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6. 키르기스스탄 기록 4

by 장용범

이번 여행 중에는 좀 특이한 장면을 반복해서 보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의 시골 동네에는 삶의 공간이 있고 그 옆에는 꼭 마을의 공동묘지가 있어서다. 우리로 치면 시골의 산에 묘지가 있는 모습과 비슷한데 그 위치가 삶의 터전인 마을 옆에 있다는 것이 다른 것이다. 대체 왜 이럴까 생각해 보았다. 일단 추측하기로는 이곳의 산이 험하고 높아 묘지로 쓰기엔 어려운 환경이다. 또한 산은 평지인 마을에서 한참을 더 가야 하니 그것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 묘지를 굳이 마을 옆에 조성할 이유가 있었을까? 우리로 치면 혐오시설인데 말이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환경이 끼친 결과는 상상해 볼 수 있다. 내가 사는 삶의 공간이 있고 그 옆에 죽음의 공간이 함께 있을 때 인간은 좀 더 겸손해질 것 같다. 나의 부모나 형제 또는 마을 사람들이 묻혀있는 묘지를 수시로 오가며 보게 되니 나의 죽음도 그리 낯설게 여겨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일행과 이동하며 현지에서의 편의를 봐주고 있는 아르겐이라는 청년은 러시아 공수부대 출신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군생활을 했다 한다. 그런데 이 친구가 러시아와 키르기스스탄 문학에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보여주었다. 우리의 경우 특전사 군인이 문학에 심취한 모습까지는 기대하기 힘든데 하도 이상해서 물어보니 학교 기본과정에 여러 문학 작품들을 읽었어야 했다 한다. 톨스토이는 기본이고 키르기스스탄의 국민작가 친키즈 아이뜨마또프까지 이곳은 어릴 적부터 문학에 대한 교육이 남다른가 보다. 그런 영향인지 거리에 세워진 동상의 인물들은 대부분 작가나 예술가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다. 할리우드의 자본주의 문화보다는 좀 더 깊이 있는 문화적 소양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교육도 이런 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진키즈 아이뜨마또프는 키르기스스탄이 자랑하는 뛰어난 작가이다. ‘자밀라’, ’하얀배’, ’ 백 년보다 긴 하루’ 등의 저자인데 그의 박물관이 있다기에 찾았다. 풍광 좋은 이식쿨 호숫가에 조성된 그의 박물관은 리조트가 들어서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야외 공원이기도 하다. 박물관 잔디밭에는 그의 소설을 모티브로 한 조각상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한 작가를 이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문화역량도 상당할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우리에겐 어떤 작가들이 있을까? 전국에 유명 작가들의 문학관이 많이 조성되고 있으니 우리들의 문화적 소양도 좀 올라갔을까? 선뜻 그렇다는 답변이 나오지 않는다.


인간은 상황의 동물이라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톈산산맥의 웅장한 산들과 맑은 호수와 초원을 터전으로 둔 이들은 어떤 정서를 지니게 될까? 산은 보는 곳이지 넘을 곳은 아니라는 자연 순응적 사고일 수도 있겠고, 목초지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노마드적 사고일 수도 있다. 어쩌면 삶의 터전인 마을 모퉁이에 묘지가 있다는 것은 죽음마저 삶의 일부로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그들의 사고체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주위를 둘러싼 산으로 치면 우리는 상대적으로 낮은 산들이라 인간의 힘으로 개발의 여지가 있었지만 이들에게는 보기에도 아득한 높은 산들은 신성시의 대상이지 개발의 대상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마을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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