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가 사우스뱅크에 가려면 15분 정도 걸으면 된다고 하였어. 거기서 놀다가 뉴팜공원으로 갈 거라고 하는 거야. 나는 사우스뱅크를 은행으로 알아듣고 "더워서 은행에서 노나?" 하니까 애나는 깔깔깔 웃으면서 공원이라는 말에 나도 웃음을 참지 못했지.ㅎㅎㅎ.
아무튼 여행은 늘 새로움과 설렘을 선물하는 거 같아.
누가 나를 알아보는 이 없는 곳에서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여기가 신기하네 저기가 재미있네 하면서 촌스럽게 낯선 곳의 신기함에 연신 폰 셔터를 눌러 댔지. 하물며 지하에 전깃줄 매립 표시의 네모난 맨홀 뚜껑들도 재미있더라니까. 많이 닳은 거, 적게 닳은 거나 혹은 아주 최신 거. 아니면 닳아 없을 질 듯한 거라든지. 그런 표식들이 나에게는 굉장한 흥미거리로 느껴졌어. 신호등이 있는 길을 걸을 땐 버튼을 누르면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고 '뚜뚜뚜'하면서 하얀 불이 켜지고 카운트를 하는데 꼭 "빨리빨리 건너"하는 거 같았어. 신호가 없는 작은 도로를 건너려고 기다리면 오던 차가 멈추고 우리가 건너가길 기다리는 거야. 우리나라에는 사람이 우선이라고 하면서 차가 먼저 가는 곳인데 비해 여기는 진짜 사람이 우선이더라. 이런 당연함을 신기해하면서.
몇 년 전에 애나와 애나의 남자친구랑 우리 동네 야산을 트레킹 한 적이 있었어. 그 동네에는 10년을 살았지만 처음으로 가는 길에 보라색 할미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지. 내가 신기해하면서 한참을 걷는데 하얀 할미꽃이 보이는 거야. 그래서 또 신기해했지. 얼마가지 않아서 보랏빛 할미꽃이 또 있겠지. 그 꽃을 볼 때마다 처음 본 것처럼 신기해하는 나를 보고 애들이 웃겨 죽는 줄 알았대.
그렇게 웃겼거나 바보였거나 간에 나에게는 아직도 배 12척이 아니라, 아이 같은 호기심이 남아있는 것에 스스로 찬탄하기로. (장군님 죄송하고 죄송합니다. 곤장 30대는 맞아 죽습니다. 저는 10대로도 맞겠습니다. 저같은 겁쟁이 엄살쟁이는 그 매로도 6개월 이상은 입원해야 합니다).
사우스뱅크 공원 입구를 들어서자 완전 다른 세상이 펼쳐졌어. 숲 속에 짙은 분홍빛의 부겐빌레아로 덮인 둥근 터널이 길게 이어진 길을 걷는데 마치 꽃에 둘러싸인 느낌이었어. 다양한 종류의 크고 작은 나무들과 꽃이 어우러진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곳이랄까. 산책길을 걷는데 가끔씩 나와 반기는 도마뱀들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어. ㅎㅎ.
또 어딘가에선 블랙과 붉은색의 멋진 조화를 이룬 새가 여기저기서 어슬렁거리며 다니고 있어서 물어보니 터어키새 라고 하는데 내가 알던 칠면조와는 다른 종류인 거 같았어.
부겐빌레아 꽃 터널-주인공을 잘라내니 짧은 꽃 터널이 되었음
사우스뱅크(South Bank 브리즈번 강의 남쪽 제방에 위치해 있어서 그렇게 불린다네)는 브리즈번 강을 사이에 두고 사우스뱅크와 시티로 나눠지고, Expo 88를 계기로 재개발되어 문화, 예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네. 사우스뱅크 공원 주변에는 박물관, 미술관, 퍼포먼스 공연장, 대관람차도 있고 레스토랑,카페 등 다양한 시설이 있어서 지역민 뿐만 아니라 관광객의 여행코스이기도 하고.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이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하는 것을 보니 참 건강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곳이기도 해.
카페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멋진 분들도 많이 보이고 젊은이나 아이들까지 음료나 음식을 먹기도 하고 공원 주변의 벤치나 잔디밭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거나 책을 읽기도 하는 모습이 평화롭게 보이더라.
심지어 잔디밭에 드러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우리는 "쯔쯔가무시"하며 서로 보며 웃었어.
아이들을 위한 천국이라는 할 만큼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놀이시설의 종류가 있었고.
스트릿 비치라는 인공해변에는 골드코스트에서 가져왔다는 희고 깨끗한 모래는 빛을 받아 부드러웠고 야자수와 나무로 된 썬베드에 사람둘이 누워 있었어. 모래밭에서 노는 어른과 아이들. 어른들은 깊은 물에서 수영을 하고 아이들은 깊이가 얕은 곳이나 아동을 위한 시설을 해놓은 물 놀이터나 분수에서 물맞이 하면서 놀고 있어. 조금 더운 느낌이 드는 날씨라 그런지 햇빛아래 물놀이는 더 시원해 보이더라.
수영복을 챙기자는 애나의 말에 "어어 아니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는데 물을 보니 들어가고 싶더라.
강변에다 인공해변을 조성해 놓고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모습이 부럽기까지.
공원에는 야자수를 비롯한 크고 작은 다양한 식물과 연못이 여기저기 조성되어 수생식물들까지. 한마디로 사람을 위한 참 좋은 놀이공원, 생태공원인 거 같았어.
공원에는 중간중간 바비큐를 해 먹을 수 있는 무료시설이 있고 이용후에는 깨끗하게 치우고 가면 된다고.
날이 더워지면 사람들은 사우스뱅크 공원에 나와 쉼을 즐기고 밤이 되면 시티 쪽 빌딩의 야경 불빛이 빚어내는 특별한 풍경을 보면서 여름밤을 보낸다고 하네.
우리도 사람들이 많은 한 카페에 앉아 롱블랙을 시켜 먹고 있는데 '아이비스'라는 새가 사람 가까이에 겁도 없이 기웃거리네.
아이비스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흰색의 깃털과 휘어진 긴 부리와 다리는 검은색의 조화로 우아한 듯 보이지만 쓰레기 새(Bin chicken)라고도 불린다네.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먹거나 탁자 위에 올라가서 가끔 뺏어먹기도 하고, 먹이를 찾아 사람들 주변 쓰레기통까지 뒤진다고 해. 살기 위한 동물들의 생태환경의 변화를 눈앞에서 보게 되니 애닯다는 생각이 드는거 있지.
우리는 브리즈번의 봄꽃인 자카란다를 보기 위해 뉴팜 공원을 가기 위해 페리인 시티캣을 탔어.
강 건너편 시티 쪽의 높은 건물들을 보면서 스토리브릿지라는 다리 아래 강줄기를 따라가면서 강변을 구경하였어. 몇 군데의 경유지를 거쳐서 뉴팜 공원 근처의 선착장에서 내렸어. 선착장 주변이나 배의 상태나 시설물들이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어 운행되고 있는 거 같다고 했더니, 홍수 후에 새로 정비된 거라고 애나가 말을 해주었어.
공원길을 따라 올라가니 자카란다 보라색 꽃들이 그야말로 만발한 나무들이 많은 공원이 나왔어. 나무 아래에는 초롱꽃 모양의 보랏빛 꽃잎들이 흐드러지게 떨어져 있었는데, 지는 중이어도 벚꽃처럼 비바람 한 번에 흩어지는 얇은 꽃잎이 아니더라. 자카란다는 그들만의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는데 남반구의 봄인 10월과 11월에 피는 꽃이란다. 공원에는 자카란다 나무뿐만 아니라 아주 다양한 고목들이 멋지게 펼쳐져 있고 키 큰 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누가 누가 잘하나 하고 쭉쭉이를 하는 것 같더라니까.
아까 사우스뱅크 공원에서 보았던 크고 작은 바오밥 나무들을 여기서도 만났지. 아주 큰 바오밥 나무를 올려다보면서 어린 왕자를 떠올려보기도 하고 말이야.
공원이 넓어서 그런지 아주 많은 차들이 주차해 놓은 거 같은데 사람들은 띄엄띄엄, 바베큐장 주변에 모여서 파티를 하려는 것도 같고. 다른 한 곳에는 큰 나무 옆에 스테이지가 있는데 큰 앰프를 설치하고 음악을 하려는지 모여 있기도 하고.
오래된 건물(나중에 알게 된 파워하우스)을 지나는데 무슨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듯 보였어. 아까 사우스뱅크에서 본 전단지의 얼굴이 오늘 여기서 하는 행사 중의 가수였나 봐. 입구에서는 바자회를 준비하는지 궁금했지만 오래간만에 많이 걸어서 발이 슬슬 아프기 시작하였어.
애나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하였어.
배를 타기 위해 걷는데 강변에서는 우리가 탄 시티캣이나 무료이용 가능한 키티(거의 대중교통에 가까운)와 좀 멀리 갔다 오는 유람선도 지나다니고 있었어. 신기했던 풍경은 조정 연습을 선수들이 탄 배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유유히 지나는 모습을 보았어. 어린아이 때부터 저렇게 연습을 하는데 나중에는 실력 있는 선수로 키워지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어.
조정 연습하는 어린이들. 어릴 때부터 선수로 육성시킨다고 함
시티캣을 타고 시티 쪽에서 내려서 굿윌브릿지(Goodwill Bridge)를 건넜어. 저녁놀이 넘어가고 있고 강 양쪽의 빌딩들에서는 하나둘씩 켜지는 불빛은 강물에 일렁이기 시작하고, 우리가 건너는 이 다리는 차량은 안되고 사람만 건널 수 있다고 하네. 역시나 뛰거나 자전거나 보드를 타거나 우리처럼 걷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어.
오늘 집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마주치는 다양한 사람들의 여름 옷차림을 보고 속으로 깜짝깜짝 놀랐어.
거의 벗다시피 하거나 요가교실에서나 마주칠 법한 옷차림을 보고 그 누구도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이 없는 거 같았어(나는 속으로만 놀라고 눈을 어디다 둘지 몰랐거든).
그러나 공연을 다녀오는 사람들의 드레스코드는 그게 아니었어.
공무원이나 직장에서 정해진 옷을 입는 게 아니라면 어떤 차림의 출근복도 가능하다고 하였어.
하지만 축제일이나 공연장 혹은 파티나 괜찮은 레스토랑을 갈 때 드레스코드에 맞춰 화려한 드레스를 입기도하더라. 길가에서 한눈에 보기에도 홈리스 같은 사람이 있어서 슬쩍 봤는데 자세히 보는 것도 실례라고 언질을 하네(역시 나는 한국사람). ㅎㅎㅎ.
우선 여기 사람들은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있지.
브리즈번 퍼포먼스 아트센터에서 공연 관람 후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드레스코드
그들은 자유롭지만 지켜야 할 분명한 선이 있는 거 같아.
호주인들 대부분이 담배에 대해선 호의적이지만 술에 취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에는 굉장히 엄격하다고 하더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속이 없다면 퇴근 후에 술을 사다가 홈파티를 즐긴다고 하네.
내가 본 것은 극히 일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 브리즈번은 환경도 사회도 건강한 거 같아.
Woolloongabba Princess Theatre를 지나가는데 지난달에 에픽하이 공연이 여기서 있었다고 하네.
애나는 퍼포먼스 아트센트에서 미녀와야수 뮤지컬을 봤다고 하네. 나는 에픽하이 좋아하기도 하고 "우리나라 가수들 여기까지 왔는데 좀 봐주지." 하면서 혼자 쯥쯥 거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