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이 떨어지는 곳.
오래전 20년 지기이자 도반인 스님과 차를 마신 적이 있다.
이야기를 나누던 차에 스님은 “사람들은 종종 말의 낙처를 오해한다”라는 표현을 썼다.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한 나는 그 자세한 뜻을 물었다. 낙처(落處)란 떨어지는 곳을 의미한다. 그러니 스님의 표현은 ‘모든 말에는 그 말이 지칭하는 바, 즉 말이 종국에 떨어지는 곳인 낙처가 있는데, 사람들이 종종 낙처를 못 찾고 제 멋대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소쉬르가 말한 랑그(langue)와 파롤(parole)까지 어렵게 가지 않더라도 모든 말(문장)에는 지칭하는 바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낙처’를 종종 오해해서 불통하는 일이 많다. 따라서 소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 말의 ‘낙처’를 잘 살펴 이해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스님의 요지였다. 무릇 진리는 간단하고 명료한 것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랬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문득 나는 ‘낙처’만 잘 찾으면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말하자면 그 말이 지칭하는 바대로만 잘 따라가면 문제가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는 것이다. 가령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속담을 보자.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진리이자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지칭하는 바, 즉 낙처의 끝에 가 보면 ‘진실’은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낙처’와 ‘진실’은 따로 놀 수 있다. 왜냐하면 살다 보면 어떤 의도로 헛소문과 거짓소문을 퍼트려 죄 없는 사람에게 상처 주는 사람이 많음을 목도하기 때문이다. 종종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날 수도 있음’을 본다. 그러니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말은 ‘아닌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날 수도 안 날 수도 있다’라고 바뀌어야 한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도 그렇다. 아무리 노력해도 흙수저가 금수저에 대해 억울한 일이 있을 수 있다. 일부 영역에서는 노력만으로는 되지않는 일도 많다. 운으로 성공이 좌지우지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일상 대화는 물론 속담·격언·명언 등 흔히 레토릭에 속하는 말들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자는 것이 근자에 내가 얻은 깨달음이다.
세상의 말들 중에 낙처를 잘 찾아도 진실이 낙처와 맞닿아 있지 않고 옆에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사람의 말에 대해 낙처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낙처 끝에 과연 진실이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이 말을 통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까지도 살펴야 그나마 진실에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거의 20년 전 스님과 낙처에 관해 이야기한 기억이 난다. 스님을 만나 ‘낙처’에 대해 다시 묻는다면, 상기한 결론까지 포함한 말이었다고 말씀하실 거 같다. ‘낙처’를 처음 들었던 때는 그저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살면서 지혜가 더해져 ‘낙처를 잘 살펴 이해하는 것’이란 말의 진정한 ‘낙처’를 이제야 찾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