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 누구의 일도 아니지만

by 장용범

늦은 시간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요행히도 자리가 나서 앉았는데 맞은편 출입문에서 재미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왠지 모르겠으나 누군가가 B5 정도 크기의 전단지를 출입문 위에 붙여 두어 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들이 이마로 받으며 드나들고 있었다. 분명 이상한 위치에 전단지가 붙어 있음을 다들 알 텐데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문이 열리면 팔랑거리는 전단지가 바로 보임에도 누구 하나 떼어낼 생각은 않고 들고 나는 모습이 꽤나 흥미로웠다. 전단지 떼기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무슨 오피스텔 광고 전단지였는데 테이프로 살짝 붙어 있어 그냥 손만 대면 떼지는 상황인데도 아무도 그런 행동을 하는 이가 없었다. 몇 정거장이나 지나도록 전단지는 그 자리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맞이하며 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저 이상한 위치의 전단지를 보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대부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는 것 같은데 달리 보면 저것은 모두의 일일 수도 있었다. 마침내 내가 내려야 할 역에서 그 전단지를 직접 떼어냈지만 오는 내내 한 장의 전단지로 꽤나 흥미롭게 사람들을 관찰하며 올 수 있었다.


하루는 한 직원이 잔뜩 불만인 듯 다가왔다. IT 관련 수정 작업을 해야 하는데 여러 부서에 걸쳐 있어 진행하기가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내용을 파악해 보니 딱히 우리 부서의 일이라기에도 애매한 일이었다. 화면만 이쪽이지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산식이나 구성은 다른 부서의 일이었다. 그 직원은 관련 부서에 연락을 취해도 다들 나 몰라라 한다며 난감해했다. 대체 이 일은 누구의 일일까? 이런 경우 아주 간단하게 일의 주체를 알 수 있는 방법을 쓴다. 누가 더 답답한가이다. 가만 보니 그래도 다른 부서보다는 우리가 더 답답할 일이 많았다. 그래서 직원에게 타 부서와 협업을 직접 진행하라고 하니 이번에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며 펄쩍 뛴다. 그 말도 맞다. 업무 분장상으로는 다른 직원의 일이었다. 다만 그 직원이 해당 문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본인이 개입했는데 점점 자기 업무로 넘어오는 것 같다며 불만을 제기했고 행여 이 일을 떠안게 될까 봐 잔뜩 방어적인 태세였다. 결국 내가 맡기로 했다. 다만 두 사람에게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했는데 구체적인 문제의 정의를 지시했다. 그리고 해당 부서장에게 상황을 설명하고는 담당자들 미팅을 소집했다. 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하기를 이 문제는 우리 부서의 문제이다. 하지만 결과 검증에서 각 부서는 역할을 해주어야 해결이 가능하다고 하니 그제야 참여를 한다. 모두의 일이지만 누구의 일도 아닌 일은 누군가 앞장을 서야 일이 진행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은 사례였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누구의 일은 아니지만 모두의 일일 수도 있는 것들이다. 이런 종류의 일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지하철 모니터에 나오는 심폐소생술 실시 방법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지하철역이나 공공장소에는 자동제세동기(AED)라는 것이 있다. 그것의 사용법을 교육하는 영상을 보면 이런 장면이 있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쓰러지고 주변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몰려든다. 이 중 용기 있는 한 사람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려 든다. 그는 주변의 사람들 중 특정인을 지목하여 역할을 맡긴다. 이를테면 이렇다. “저기 빨간 옷 입은 아가씨! 119에 신고해 주세요. 그리고 청바지 입은 학생! 자동제세동기(AED) 가져다주세요.” 이렇게 지목된 특정인은 군중 속의 한 사람으로 머물다가 이제는 주체적인 개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누구의 일은 아니지만 모두의 일일 수도 있는 문제는 누군가가 군중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개인으로 거듭날 때 비로소 해결이 된다. 그리고 군중의 한 사람으로 머물 사람에게 역할을 각성시켜 깨어나게 하고 방향을 제시할 누군가가 필요한데 우리는 그를 리더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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