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0. 떠나는 자 떠나게 하고

by 장용범

직장에서의 인연은 대개가 시절 인연들이지만 간혹 만남이 계속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작년에 그가 이리 말했다.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자기 인생에 좋은 인연이라 여겨지는 52명을 선정해 매주 1:1로 만나 간단한 식사라도 하는 계획을 세웠다고 말이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난달 연락이 왔다. 어제의 만남은 그런 만남이었다. 우리가 처음 인연 된 게 10년 전이니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셈이다. 한때는 내가 사무소장이었을 때 그는 실무 책임자이기도 했었다. 이제 그의 나이도 50세를 앞두고 있으니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이다. 내 나이 드는 것만 알았지 다른 사람 나이 드는 것은 모른다더니 정말 실감이 났다. 그간 근황을 주고받으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사실 사내 둘이서 술을 마시기엔 좀 어색한 구석도 있다. 술자리의 인원수는 기본이 3-4명이 모여야 어느 정도 흥의 분위기가 일기 때문이다. 2명의 술자리는 정말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여야 가능한 자리이다. 내가 그의 52명 중 한 사람이라는 게 감사한 일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그리 대단한 영향을 끼친 것도 없는데 싶어 쑥스럽기도 했다.


한편으론 그의 계획을 나에게 적용해 본다면 나는 과연 몇 명 정도나 꼽을 수 있을까 싶다. 일대일로 만나 식사나 술자리를 가질 수 있는 관계가 52명이라는 것은 상당히 많은 숫자처럼 보인다. 내가 보기엔 그도 매주 1명씩 52명을 만나 1년을 채우기란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한때의 인연으로 기억의 저편에 묻혀있던 사람이 어느 날 연락이 오면 반갑긴 할 것이다. 행여 이런 오해를 살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이 갑자기 웬일이지? 나에게 부탁할 게 있나?’


그의 1년에 52명 만남의 계획이 상당히 창의적 발상이라 여기면서도 한편으론 어색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만남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계획 속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예전에 한 영업의 달인으로부터 그의 영업 노하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마치 팽이가 쓰러지지 않도록 계속 채찍을 가하듯 고객과의 관계에 지속적인 컨택을 한다고 했다. 전화, 방문, SMS 문자, 편지 등 네 가지의 방식을 적절히 섞어 고객에게 항상 자신을 상기시킨다고 말했다. 이건 보통 정성이 아니다. 그의 영업비밀이 사실은 끊임없는 고객에 대한 어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만남이 비즈니스를 떠나 마음을 주고받을 관계로 이어질까도 싶지만 질적인 변화는 양적인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렵다면 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보였다.


나이 50을 넘기면서 더 이상 인연 맺기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인연이란 맺고 싶다고 맺어지는 것도 아니요 끊고 싶다고 끊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어서다. 그러니 지금 만나는 인연에 마음을 다하되 떠날 때면 쿨하게 보내는 것이 좋겠다. 그와 내가 함께했던 시간은 딱 그 정도였기에 서로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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