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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raiano Mar 24. 2019

게임에 대한 짧은 단상

걷고 싶은 길

 게임 업계에 가고 싶다는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말한다. 그럴 경우 나에 대해 몇 번 만나지 못했거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구체적으로 게임 업계에 가고 싶어하는지 되묻고는 한다. 보통 단순히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가고 싶다는 대답을 하지만, 이러한 대답도 불충분하다. 왜 게임을 매우 좋아하는지,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어떠한 경험을 통해서 결론을 도출했는지 등, 더 깊고 추가적으로 물어볼 질문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심이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좋아하기 때문에 간다는 대답으로 만족하곤 한다. 굳이 관심을 더 쏟을 필요도 없고, 더 물어볼 질문이 생각나지 않을 수 있기에 이에 대한 불만도 아쉬움도 없다. 그렇기에 손이 안으로 굽듯이, 왜 그렇게 생각하였는지 더 질문을 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당신들에게 항상 감사하다. 그들을 간직하고 싶은 사람으로 영원히 남겨두고 싶다. 


 그렇다면 왜 게임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는지, 왜 이를 만드는 길을 가고 싶은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할 수 있다. 왜 이를 남겨두고 바람처럼 스치우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일까. 사실 타인에 대한 생각에서 출발한 글은 아니다. 그저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나 스스로에게 접근하기 쉽고, 앞으로 기억하고 싶은 자취와 사유를 기록하고 싶기 때문이다. 점점 현실적인 고민이 깊어지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생각한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느낄 때 나를 다시 반추하는 횃불을 남기고 싶다. 스스로 설정한 한계를 마주했을 때 이를 이겨내는 사다리를 남기고 싶다. 훗날 모든 횃불과 사다리가 필요 없어지고 스스로를 정립했을 때 웃으며 이 글을 지우고 싶다.


 초등학생, 어쩌면 한참 더 어릴 유치원생 이었을 적 아버지가 사오신 플레이스테이션 2는 꼬마에게 충격을 주었다. 조악한 졸라맨들이 어울리는 플래시 게임 말고도, 정말 완성도있는 게임들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마블 vs 캡콤'이나 '툼 레이더', '레이맨' 등 처음 보는, 다시 만나지 못할 가상 세계들은 정말 아름다웠다. 마법이 나오거나, 새로운 직업을 탐구하는 등 모든 행동들은 나에게 새로웠고, 사람들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에 감탄을 주었다. 어렸을 적의 나는 게임이 정말 재미있었다.


 그러나 이 때 느낀 게임의 매력은 단순히 새로움이었다. 현실에 없는 콘텐츠를 볼 수 있음은 나를 게임기 앞으로 데려다 놓기에 충분했지만, 게임 외에도 이러한 경험을 줄 수 있는 콘텐츠는 매우 많았다. 초등학생의 내가 며칠을 몰두했던 '해리포터'나 디즈니 영화 등, 책과 영화, 음악, 만화들도 게임과 마찬가지의 경험을 줄 수 있었다. 단지 앞으로도 게임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 다른 감상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이 때 내가 게임을 하던 이유는 단순한 재미였다. 원초적 유희를 만족시키기 위해 게임을 골랐는데, 그렇다면 이를 모두 해소하였다면 게임을 더 할 이유는 없다. 게임을 하다보면 재미가 없던 적도 많았다. 그럴 경우 게임 말고 책이나 친구를 만나면 되었다. 물론 이 때도 다른 컨텐츠에 비해 게임이 더 매력적이라고 느끼긴 했었다. 하지만 소회해보면 이는 규모의 문제였는데, 게임이 주는 매력이 더 컸을뿐이지, 차별화되는 점은 없었다. 초등학생이 불법 복제판으로 '창세기전'을 하면서 느꼈던 감상은 몬스터를 잡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경험이 책을 읽으며 받은 느낌보다 더 벅찼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감상은 크게 고등학생이었을 적까지 유지되었다.


 따라서 고등학교까지 나에게 게임은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기제는 아니었다. 고등학교가 기숙사여서 친구들과 몰래 플레이스테이션을 가져와 매일 밤새 게임을 하곤 했으나, 그래도 게임은 내게 여타 여가생활과 다를게 없었다. 거기다 1년동안의 재수생활을 거치고 나니 게임은 내 인생에서 일부 멀어져 있었다. 


 여기서 갑자기 큰 변화가 일어난 계기는 대학생활 이후이다. 고등학교때 즐겼던 게임이 기억나 다시 해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스토어에 들어가 어렴풋한 기억을 뒤적거리며 이름을 생각하던 중, 꽤 재미있어보이는 게임을 발견했다. 모두가 아는 배트맨이 나와있는 게임 '배트맨 아캄시티'였다. 영화에서 보던 액션들을 해볼 수 있다는 생각에 구입하였고, 이러한 생각을 완벽히 만족시켜주는 게임이었다. 그러나 이 게임에 푹 빠졌던 계기는 게임의 스토리와 그 다양성이었다. 자신의 이상인 '완벽한 고담시티'를 이루기 위해 그는 그간의 지위와 재물, 자기 자신을 바쳐 직접 싸운다. 범죄가 자행되고 어둡기 그지없는 그곳을 위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거듭한다. 시민의 무지와 범죄자들의 조롱, 끝없는 이들의 연속에 고뇌하나 결국 일련의 사건들을 해결하며 그는 모든 것을 품는 다크나이트로 나아간다. 이 모든 것을 40여시간의 긴 호흡을 두어 직접 플레이한 경험은 책, 영화, 음악 등 어떠한 컨텐츠보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그의 입장에서 같이 심사숙고하고, 비판하는 관점을 줄 수 있었다. 게임을 끝난 이후 난 새로운 경험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겪을 수 있었다. 


 게임이 나에게 주었던 또다른 선물은 상호작용이라는 점이었다. '배트맨'을 이후로 새로운 인생과 서사시를 직접 경험한다는 점은 나를 게임에 몰두하게 해주었다. 그러던 중 아직까지 인생게임이라 말할 수 있는 '어쌔신크리드' 시리즈와 '파이널판타지' 시리즈를 만나게 되었다. 게임은 컨텐츠 중 유일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다른 컨텐츠는 정해진 흐름이 있다. 나는 이들에게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개별적인 감상을 가질 수 있었지만, 하나의 경험만을 가진다는 점은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게임은 내가 직접 경험을 선택할 수 있었다. 내가 내리는 모든 선택은 이후의 전개와 흐름을 바꾼다. 나는 그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 새로운 인생과 서사시를 써나가야 한다. '어쌔신 크리드'에서 나는 피렌체와 로마의 첨탑 위에서 도시를 바라볼 수 있었고,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 이를 극복하고 일어나는 이야기를 써내릴 수 있었다. 그 모든 경험은 내가 스스로 만들고 받아들이는 특별한 컨텐츠였다. '파이널 판타지'에서 나는 멸망한 시간 위에서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고, 나 스스로의 독자성과 자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 또한 나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컨텐츠였고, 이는 게임의 상호작용이 모든 사람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강력한 요소라고 굳게 믿는다. 


 재미와 스토리, 그리고 상호작용을 통해 나는 게임에게서 그동안 더할나위 없이 많은 경험을 겪을 수 있었다. 아직도 게임을 처음 실행할 때 어떤 경험이 펼쳐질지 항상 설렌다. 그리고 단순히 게임을 유흥으로 치부하거나, 게이머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회와 사람들이 아쉽다. 그들이 책과 영화를 보듯, 게임에서 오히려 더 크고 감사한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의 특성은 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요소라고 믿는다. 앞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단지 그때 좀 더 내가 받았던 이 경험들을 그들도 같이 느껴볼 수 있길 바라며, 최고의 게임을 만들고 싶다. 치기어린 생각이 훗날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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