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죽을 각오 하면서까지 이렇게, 쓸 필요 있을까?
숨이 안 쉬어졌다. 실내 운동하다 말고 진짜 숨이 안 쉬어져 주저앉아 괴로워하자, 친구가 말했다.
"포기하지 마, 누구에게나 쉽게 오는 감정이 아니야. 우리 나이에 특히나! 선물 같은 거 아냐?"
유명 여배우의 아버지이시자, 60대 후반의 다큐멘터리 감독 선배님께서는 자신은 두 번째 아내와 22살 차이라며, 나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했다. 살다 보면 다 똑같아진다며 응원을 보내셨다.
결혼이 아니라, 만남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엎어 치나 메치나, 매일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 난, 그 친구에게 종용? 획책? 쉽게 말해, 꼬심의 말?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 친구가 먼저 인사하며 다가왔고, 우연히 대화를 하다가, 경기도 남양주의 한 동네에서 15년 넘게, 같이 산 인연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고 보니, 어디에서 본 거 같기도 하고?
남양주 내 최애 식당, '고모네 콩탕'.
그 친구의 입에서 고모네 콩탕 (제일) 좋아해요. 할 때 진짜 머리에서 잠깐 '번쩍'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친구가 9살 때부터 중, 고딩 교복을 입고 그 동네에서 성장하는 동안, 난 작가 지망생으로 그 동네 대표 거지로서, 매일 지역 유지 형님들과 술판을 벌이고, 동네 술집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니며 살았던 것이었다. 그것도 바로 지척에서.
그 친구는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고, 난 오래전 cj enm과 연이 되면서, 서울 쪽으로 옮겼다.
근데 그도 모자라, 그 친구의 언니가 얼굴은 모르지만, 까마득한 내 대학 같은 과 후배란다.
엔드, 또 그도 모자라 같은 공모전에 선정돼 만났는데, 난 내부 점수로 1등 비슷했고 그 친구는 멘토에게 꼴등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했다. 어린 나이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젊은 시절보다 더 빨랐다. 그 친구는 재능이 있었고, 진짜 예뻤다.
마지막으로 00 영상위 시나리오 멘토를 요청받아, 수행하러 간 00 사무실에서, 또 그 친구의 사진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친구는 작년에 작품이 '선정'되어, 멘티를 수행했던 것이었다.
이래저래 크고 작은 인연, 4가지나 있는 친구였다. 응당 첫 대화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알아오던 후배랑 얘기하는 기분이었다. 그 친구 그때마다 탄식하거나, 고개를 돌리며 입을 벌리고 신기해했다.
사실 우리는 대화를 트기 전에, 이미 몇 번 눈빛이 의미 있게 마주쳤었다.
난, 그 친구의 나이를 한 4살 위로 봤고, 그 친구는 나를 4-5살 아래로 봤다.
나는 그 친구에게 소고기를 사줬고, 그 친구는 떡볶이를 사줬다. 어린 친구가 밥을 사준다고 해서... 아서라 했지만, 난 기꺼이 매우 귀여워하며 얻어먹었다.
몇 번, 밥을 먹는 동안 재차 눈빛이 오갔고 익히 모두 아시듯 끝난 것이었다. 적어도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었다.
그 친구는 어떤 확신의 말을 해주길 바랐지만, 난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 친구는 괴로워하다가, 현 남자 친구에게 이별 고하기가 잘 안 됐는지... 어느 날부터 갑자기 거리 두기를 했다. 아예 무시하거나 하지 않았지만, 난 충분히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작가로서 요즘 친구들과 밥 먹으며 소통하는 것만으로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욕심인지? 사고인지? 과욕을 품었다.
그 뒤, 연락하지 않았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친구의 암묵적 요구에도 일말의 양심으로, 염치로 끝까지 침묵한 것이 잘한 일 같다.
어린 남자 친구한테 행여 상처가 될지 모르고, 또 만났다 한들 잘못되면 그 친구의 상처... 또, 내가 뱉었던 말들의 부끄러움과 후회로 후폭풍이 말이 아니었을 것 같다.
세상 온갖 욕을 먹을지 몰라도,
꽤 깊이, 행복했고... 그만큼 아팠다. 정말 신이적이기까지 한 신기한 경험에 그저 하늘에 감사할 뿐이다.
지금 나이 차 이런 게 문제가 아니라, 점점 화석이 되어가고 있는 내 심장에 언제 다시 꽃이 필지... 피기는 할지? 두려움이 드는 요즘이다. 특히나, 작가로서 많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