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
돈을 벌어 생활하기 위해서. 일을 통해 무언가를 이루어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서. 그 외에 뭐가 있으려나? 달리 생각나는 것이 없다. 일이라 하면 대부분 보상을 떠올리지만 보상이 없는 일도 많다. 키덜트라는 용어가 있다. 아이들의 장난감이나 만화 등을 즐기는 어른들을 일컫는 말이다. 많은 시간을 레고와 같은 조립장난감에 시간을 쏟는 키덜트 어른들을 두고 사람들은 논다고 하지 일을 한다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취미를 가진 사람에게 레고 블록을 주고는 하루에 조립해야 할 물량을 할당하고 완성되면 개당 얼마의 돈을 주는 것으로 한다면 어떨까. 이럴 때 그는 일을 하는 셈이 된다. 그런데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레고 조립을 하던 사람이 일을 하는 것으로 바뀌면 갑자기 하기가 싫어질지도 모르겠다. 같은 행위를 하는데도 목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놀이로 할 때는 레고 조립을 하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었지만 일로 바뀌고 나면 돈이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축구 선수들이 훈련 후 휴식시간에 농구를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몸의 피로도와 상관없이 그들에게 축구는 일이었지만 농구는 놀이였을지도 모른다. 이리 보면 일과 놀이의 경계는 행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상을 받으면 일이고 보상을 받지 않으면 놀이라고 했던 법륜 스님의 말씀이 핵심을 찌른 것 같다. 결국 놀이라 함은 자발적이고 보상이 없는 행위를 할 때 그것을 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 성공한 은퇴 사업가가 휴양지에서 해먹에 낮잠 자는 늙은 어부를 깨워 묻는다. 하루에 몇 번이나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느냐고 하니 어부는 오전에 한 차례 나가고 오후에는 쉰다고 했다. 그러자 사업가는 한 수 가르쳐 주듯이 오후에도 나가면 더 많이 잡을 수 있고 이왕이면 은행 대출받아 더 큰 배를 구입해 어군 탐지기까지 설치하면 오전 오후 야간 조업까지 가능하니 더욱더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어 큰 부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어부가 그다음은 어떻게 되냐고 물으니 사업가는 그러면 나중에 은퇴해서 어느 경치 좋은 바닷가에서 낮잠이나 자며 편안하게 여생을 누릴 수 있다고 하자 어부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게 그것인데 굳이 멀리 돌아갈 게 무어냐면서 귀찮게 말고 비켜달라고 했다.
사실 왜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은 의미 없을 수도 있다. 일을 안 하면 누가 먹여 살려주나라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평범한 답도 좀 생각해 보자. 우리는 평생 일만 하려고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전 신분사회로 치면 평생 일만 하다 죽는 사람들을 노예라고 했다. 우리 스스로가 노예적 삶을 지향할 리가 없다. 마음은 그냥 놀고 싶은 것이다. 코로나 시국에 팔자 좋은 소리로 들리겠지만 지금은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그럴 바엔 그냥 노는 거다. 놀면서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여 있으면 노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되고 만다. 그리고 놀려면 돈이 든다는 생각도 좀 달리 하자. 이참에 돈 없이 노는 놀이를 발굴해 보는 것은 어떨까. 논다는 것을 자발적이고 보상 없는 행위라 치면 주위에 널려 있는 것이 놀거리들이다. 지금처럼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변곡점에는 개인이 섣불리 나설 일이 아닌 것 같다. 태풍이 불 때는 고개 숙이고 큰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하듯이 지금은 놀면서 상황을 좀 지켜봐야 할 때이지 싶다. 그래서 이왕 놀아야 할 상황이라면 마음이라도 좀 편하게 놀 일이다. 인간은 일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철학적 사유도 좀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