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 없는 글, 그래도 써야지….
군 제대 후, 여전히 꿈이 없던 나는 집에서 빈둥거리며 놀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누나는 일이나 하라며 닦달했다. 누나네 짜장면 집에서 배달을 하기로 한 나는 필드(배달)에 나가기 전, 홀에서 하루 200여 통의 주문전화를 받았다. 전화는 대개 내가 주문을 최종 확인하고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 손님은 “네, 수고하세요.”라고 화답한 후 끝났다.
그렇게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암묵적 합의에 익숙한 어느 날. 그날도 정신없이 주문을 받는데 목소리가 귀여운 여자 대학생이 대뜸 전화를 끊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네, 수고하세요.”라고 화답했다. 전화선 너머로 “푸하하”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겸연쩍어 피식 웃으며 혼자 낄낄댔다.
마침 배달을 마치고 돌아온 얼굴이 반반했던 훈이 형에게 방금 전 해프닝을 들려주자 형은 살짝 웃더니 말했다.
“야! 그건 아무것도 아냐!”
그는 배탈통을 주방입구에 내려놓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형은 5년 배달 생활동안 한 번도 손님에게 “맛있게 드세요!”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왠지 창피하고 쑥스러워서 음식을 주며 돈을 받고, 그저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면 그만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이 동네 빵집에 갔다. 빵을 다 고른 형은 아가씨가 말한 빵값 9000원을 지불하려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졌다. 그런데 얼굴이 예뻤다던 그 아가씨가 불쑥 빵을 주며, 돈을 받기도 전에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의 미모 때문인지, 순간 당황한 형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업계에 보고된 바가 없는 말을 건넸다.
“네. 맛있게 드세요!”
빵을 건네주던 그 아가씨는 당황했고, 형은 더 서 있어 봤자 달라질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돈을 던져 놓고, 도망치듯 빵집을 나왔다.
나는 배꼽을 부여잡고 웃었다. 형은 5년 동안 한 번도 손님에게 “맛있게 드세요!”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배달을 마치는 매 순간 항상 내면에서 시달렸음이 분명했다.
'맛있게 드세요. 맛있게 드세요. 맛있게 드세요….'
시간이 흘러 나는 학교에 복학을 했고, 얼굴이 반반하던 형은 매형 가게를 떠나 친구들 꼬임에 강남 줄리아나 웨이터(쟁반)를 했다. 그리고 서로 안부만을 전해 듣고 살았던 12년 전 추석에 매형이 내게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주었다.
“훈이가 죽었단다. 눈 오는 날 벤치에서 노숙자로 죽었데.”
나는 그저 멍하니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래도 2년 여 같이 배달하며 형 집에서 술도 먹고 많이도 잤는데…. 우리는 다음날이 중국집 휴무일 날이면, 여지없이 함께 술을 먹었다. 진탕 마시고 다음 날, 잠에서 깬 우리는 해장을 위해 다른 가게에 짬뽕을 시켜 먹었다. 그러다 단무지가 형편없이 온 날은, 단무지 조금 준다고 형은 눈살을 찌푸리며 투덜댔다.
“우리는 이러면 기분 나쁘지! 빈정 상한다고.”
그러고는 항상 가게에서 단무지를 쌀 때, 듬뿍 담던 형이었다. 축구를 좋아해 학연·혈연으로 얼룩진 축구계를 비판하며 불행한 안효연의 축구인생을 개탄하던 형이 어쩌다가…. 형은 같이 배달하던 성균이에게 돈도 꾸고, 이런저런 이유로 면목이 없어 매형에게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소주 두 병을 마신 어느 겨울날 벤치에서 눈을 맞으며 그렇게 떠났다.
형의 잘못이라고는 그저 사람 좋아한 일 밖에 없는데....
내가 언젠가 돈을 벌면 형의 천도재를 지내 주겠다며 사진을 갖고 있는데, 오늘 유독 형이 생각난다.
천도재보다 성균이한테 빚진 돈을 대신 갚아 주고, 형의 짐을 덜어 줘야지….
기약 없는 글, 그래도 써야지….
오늘, 훈이 형이 생각나는 매우 우울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