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여행의 여독을 어떻게 풀어낼까? 특히 외국여행의 경우 긴 비행시간, 시차와 현지에서의 일정 강행군 등이 겹치면 귀국하고 나서도 한동안 여행의 피로가 쉬 가시지 않는다. 귀국 후 첫 출근이었다. 머리는 구름 속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았고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무리도 아니었다. 여행지에서는 밤 10시 가까이 백야현상의 초원에 있었고, 불편한 도로에서 보통 10시간이 넘는 이동을 해야 했다. 낮에는 무덥고 밤에는 추웠으며 고산증세에다 음식 때문에 마음고생도 있었다. 비행기의 이코노미석은 좌우로 뒤척일 틈도 없었으니 여행기간 내내 이 몸을 가혹하게 혹사한 셈이다. 게다가 복귀 첫날인데도 대표이사 보고가 예정되어 있어 빠른 컨디션 회복이 절실했다. 예전에는 외국여행 후 국내 적응에 거의 일주일 정도 몸고생을 했으나 요즘은 가뿐하게 극복하는 편이다. 여행을 전문적으로 하는 어떤 분이 알려준 꿀팁을 적용하고 있는데 귀국하면 바로 피로 해소를 위한 비타민 링거 주사를 맞는 것이다. 출근 후 인사를 하고는 바로 링거 주사를 맞으러 근처 의원에 갔다. 의사 선생에게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비타민 B1의 마늘주사를 권했다. 이름에서 오해할 법한 마늘 성분이 들어간 것은 아닌데 이 주사를 맞으면 생마늘을 먹은 것처럼 코와 입에 아린 느낌이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아무튼 4만 원짜리 마늘 주사를 맞고 나니 피로의 정도가 눈에 띌 정도로 회복되었다. 오후에는 출국 전 컨디션으로 돌아온 걸 보면 역시 꿀팁은 꿀팁인가 보다.
제대로 된 컨디션 회복으로 오전 대표님 보고를 가뿐히 마치고 점심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대표님도 올해가 임기만료가 되시는 처지이다. 그 자리에 계셔도 은퇴 후 삶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많으신지 화제는 자연스레 그리 흘러갔다. 은퇴란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인생의 전환점임을 보여주는 것 같다. 평사원으로 출발해 회사의 CEO까지 하셨으니 조직에서 누릴 수 것은 다 누리셨는데도 은퇴에 대한 고민은 피할 수 없으신가 보다. 회사의 엘리베이터에는 상부 조직 경영진의 무리한 인사에 항의하는 노조의 대자보가 붙어있다. 금번 그룹 산하 대학의 총장으로 부임하실 분에 대한 부당인사를 항의하는 성명이다. 경영진은 그분의 그간 능력과 성과로 보아 적정 인사라고 하지만 노조는 부당 인사라 주장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그분의 연세가 64세이니 56세가 되면 은퇴해야 하는 노조원들이 보기에 거부감이 들만도 하다. 오너도 아니면서 나이가 들어 무언가를 더 하려고 들면 후배들로부터 이래저래 욕을 듣게 되나 보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높은 직위에 오른 사람들은 더 높이, 더 오래에 대한 열망이 보통사람보다 훨씬 강한 편이다. 그것이 그들을 남들보다 더 출세하게 만든 에너지일 것이다. 나라면 어떠했을까? 어떤 자리가 주어졌는데 직장 후배들이 나를 저토록 싫어한다면 그래도 그 자리에 꼭 가고 싶어 질까? 글쎄, 나의 대답은 ‘그 자리까지 안 가봐서 모르겠다’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알게 되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리 능력이 있다 해도 조직에서 나이 든 사람이 환영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재직 시절 나와 조합이 잘 맞았던 은퇴하신 본부장님을 찾아뵌 적이 있다. 그간 기대에 못 미치는 나에 대한 회사의 처우에 크게 실망감을 느끼던 때였다. 나도 모르게 낯빛이 많이 어두웠나 보다. 그때 본부장님이 나를 다독이며 하신 말씀이 “장 부장, 지금 얼마나 아프겠니. 하지만 상황이 그러하면 이제 자네의 시간은 지나갔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이제부터는 뒤로 물러나 후배들을 앞세우고 그들이 회사를 잘 이끌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게 맞겠다. 그게 자네가 몸담았던 회사를 잘 되게 하는 길이야.” 사람은 물러나야 할 때를 아는 게 중요하고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실제로 물러나는 것이다. 조직의 인연들은 대부분 상사로부터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해관계 집단임을 인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