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역설적이지만 사는 게 재미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면 지금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는 뜻이다. 적어도 크게 괴로운 일은 없다는 것이니까.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세상에는 생명의 위협과 먹고사는 게 절박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에게 사는데 재미라는 말을 붙이기엔 너무도 사치스러운 일이다. 2년 전 현장업무에서 본사의 내부통제 업무로 바뀌면서 적응에 애를 먹었던 이유는 일의 단위당 처리시간이 길어진 것도 한몫을 했다. 한 마디로 업무의 성격상 급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하나의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한 시간이 충분했고 영업에서 진행되었던 일을 잘했다 못했다 평가를 내리는 것이 주 업무여서 그렇게 시간에 쫓기는 일은 아니었다. 이렇게 2년 정도를 지내보니 약간의 부작용으로 일을 조금씩 미루는 습관이 생겨났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에 있으려니 늘어나는 뱃살도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일을 미루는 습관이 반복되면 점점 게을러지게 마련이다. 지금 시작하면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몸의 편안함에 젖어 들어 ‘내일 하지, 뭐’라고 타협하게 된다. 또한 미루는 습관은 스스로의 의욕도 저하시킨다. 이런 상황에 뭔가 대책이 필요해 보였다. 마침 몰입을 위한 좋은 처방을 알려주는 팁을 얻었다. 스티븐 코틀러의 ‘멘탈이 무기다’라는 책에서 얻은 ‘목표 설정하기’와 ‘창의성 끌어내기’이다.
*목표 설정하기
목표의 중요성은 잘 안다. 하지만 목표를 정해두면 스스로 다그쳐야 하는 면도 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목표를 설정하고 이런저런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근래 들어 목표 정하기가 꺼려졌던 이유가 더 이상 피곤하게 살지 말자는 자기 합리화도 있었다. 하지만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니 다시 목표를 정해 정진하는 패턴으로 가야 할 것 같다. 저자는 목표를 세 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평생 동안 이어지는 거대한 목표, 여러 해 동안 이어갈 높고 힘든 목표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에 마무리되는 명확한 목표이다.
1. 평생 동안 이어갈 거대한 목표
지금 나에게 평생을 이어갈 거대한 목표란 게 있을까? 나이 50대 중반의 은퇴를 앞둔 직장인에게 평생 동안 이어질만한 거대한 목표란 게 과연 무엇일까? 이 물음에 머릿속이 멍해지는 느낌이다. 이럴 땐 그냥 패스하는 게 좋다.
2. 여러 해 동안 이어질 높고 힘든 목표
여러 해가 어느 정도일지 모르겠지만 3년 정도는 대강 그려 볼 수 있겠다. 현실적으로는 은퇴를 할 것이고 개인적인 관심거리는 쓰기와 읽기, 돌아다니기, 유라시아 대륙 정도인데 이것으로 어떤 목표를 정할 수 있을까? 중앙아시아 같은 곳에서 살아보며 글 쓰고 돌아다니기 정도는 어떨까? 아직은 분명치는 않으니 대략 그 정도로 정해두자.
3. 짧은 시간에 마무리되는 명확한 목표
이건 손에 잡히는 것들이 많다. 올해 안에 마무리 짓고 싶은 일들이다. 대학원 졸업, 은퇴, 그간의 글을 정리한 책 출간, 러시아어 여행 수준 숙달, 유라시아 평론 안정화, 문창콘 동아리 관련 일, 서대문 문인협회 운영, 키르기스스탄 관련 확장 가능성 탐색 등등. 그나마 다행이다. 적어도 뭘 해야 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결국 거대한 목표와 여러 해 동안 추구해야 할 목표는 희미해서 잘 안 보이지만 가까운 목표들은 이것저것 눈에 보인다. 일단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진행해 보자. 그리고 거대한 목표나 높고 힘든 목표는 구체적으로 정하지 말고 희미하게 방향 정도로 설정하는 게 좋겠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더듬거리며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니까.
*창의성 끌어내기
저자는 창의성 끌어내기에 대해 ‘의식-무의식-의식’의 순으로 권하는데 의식의 영역에서 안 풀리면 산책 같은 전혀 다른 활동으로 무의식을 자극하길 권한다. 그리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다시 의식으로 체계화한다는 식이다.
이 두 가지 처방으로 그동안 게을러졌던 나의 몸과 마음을 다시 일깨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목표 없는 삶은 아무리 편안해도 너무 밋밋하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