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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Dec 07. 2023

사람이 모르면 배워야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기능이 무엇일까를 생각한 적이 있다. 답은 의외로 단순했는데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였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했던 모든 활동들이 결국은 이 세 가지를 위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그 고생을 했다는 얘기다. 진화생물학을 다룬 “이기적 유전자”나 “행복의 기원”을 보면서 일견 대단해 보이는 인간의 정신작용이나 행복의 추구도 결국은 동물로서의 인간이 개체의 생존과 종족 보전을 위한 보완적 기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쾌락은 왜 오래가지 않는가? 그래야 개체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사냥이나 채집하러 나갈 테니까가 정답이다.


나이 오십이 넘어 생활요리를 배웠었다. 은퇴를 앞두고 최소한 내 먹거리는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제는 주방에서의 조리나 설거지가 낯설지 않게 되었으니 나로서는 상당한 발전이다. 그리고 남자가 이 정도면 집안 일로는 충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 9월 아내와 딸이 유럽여행을 떠나고 한 달 정도 혼자 지낼 일이 생겼다. 먹는 것은 그럭저럭 해내는데 세탁과 청소 같은 다른 집안일은 좀 어색했다. 여러 가전기기들에 붙어 있는 버튼들은 대체 무슨 기능인지 애매한 것들이 많았고 날이 갈수록 집안에 먼지와 세탁물이 쌓여갔다. 여기에 아내를 좀 도와준다는 선의의 마음으로 수납장 그릇을 죄다 꺼내어 주방 정리를 시도하다 완전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그제야 이게 보통 일이 아님을 깨닫고는 괜히 일을 벌였다는 후회가 밀려왔었다.  

집은 인간이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 곳이다. 그 일을 계기로 정리나 청소 등 가사를 좀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방법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는데 부산 출장길에 우연히 가사 서비스 학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사도우미 파견을 위해 교육하고 일자리를 연결해 주는 곳이었는데 무엇보다 교육비나 기간에 부담이 없었다. 하루 세 시간 3일 과정으로 지역 출장일을 병행하며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먼저 정리수납 3일 과정을 신청해 마쳤다. 그 후로 서울 부산을 오가고 중국 광저우까지 다녀오는 통에 영 시간을 내지 못하다가 이번 주 집안 청소 과정까지 이수했다. 15년 차 가사 서비스를 업으로 하신 강사님의 청소 노하우를 들으니 세상에는 고수들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남들 보기엔 별나다고 하겠지만 나는 집안 정리와 청소를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이 정말 궁금했다. 그리고 그걸 체계적으로 알려주는 교육기관이 있다는 게 더 신기했다. 이번 과정을 거치면서 학교 교육에 이들 과목은 필수로 넣어야 함을 교육부에 건의하고 싶다. 국영수보다 더 우선해서 가르쳐야 할 게 이런 생활교육이다.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는 것도 좋지만 그 인재가 집에서 자기 먹을 음식 하나 못 만들고 집안 정리나 청소, 세탁물 하나 못 갤 수준이면 이건 분명 문제다. 강사님이 인상적인 가사 서비스 경험을 알려 주신다. 부부가 의사였고 굉장히 넓고 좋은 아파트였는데 집안 전체가 쓰레기장 같았다고 한다. 여러 명품 가방에도 쓰레기가 가득하고 집안에 발 디딜 틈이 없어 가히 충격적이었다며 사람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생활이 꼭 같지만은 않다고 하신다.


정리나 청소는 그냥 하면 되지 그걸 꼭 배워야 하나라고 할 수도 있지만 베테랑의 수십 년 노하우를 단시간에 배우려면 그게 더 효과적이었다. 비용도 적당했다. 나로서는 도움이 많이 된 교육이었다. 저녁에    집에 들어와 세수를 하는데 물때로 얼룩진 세면대 수도꼭지가 보였다. 배운 대로 치약을 묻혀 금방 닦아 내니 반짝반짝 완전 새것으로 변모한다. 역시 모르면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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