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토인비는 문영의 흥망성쇠를 ‘도전과 응전’의 틀로 보았다. 그리고 새로운 문명은 늘 기존 문명의 변방에서 시작되어 점점 세력이 커지다가 옛 것을 대체해 갔다. 도전의 모습은 다양하다. 외부 세력의 침략일 수도 있고, 홍수와 가뭄 등 자연재해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삶을 괴로움(苦)이라고 전제한 불교적 관점은 인간에게 닥치는 이런저런 도전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면 이번 코로나도 전염병의 모습으로 나타난 문명에 대한 도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도전하는 자와 지키려는 자를 비교해 보면 아무래도 도전하는 자의 부담이 좀 덜하다. 적어도 지키려는 자에 비하면 잃을 것이 적기 때문이다. 이 말은 어떤 집단에 대한 외부의 도전이 거셀수록 그만큼 지킬 것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도전과 응전은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태어난 이상 살아가는 게 숙명인 인간에게 크고 작은 도전과 응전은 일상이라 할 수 있다. 때로는 도전의 위치에서 때로는 응전의 위치에서 자신의 위치를 바꾸어 가며 삶을 살아간다.
오후에 라오 상하이 신촌점에 갔다. 해도 바뀌고 해서 후배와 식사라도 하고 싶어서다. 코로나라는 큰 도전에 직면하여 다른 가게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중에도 꿋꿋이 버텨내고 있는 그가 대단해 보인다. 지금 상황이 어떠냐고 물으니 본인의 인건비는 못 건지지만 나머지는 견딜만하다고 했다. 코로나 직전 개점한 강남의 학동점을 기존의 신촌점과 함께 유지하는 게 불가능할 것 같은데도 버텨내는 걸 보면 캐시플로가 어찌 되었건 돌아가는 것 같다. 정말이지 버틴다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조금 있으려니 가끔 뵙는 낯익은 고향 선배님이 오셨다. 같은 부산 출신이라는 이유로 서로 존중하는 선후배로 지내는 사이다. 그간 개인사에 관해서는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는데 함께 차를 마시며 자연스레 나의 은퇴 이야기가 나왔고 본인의 은퇴 생활을 들려주셨다. 이 분도 범상치 않은 인생역정을 거쳐 오셨는데 박정희 정권 시절 반독재 투쟁에 앞장서다 옥살이까지 했고 졸업 후 미국의 웨스팅하우스라는 다국적 기업에 입사해 네덜란드에서만 7년을 근무하셨다고 했다. 그 후 자신의 사업체를 설립해 유지하다 동업자를 대표이사로 앉히고 자신은 지분만 가진 사외이사로 은퇴한 지 10년이라고 하신다. 60대인 그분의 은퇴 후 삶은 다분히 역동적이셨다. 할리데이비슨을 타기도 하고 훌쩍 외국 여행을 떠나기도 하며 가끔 중국 찻집에서 차를 즐기기도 하신단다. 그분의 얼굴을 다시 보니 날카로운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긴 시련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후배와 이제는 좀 편안한 삶을 누리고 계신 선배님의 근황은 누가 봐도 대조적이었다. 도전을 극복한 사람과 도전에 직면한 사람의 차이라고 할까. 유목민은 성을 쌓는 것을 경계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했던 칭기즈칸은 ‘성을 쌓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지킬 것이 많은 사람은 아무래도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어렵사리 얻은 것을 지키지 못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해결방안은 변화에 대한 빠른 적응과 적절한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이라고 본다. 문명의 흥망성쇠가 도전과 응전에 좌우되듯 개인도 마찬가지다. 살아가는 이상 도전과 응전은 일상이라 여기자. “성을 쌓는 자 망할 것이고, 길을 뚫는 자 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