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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선 May 04. 2023

삶보다 가치 있는 죽음

우울증 수기 2

이 전 글에 이어 우울증 수기를 공유한다. 

한 10개 정도 써두었는데, 어디까지 올릴지는 모르겠다. 자체 검열을 해야 하는 부분들이 좀 있어서, 하하.

혹시라도, 정도가 어떻게 됐든 우울증 증세를 가지고 계신 분이 지금 이걸 읽고 계시다면, 이 한 마디만 말씀드리고 싶다.

영원한 건 없답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요. 지금 겪고 계신 상황이 영원할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당신이 앓고 있는 우울증도,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을 걸로 보이는 우울증도 다 지나갑니다. 절 믿으세요.


그럼 아래부터 수기로 이어집니다.



어떤 생명은 태어나기도 전에 죽는다.

태어나자마자 죽는 불행도 많다.

거대한 가능성이 피어나기도 전에 소멸한 것이다.

그게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30여 년 살았으면 축복받은 거다. 

그래도 나는 내 가능성이 가장 빛났던 시절을 가졌지 않나.

비록 그 시절이 내가 원하는 곳으로 이끌지는 못했지만 그 기회를 가졌던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충분히 살았다.


내가 이 생에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바랄 수 있다면,

그것은 명예롭고 멋지게 죽는 것이다.

삶보다 죽음이 가치 있으려면 어떤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

어떤 죽음이 내가 앞으로 더 살아가는 것보다 가치 있을까?


조커 가면을 쓴 사람을 보고 미소 짓는 조커

조커의 경우를 보면 어떠한 가치를 전파하기 위한 기폭제가 됨으로써 자신의 무가치한 삶을 연명하는 것보다 지금 죽는 게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픽션이긴 하지만.


왼쪽 위부터 차례대로 안중근 의사, 나이팅게일, 닥터 엘리엇, 마거릿 히긴스, 유관순 열사, 이태석 신부, 슈바이처, 마리 콜빈

논픽션에서도 명예롭고 가치 있는 죽음은 충분히 많은 선례가 있다. 조국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았던 군인들, 열사와 의사들, 전쟁의 참혹함과 부조리함을 알리기 위해 화포 속으로 뛰어든 종군 기자들, 열악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닥터들. 내 부족한 상상력이 미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선례가 있을 것이다.


허나 지금의 내게는 그런 것들이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왜냐면 그분들은 의미 있는 죽음을 원했다기보다는,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어떤 가치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다가 유명을 달리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투쟁 없이 명예로운 죽음만 취하고 자하는 나 같은 속물 하고는 본질부터가 다르다.

내겐 그런 특별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기력도, 의지도 없다.


기꺼이 5명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죽을 수 있다.

철학계에는 도덕적 딜레마를 설명하기 위한 유명한 가정이 있다.

Trolley Problem, 철로를 이탈한 전차 문제.

나는 요새 그 가정이 내 현실에 일어나면 좋을 것 같다는 망상을 하곤 한다.

내가 홀로 있는 한 명의 인부가 돼서 말이다.

그럼 내가 죽는 대신에 몇몇의 사람을 살릴 수 있어 좋을 텐데,

그런 죽음이라면 기꺼이 내 삶을 당장 놓을 수 있을 텐데,

꼭 여려 명이 아니더라도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내 목숨과 바꿔서 살릴 수 있으면,

가치 있는 죽음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의 내겐 불가능하다.

대인기피증으로 집 밖에 나가기도 힘든데?

도랑에 나갈 수 있어야, 도랑을 치든 가재를 잡든 할 것 아닌가.

그냥 자다 문득 정신이 들었는데 그 상황에 처해있다면 좋을 것 같다.

그럼 편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애석하게도 죽음에도 노오력이 필요하다.

노력에는 의지가 필요하고.

의지에는 욕망이 필요하다.

하지만 내겐 여름날 갈변한 사과 껍질 주위를 날아다니는 날팔이보다도 삶의 의지가 없다.

나는 죽고 싶은 욕망조차도 없다.

죽어도 좋겠다고, 그조차도 극한의 무기력을 발휘하여 타성에 호소하고 있다.

생명체의 본능에 있어서 이 순간 나는 날팔이 보다도 못한 존재다.


고흐는 말했다.

봄에 딸기를 먹는 일도 인생의 일부이긴 하지만 그건 1년 가운데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고,

지금은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봄에 딸기를 내 주제 것 충분히 먹었으면

나머지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란 먼 길을 꼭 살아내야 할 필요가 있냐고.

사실 나는 내 인생의 여름까지도 살았다고 생각한다. 

이제 가을과 겨울이 남았는데, 그게 지나온 나날들과 크게 다를까 싶다.


소년만화 같은 데서 보면 종종 잃을 게 없는 사람은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유명한 레토릭이 나온다.

중년인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인생이 줄 수 있는 경험들을 대강 한 둘레 겪어본 상태에서 지킬 가치도, 지킬 관계도, 그 무엇에도 책임이 없어진 상태가 되면 안다.

결국에 내가 살아가는 이유와 힘이 되어주었던 것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었음을.

어느 시점부터는 달콤함만으로는 인생을 지탱하기 어려워진다. 이미 아는 맛이기 때문이다.

아니, 지탱할 필요가 없게 되어버린다는 게 맞는 표현 같다.

고흐의 말처럼, 그것은 긴 인생 가운데 찰나의 시간일 뿐이니까.

그래서 잃을 게 없는 사람은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지키고자 하는 욕망도, 그것을 잃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기 때문에 쉽게 수용하고, 쉽게 포기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잃을 게 없어서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는 사람은, 사실 잃을 게 있는 것이다.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강해지고 싶게 만드는 무언가가.

그 삶에 대한 의지가, 어릴 적에는 덕으로만 보였던 인생에 있어서의 초연함이 요새는 사뭇 다르게 보인다.


내가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핑계로 회피한 책임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몇 가지가 있지만, 특히 생명과 관련된 두 가지가 눈에 띈다.

하나는 사랑했던 사람과의 결혼을 회피한 것,

다른 하나는 키우고 싶었던 고양이를 결국 키우지 않은 것.

그 둘 중 하나라도 받아들였더라면 내가 이 지경까지는 안되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밥 줄 고양이라도 있었으면 이 모양 이 꼴로 망가져있지는 않지 않았을까.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은 지나간 세월을, 과거의 기억들을 자주 떠올린다고 한다.

특히 불면증 때문에 잘 수 없는 밤에 침대에 누워있으면 이전에는 잘 떠올리지도 못했던 지나간 일들이 경우에 따라선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이 되살아 나곤 한다.

몇몇 심리학자나 정신분석학자들에 의하면 이건 퇴행의 증상이라고 한다.

현재를 살아 미래로 향해야 하는 에너지가 제대로 쓰이고 있지 못해서 과거로 향하는 것이라고. 

일리가 있다. 나는 총체적으로 퇴보하는 삶을 살고 있다. 

육체도, 정신도, 꿈도, 의지도, 잔고도.

과거를 위한 미래는 없다.

쓰고 싶었던 이야기의 제목인데, 내가 이걸 쓰고 죽을 수 있을까?


최초의 기억,

그러니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부터 내가 이 우울증에 빠지기 직전까지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하루, 

이틀, 

나흘,

이어서 그 많은 잠 못 이루는 밤 동안 회상했다.


내 최초의 기억에는 형과 어머니가 나온다.

형이 어딘가 아팠는지 셋이서 병원을 갔다가 나오는 장면부터가 생각난다.

병원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갈색 건물에, 2층인가 3층에 있었고, 

건물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데 형의 귀에서 피가 나와서, 

거즈였는지 휴지였는지에 피가 묻어있는 이미지까지가 기억난다.

사실 이건 이미 오래전에 발굴해 낸 기억으로 이번에 더 오래된 기억을 찾아내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재밌는 사실은, 엄마가 내가 이 일을 기억한다는 것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3살 즈음 됐을 때의 일인데 기억할리가 없다며, 아마도 나중에 들은 이야기를 재구성해서 기억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게 아니냐고.

하지만 내가 엄마에게 그 건물의 생김새며, 병원 현관에서 느낀 분위기며, 형의 귀에서 피가난 상황의 이미지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나서야 내 기억으로 인정을 받았다. 두 번째로 오래된 기억이 꽤 나중인 것을 보면, 아마도 그때 형의 귀에서 피가 나는 장면이 퍽 인상적이었나 보다.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형에게 전화가 왔다. 

별 얘기하지 않았는데 눈물이 터져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목소리가 좀 떨렸는데 형이 눈치챘을까 봐 쪽팔렸다.

통화를 마치고 한 동안을 그 자세 그대로 누워있었다.

어머니를 납골당에 안치한 날이 떠올랐다.

내 생에 눈물을 가장 많이 흘린 날이다.

장례식 3일 내내, 심지어 어머니의 염을 위해 싸늘한 주검을 만진 순간에도 담담했는데,

납골당에서 친척과 가족들을 모두 먼저 내보내고 마지막에 홀로 나오려는데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이상했다.

그런 울음은 처음이었다.

울음이라고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울음소리도 나오지 않고 호흡도 그대로였는데,

눈물만 정말 장대비처럼 떨어졌다.

나는 아직도 그 냄새를 기억한다.

어머니를 둘러싸고 있는 죽음의 냄새를 애써 무마하고 있는 싸구려 화장품 냄새를.

엄마가 보고 싶다.


밖에 나갈 수 있게 되면 장기 기증 희망 등록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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