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축사를 듣고 말과 글을 생각하다
그 사람이 쓰는 말을 보면 그 사람의 품격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말은 많은 것을 포함한다. 말이란 그안의 내용 뿐 아니라 억양, 표정 등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말을 할 때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한다는 것은 좋은 방식이 아니다. 최소한 이 말을 들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어떻게 수용될 것인지 필터링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말로써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다. 그럼에도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영역이지만 적어도 말하기는 관여 할 여지가 있다. 때로는 침묵이 말하기 보다 나을 때가 있는데 이는 말로 인해 화근이 나는 것에 비해서는 그렇다는 얘기다.
글은 어떨까? 그나마 글은 말하기 보다는 정제된 면이 있다. 말하기가 즉시 발화되는 반면 글쓰기는 생각이라는 과정을 한 번 더 거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사유의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명문 대학일수록 글쓰기 과정을 신입 때부터 정식 학과로 편성하고 있는 것이다. 쉬운 말을 어렵게 쓴다고들 한다. 어렵다 여겨지는 사람에게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내는 불평일 수 있다. 평소 문해력을 키울 기회를 자주 갖지 못한 때문이다.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이 하루 아침에 키워질리 없다. 인류가 문명을 이루며 산다는 건 그리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침팬지: 가라. 와라.
*인간: 가다가 들판의 꽃도 보며 즐기고 혹시 열매가 열렸으면 따서 해질녘까지 돌아 와라.
내 비록 침팬지의 언어는 모르겠지만 언어에 있어서는 인간의 언어가 더 발달되었을 것이다.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의 서울대 졸업 축사를 보며 새삼 그 언어의 유려함을 느꼈다.
“우리가 80년을 건강하게 산다고 가정하면 약 3만 일을 사는 셈인데, 우리 직관이 다루기엔 제법 큰 수입니다. 저는 대략 그 절반을 지나 보냈고, 여러분 대부분은 약 3분의 1을 지나 보냈습니다.”
=> 인생이 3만 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렇다면 나는 21,000일 정도로 70% 정도를 살아왔고, 적어도 3분의 2는 지난 시점이다.
“혹시 그중 며칠을 기억하고 있는지 세어 본 적 있으신가요? 쉼없이 들이쉬고 내쉬는 우리가 오랫동안 잡고 있을 날들은 3만의 아주 일부입니다. 먼 옛날에 나와 지금 여기의 나와 먼 훗날의 나라는 3명의 완벽히 낯선 사람들을 이런 날들이 엉성하게 이어 주고 있습니다.”
=> 과거 내가 기억하는 날들이 어떤 게 있을까? 드문드문 기억나는 일들이 있긴 하다. 때로는 슬펐고 때로는 기뻤으며 때로는 부끄러웠고 때로는 자랑스러웠다. 내가 인식하는 ‘나’는 과거, 현재, 미래가 완벽히 낯설고 다른 존재지만 그 정체성만은 이런 날들이 엉성하지만 이어준다는 뜻이다.
“취업, 창업, 결혼,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1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정신 팔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 병원 1인실에서 죽음을 맞을 정도라면 꽤나 돈 많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생을 산 셈이다. 그렇게 되기 까지에는 남들과의 다양한 경쟁에서 우위에 섰을 것이다. 그런데 허 교수는 병원 1인실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에 정신 팔리지 않기를 경고한다. 인간이 죽음을 앞둔 마당에 병원 1인실과 6인실이 뭐가 그리 다를 것인가.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이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면서 살아보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는 것을 훼방 놓는 것들이 ‘무례’, ‘혐오’, ‘경쟁’, ‘분열’, ‘비교’, ‘나태’, ‘허무’ 라고 하는데 여기에 ‘달콤함’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우리가 얼마나 그것들에 쉽게 물드는지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는 어느 미래에 마주할 나의 죽음이다.
이 글을 침팬지 언어처럼 단순하게 이야기 하면 ‘죽을 때까지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라’ 정도로 요약하겠지만 그렇다면 감동이 전해질까? 인간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다루고자 할 때 무리수가 생긴다. 말과 글, 이것은 우리 인간이 자신의 복잡한 생각을 다룰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다.