 흐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 보편적인 개인적 힘의 억압과 '단어화'는 참을 수 없으며, 이를 폭로해야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옛날 선교사들이 '야만인들의 신'이라 부르던 꿈, 그것은 마치 섬세한 수은처럼 내 손가락 사이에서 항상 미끄러져 내려가버리고는 했다. (중략) 나는 전설을 통해서 아직도 불가사의한 매력에 젖어 있는 곳, 라호르를 고른다. (중략) 그곳에서 빠져 나오니 500년 묵은 집들의 잔해를 난폭하게 가로질러 가는 넓게 뚫린 길로 통했다. 이리하여 나는 내 자신이 작은 쪼가리와 잔해들의 도움을 입어 이국정서를 복원시켜보려고 헛되이 애쓰는 여행자요, 공간의 고고학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자 교활하게도 환상이 그 덫을 짜기 시작한다. (중략) 베르니에(17세기의 여행가), 타베르니에(17세기의 여행가), 마누치(18세기의 여행가) 같은 이들 앞에 나타났던 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중략) 그러나 한 세기를 벗겨냄으로써 내 사상을 풍부하게 해주는 데 적합한 호기심과 정보를 동시에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사실을 나는 문헌자료에서 얻은 지식으로 인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중략) 결국 나는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처지에 묶여 있는 몸인 것이다. 과거를 여행하는 자가 되어 내게는 거의 전부가 이해도 안될 뿐더러 비웃음과 혐오감밖에는 못 일으킬 어마어마한 광경에 접하든가, 아니면 현대의 여행가가 되어 사라져버린 현실의 흔적을 뒤쫓아다니든가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어느 경우에나 나는 패자가 된다. (중략) 그 옛날의 경험과 마주보게 되기까지는 2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지난날 나는 의미도 모르는 채 지구 끝까지 그 경험을 추구하러 넋을 잃고 다녔던 것이다..


- 레비 스트로스는 과연 순수한 원주민의 세계를 볼 수 있었을까요? 그가 라호르라는 파키스탄의 수도에 갔을 때 그는 이미 사라진 순수한 원주민의 세계를 상상해보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는 베르니에와 타베르니에, 마누치 시대의 라호르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한 세기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라호르에 대한 호기심과 정보는 아예 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과거나 현재의 어떠한 관점으로도 순수한 원주민의 세계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이를 깨닫는데 20년이 걸렸음을 노년의 레비 스트로스는 자조섞인 말로 드러냅니다.


제 2부 여로에서 

5장은 생략했습니다

6. 나는 어떻게 하여 민족학자가 되었는가


나는 철학교수 자격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철학에 대한 어떤 진정한 소명감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라 그때까지 손대어보았던 다른 공부들과의 접촉에서 생긴 혐오감 때문이었다. (중략) 귀스타브 로드리그가 철학적인 면에서 제기한 이론은 베르그송주의와 신칸트주의를 혼합한 것이었으며, 그것은 나의 기대를 가혹하게도 저버리는 것이었다. 


- 베르그송주의는 이미지와 오마주를 합한 이마주라는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는 뇌공학에서의 기억을 예시로 들어 이해해볼 수 있는데, 데카르트 사상에 영향을 받아 베르그송주의는 기억의 좌표화를 시도합니다. 그러나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장소가 있는 것은 알겠으나 이의 좌표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관념과 실재의 두 가지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어, 정신과 물질의 중첩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볼 수 있듯 베르그송주의는 관념론과 실재론을 합쳐 이를 중첩화하려 시도했습니다. 신칸트주의도 마찬가지로 관념론에 입각했고, 레비 스트로스는 관념론적 색채가 짙은 그 당시 프랑스 철학의 흐름에 거부감을 가졌습니다. 


그 무렵에 나는 중대한 것이든 사소한 것이든 간에 모든 문제는 항상 동일한 어느 방법을 적용시킴으로써 처리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그 방법이란 우선 어떤 문제에 관한 두 가지 전통적 견해를 대치시켜놓는 것이다. 그러고는 상식으로 정당화시킨 첫번째 견해를 도입한 뒤, 두번째 견해로써 둘 다 파괴시키는 것이다.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제3의 견해를 사용하여 앞서의 두 견해가 서로 등을 돌리게 해보면, 양자가 똑같이 부분적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중략) 이러한 수련은 사고 대신에 말장난을 하는 일이며, 말에서의 문제로 그쳐버리고 만다.  


- 여기서 레비 스트로스가 직접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구조주의적 면모가 드러납니다. 그것은 불변하는 구조가 있다고 전제하는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 X축은 문화와 자연, Y축은 원초와 가공으로 대치됩니다. 보통 우리는 날것과 구운 것, 익힌 것과 쐰 것, 삶은 것과 띄운 것을 서로 대치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제 3의 견해를 도입하여 대치된 개념들의 비슷한 특징들을 증명한다면, 대치된 개념들을 상호 보충하는 개념들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것이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언어학입니다. 이러한 예시로 레비는 형식(forme)과 내용(fond), 용기(contenant)와 내용물(contenu), 존재(etre)와 외견(paraitre) 등으로 증명했습니다. 이들 개념들은 각각 대치되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언어학적으로 외양이 비슷하며, 실제로 어원도 동일한 어원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주의 언어학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으며, 자의적인 언어의 관계를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레비 스트로스도 이 비판을 인정하였습니다.


나는 인식의 진보와 정신구조의 복잡성이 증대되는 것을 혼동하는 데서 오는 심각한 위험을 알고 있다. 우리들은 가장 적합하지 못한 이론을 출발점으로 삼아 가장 정묘한 데까지 우리를 끌어올리기 위해, 역동적인 종합을 행하도록 권유받았다. (중략) 결국 문제는 진실과 허위를 발견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인간들이 점차로 모순들을 극복해나갔는가를 이해하는 데 있었다.


- 이전의 말장난을 학문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레비 스트로스에 의하면 정신구조의 복잡성을 늘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는 인식의 진보에 다다르지 못하는 방법론의 한계를 깨닫고 그 대안을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철학은 학문의 시녀(ancilla scientiarum)이 아니었으며, 의식 그 자체에 대한 일종의 심미적 관조였다. 그동안의 철학 교육은 고딕 양식이 로마네스크 양식보다 나으며, 고딕 양식에서는 플랑부아양 양식이 프리미티프 양식보다 완벽한 것이라고 가르치되,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며 무엇이 그렇지 않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자문하지 못하게 가르치는 마치 미술사 교육과 비슷한 것이었다. 시니피앙은 시니피에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고 따라서 지시대상도 없었다. 지적 기교가 진리에 대한 애호를 대신하였다.


  

- 의식 그 자체에 대한 일종의 심미적 관조가 그 대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철학은 진화론적 가치관에 매몰되어 왜 이런 의식이 발생하였는지 비판적 탐구를 하는 대신 정답을 찾으려 했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이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시대상의 존재 없이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에만 몰두한 것입니다. 시니피앙은 기호 그 자체로 언어에서의 발음 내지 문자를 가리키며, 시니피에는 그 시니피앙에 달라붙는 1차적 의미를 말합니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관계는 필연적이지 않고 자의적인 성격을 띄며,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만 있다면 인간은 구체적인 지시대상 없이 소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를 보면 이를 그림처럼 인식하는데, 이는 우리가 그 국기를 의미가 없는 시니피앙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사우디아라비아인이 이 국기를 본다면 그는 "알라외엔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신의 사도이다."라는 뜻을 인식하는데, 이것이 시니피앙에 시니피에를 달라붙어 이해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우디아라비아인은 현존하는 국기가 없어도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기에 대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며, 국기에 있는 아랍문자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뜻은 어떠한 필연적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이 필연적 관계를 갖는다면 우리도 이 관계만을 외우면 모든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일일이 언어를 외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레비 스트로스는 지금까지의 철학이 지시대상 없이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에만 몰두했으며, 실제로 자신이 체험하고 경험한 것들이 바탕이 된 철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오늘날 나는 가끔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 민족학의 연구대상인 문화의 구조와 나 자신의 사고구조의 유사성 때문에 내가 민족학에 마음을 두게 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해마다 수확을 거둘 일정한 토지를 온순하게 경작하고 있을 자질이 내게는 결여되어 있다. 나의 지능은 신석기 시대의 인간지능과 같다고 해야 할 섯이다. 


- 그는 사회구조와 개인의 구조가 일치한다는 통찰에 점차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는 그 자신과 신석기 시대의 문화의 구조가 일치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그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둘 모두 무에서 시작하고, 뼈대는 있으나 그 안을 채우는 개념이 없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그는 점점 사회구조와 개인의 구조가 일치한다는 통찰에 도달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개인이 얼굴에 그림을 그리는 패턴과 그 부락의 구조가 비슷하다는 연구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레비 스트로스가 관념론을 비판하며, 실제로 자신이 얻은 경험에 입각하여 철학을 하였다는 점, 그 경험들을 각각 배치를 다르게 하여 본질을 탐구했다는 점입니다.


  

1920년에서 1930년까지의 시기는 프랑스에 정신분석에 관한 이론이 전파된 시기였다. 그 이론을 통하여 나는 정태적 이율배반 – 그것을 중심으로 하여우리의 철학 논문, 또 뒤에는 우리의 강의(합리적인 것과비합리적인 것, 지적인 것과 정서적인 것, 논리적인 것과전논리적인 것)를 작성하도록 권고받았던 이율배반 – 이 결국은무의미한 장난 이상의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우선 합리적인 것을 넘어서 보다 더 중요하고, 보다 더 유효 범위가 넓은 한 범주가 존재하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시니피앙’의 범주로서, ‘합리적인것’의 가장 고도의 존재양식이다.


- 레비 스트로스가 영향을 받았던 정신분석학의 대표 주장은 어린 시절로 남고자 하는 태도와 어른의 태도가 중첩된다는 것으로 대표할 수 있습니다. 이 두 태도가 중첩된다는 것은 근대의 이항대립적 태도가 무의미한 장난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않는 것 등의 모든 상반된 가치들은 ‘시니피앙’을 통해서만의미를 가집니다. 어떠한 가치들도 그 겉의 기표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프로이트의 이론은 내게 그 대립이 진실한 대립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왜냐하면 겉으로 보기에 가장감정적인 듯한 행동, 즉 합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가장 먼 활동과 그리고 전논리적이라고 말해지는 표현들이사실상, 정확히 말해서 가장 의미 있는 것들이기도 한 때문이다. 나는베르그송 철학 의 신조나 부당전제 대신에 존재와 사물이 그 윤곽의 선명함을 잃지 않은 채, 그 고유의가치를 보존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인식은 포기나 물물교환에 근거를 두는 것이 아니라 ‘참된’ 양상, 다시 말해서내 사유의 속성과 부합하는 양상의 선택에 있다. 그것은 신칸트파 철학자들이 주장하듯, 나의 사고가 사물들에 대해서 어떤 불가피한 제약을 미치기 때문에서가 아니라,오히려 나의 사고가 하나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 속하는 것이면서, 나의 사고는 ‘이 세계’와동일한 성질을 띠고 있는 것이다.




- 프로이트는 의식이 무의식을 억압하고 있다 하여 무의식이 하위개념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오히려범위가 더 광대한 무의식이 더 큰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은 은유, 압축, 전치 등의 법칙이 꿈에도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레비 스트로스는프로이트의 주장을 계승하며 구조주의의 속성을 드러내는데, 그는 반대로 탈구조주의적 면모도 가지고 있습니다. 베르그송 철학을 부정하는 주장을 통해서 탈구조주의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데,관념과 실재의 경계가 불명확하다는 베르그송에 반대로 레비 스트로스는 경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이 경계가 관습적 경계와는 다를 수도 있다는 주장인데, 여기서관습적 구조를 거부하고 해체하며 새로운 구조와 범주를 세우려는 탈구조주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적 면모는 유동적 구조를 주장하며 특정한 구조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개인은 계속 새로운구조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는 신칸트학파에 대한 부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의식의 절대성을 주장하며 물자체를 부정하려했던 신칸트학파와 달리, 레비스트로스는 의식이 전부가 아니며, 사물은 의식에 의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의식이 닿지 않는 부분에 구조가 존재하고, 그 세계의 구조는 나의의식과 동일한 구조와 과정을 거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나와 같은 세대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받아들였던 그 지적 발달은, 어릴 때부터 나를 지질학 쪽으로 밀었던강한 호기심 때문에 독특한 뉘앙스를 지니고 있었다. (중략) 어떤풍경도 첫눈에 볼 때는, 우리 마음대로 무슨 의미를 붙여도 좋을 하나의 광대한 무질서처럼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농학상의 고찰이나 지리학상의 문제로 생긴 사건, 그리고 역사시대와 선사 시대의 파란곡절 따위를 초월해서 존재하는 모든 의미 중에서도 가장 엄숙한 의미는, 다른의미에 선행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관건이 되고 또한 그것들을 광범위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것일까? 과거의흔적을 따라 절벽, 낙반, 가시덤불, 경작지 같은 장애물을 뛰어넘어 울타리건 오솔길이건 개의치 않고 수천 년에 걸친 정체의 증거를 좇아 전진해 나갈때, 사람들은 시간과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이 반항은 하나의 지배적인 의미를 도로 찾아보려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다.




- 레비 스트로스가 지질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를 말해줍니다. 특정한 사례를 면밀한 관찰을통해 가치를 파악하고, 여러 사례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지배적인 의미를 찾는 지질학은 그에게 강렬하게다가왔습니다.




내가 처음으로프로이트의 이론들에 접했을 때, 그 이론들이 마치 지질학이 그 규범을 나타냈던 방법을 개개의 인간에게적용시킨 것 같다는 생각이 매우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중략) 그런데현상의 총체 속에서 야기되는 질서가 첫 눈에는 지리멸렬해 보이지만, 우발적인 것도 아니며 독단적인 것도아니다. 사실상 ‘움직이는 격언’의 역할이란, 하나하나의 동작을 시간을 초월한 ‘진실’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의 전개로 해석하려는, 어떤 시도의 소박한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략) 이 모든 경우에서 심미적 호기심의 독촉은 인식에 도달하는 것을 문제없이 가능하게 해준다.




- 레비 스트로스가 프로이트의 이론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도 지질학의 이유와 동일합니다. 특히그가 심미적 호기심의 독촉을 통해서 인식에 도달하게 되었다는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면밀한 관찰과 구조를드러내는 행동의 기저에 이러한 심미적 호기심이 존재한다는 것이 삶의 태도의 측면에서 와닿았습니다.




나는 열일곱살 때, 휴가 중 알게 된 한 젊은 벨기에인 사회주의자를 통해 처음으로 마르크스주의에 접하게 되었다. 마르크스의 책을 읽는 것이 내 마음을 무척이나 사로잡았기에, 나는그 위대한 사상을 통해 칸트로부터 헤겔에 이르는 철학의 조류에 처음으로 접촉하게 되었다. (중략) 루소에 이어 결정적으로 보이는 형태로 마르크스가 내게 가르쳐주었던 것은, 물리학이감각의 여건에서부터 출발하여 체계를 세운 것이 아닌 것처럼 사회과학도 사건들을 기반으로 하여 성립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사회과학의 목적은 하나의 모델을 설정하여 그것의 특성과 그것이 실험실에서의 테스트에 반응하는 갖가지 방식을검토한 후, 이어서 그 관찰 결과를 경험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해석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실재의 한 다른 차원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지질학 및 정신분석학과동일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 같이 내게는 보였다. 그 세 가지를 다 이해한다는 것은 실재의 한 형태를다른 한 형태로 환원시키는 것이며, 진정한 실재란 것이 결코 가장 명료한 것은 아니며, 진실의 본성은 이미 그것이 우리의 탐색을 회피하려는 배려 속에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그가 마지막으로 지질학, 프로이트의 이론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여 관심을 가진 이론은 마르크스주의입니다. 인간의 감각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힘이 물리학에서 존재하듯 사회과학에서도 개인의 의식이 완전성을 갖지 못하며, 구조가 이를 보충해줍니다. 결국 지질학과 프로이트, 마르크스주의를 정리하자면 1. 실재의 한 형태를 다른 한 형태로환원 2. 진정한 실재란 것이 가장 명료한 것은 아님 3. 진실의본성은 이미 그것이 우리의 탐색을 회피하려는 배려 속에 드러남의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결국내적인 구조와 동기, 하나의 목적이 진정한 실재이며 피상적인 해석을 통해선 결코 이에 도달할 수 없다는것이 이들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나의세 스승인 이들 지질학,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체험과실재 사이의 통로는 불연속인 것이며, 실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든 감상적인 것을 벗어난 객관적인 총합속에서 후에 되찾을 각오를 하고, 우선 체험을 거부해야만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실존주의 속에서 꽃피려 하던 사상의 동향으로 말하자면, 그것이 주관성의환영에 대해 나타내는 호의적인 태도 때문에 내게는 정당한 사고와는 반대되는 것으로 보였다. (중략) 즉 교육상 필요한 수단이라는 명목으로 용인될 수 있다 하더라도 과학이 철학의 뒤를 이을 만큼 강력해질 대까지, 철학에 부과된 사명 – 존재를 나와의 관계가 아닌 존재 자신과의관계에서 이해하려는 – 을 저버리는 것이 허락된다면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 지질학과 정신분석학,마르크스주의는 레비 스트로스에 따르면 주관적 체험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체험을 구조가 보완한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레비 스트로스가 주관적 체험을 곧바로 실재로 연관시키려는 현상학과 실존주의의 관점에 동의하지 못한 것도이해가 갑니다. 주관성의 환영이라는 말은 후설이 주장한 개념으로 개인의 의식에서 자의적 확신을 행함을말합니다. 이는 개인의 감각이 불확실할 수도 있으나 자의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게 되면 잘못된선입관이 생기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레비 스트로스가 생각한 철학의 사명(존재를 나와의 관계가 아닌 존재 자신과의 관계에서 이해)는 개인의입장을 절대지로 설정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이에 따르면 변증법을 통해서 정반합적으로 절대정신에도달한다고 주장하는 헤겔의 게르만 우월주의도 비판대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헤겔은 끊임없는변증법을 통해 절대적 이성의 단계에 도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따르면 감각의 단계에 머무른 아프리카와그 다음 단계로 이행하였으나 자유를 가지지 못한 아시아는 인간성을 오롯이 소유하지 못해 하등한 인간으로 인식될 가능성을 가집니다.




민족학은나에게 지적 만족을 가져다 준다. 세계의 역사와 나의 역사라는 양극을 결합시켜, 인류와 나 사이에 공통되는 근거를 동시에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민족학은나로 하여금 인간을 연구하도록 함으로써 나의 회의를 덜어주었다. 어떤 한 문명에만 적합하여서 만일 그문명 바깥으로 나가게 되면 자기 붕괴를 일으키고 말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인간들에게 관련되는 변화와차이를 민족학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내가 경의를표하는 것은 하나의 역사적 전통이지 어떤 지적 전통이 아니다. 한 번도 진지한 의도를 지닌 조사의 손이미치지 않았기에 충분하게 보존이 잘되어 있던 민족에게, 그들에 대한 파괴가 시도된 지 얼마 안되었던덕택에 접근할 수 있었던 특권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다음과 같은 일화가 그 사실을 잘 이해하게 해주리라. 그것은 아직도 야생 상태로 살고 있던 캘리포니아 인디언들을 몰살시켰을 때, 기적적으로살아 남았던 한 인디언 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여러 해 동안은 대도시 주변에서 남의 눈에 띄지 않은채, 돌로 만든 화살촉을 갈아 사냥을 해가며 살았다. 하지만사냥감은 차차 사라져갔고 벌거벗은 몸으로 굶주림에 지쳐 죽어가던 그 인디언은, 어느 날 도시 변두리의한 마을 입구에서 발견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캘리포니아 대학의 수위로서 그의 여생을 평화로이 마쳤다.




- 의식과 구조 중 어느 하나의 절대성도 인정하지 않는 레비 스트로스는 항상 세계와 나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세계의 역사와 나의 역사를 합하여 특정한 사례를 통해 보편적 구조를 드러내는 민족학이 그 딜레마에어느 정도 답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구 문명의 발달은 민족학에도 거부할 수 없는운명을 가져다줍니다. 서구 문명의 확산은 원주민들의 문명을 파괴하였으나, 그렇다고 서구 문명의 확산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민족학은원주민들의 기존 삶의 방식과 태도를 지켜줄 수도 없고, 다시 이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수도 없이 이들을관찰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 3부 신세계


8. 농무지역(적도 무풍대)


농무지역은바람이 매우 미미한 지역으로, 구세계와 신세계의 사이에 위치한 제 3의공간입니다. 현대엔 비행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제 3의 공간을인지할 수 없어 이들을 부정하지만, 콜럼버스 대의 탐험가들은 이 제3지대를 거쳐가며 하늘과 바다의 중첩을 경험하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레비 스트로스도 배를타고 가며 하늘과 바다가 배의 흔들림과 함께 중첩되는 경험을 하였고, 이 때 사상적 공포를 경험했다고합니다.




이제 특권을가진 자만이 그곳으로 갈 수 있게 됨에 따라서, 남아메리카는 단지 ‘귀중한물구덩이’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며, 그 모습도 변하고 그본성도 영원한 것으로부터 역사적인 것으로, 그리고 형이상학적인 것으로부터 사회학적인 것으로 변해버렸다.




- 레비 스트로스가 브라질로 향하던 때에 이미 남아메리카는 기준점으로의 가치는 있으나, 더 이상발전이 없이 썩어가는 존재로 전락해버렸습니다.




농무지대의매연색 하늘과 암울한 공기는 구세계와 신세계가 처음으로 상면하게 되는 심적 상태를 요약해주고 있다. 이음울한 경계지역은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두 행성 간에 존재하는 최후의 방책이었다. (중략) 두번째의 실낙원을 통해 모든 것이 – 예컨대 신, 도덕성, 법 – 의문시되어버렸다. 구제, 습속,법에 대해 유럽인들이 지니고 있던 기존의 개념들을 의혹시하게 하였다.




- 농무지대에 들어서며 신세계에 도달한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습니다. 여기서 레비 스트로스는콜럼버스대의 탐험가들이 어떠한 느낌을 가졌는지 되돌아가봅니다. 구세계의 보편은 신세계를 만나며 위협받았습니다. 서로 누가 더 무의미하고 많이 재산을 소비하는지 경쟁하는 포틀래치와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자학 등을 통해 신세계가얼마나 서구사회와 달랐는지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서구사회는 신세계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들을 공포와 혐오의 대상으로 바라봅니다. 그들이 대규모로 남아메리카에선교사를 파견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원주민들의 본성적 가치는 그들에게 선교의 대상이 되었고,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결국 서구사회를 반성할 기회도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한 예시는 후에 등장합니다.




식민자들이평가하기에는 원주민들이 ‘카스티야 농민들처럼 그들 자신의 사회를 유지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식민자들의 대답은 모두가 부정적이었다. “원주민들의 손자 대에 가서나 자립생활이 가능할지 몰라도, 현재의원주민들은 악덕에 깊이 물들어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 증거로 그들은 에스파냐 사람들을 회피하려고하며, 보수 없이 일하기를 거부하지만 때로는 그들 자신의 소유물들을 남에게 모두 주어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의 귀를 잘라버렸을 때에도 그들은 그 친구들을 버리는 법이 없다.”




- 서구사회가 원주민들을 이해하지 못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즉 백인들은사회과학에, 원주민들은 자연과학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리고백인들은 원주민들이 동물이기를 바랐지만, 원주민들은 백인들이 신들은 아닐 거라고 의심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양편이 모두 마찬가지로 무지했으나, 그래도 원주민들 생각이 보다인간적인 가치를 지녔다.




- 서구사회와 원주민들 모두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서구사회는 원주민들을 하등한 존재로 본반면, 원주민들은 서구사회가 단지 자신보다 상위의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원주민들의 관점이 그나마 더 낫다고 말하지만, 사실여기서 원주민들의 관점도 결국 이분법적 사고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작가의 이전글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 슬픈 열대, 2주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